기사제목 [에세이] 물따뚤리 박물관(1/4)/사공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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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물따뚤리 박물관(1/4)/사공 경

인문창작클럽 연재
기사입력 2019.01.0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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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nt view of Museum Multatuli.JPG▲ 물따뚤리 박물관 전경
 

물따뚤리 박물관 (Museum Multatuli)                               

사공 경

인도네시아의 유명한 시인인 렌드라는 물따뚤리가 바라 본 그 눈으로 “랑가스비뚱 사람들을 위하여”라는 시를 남기고 있다. 랑까스비뚱의 의미는 순다어로 ‘흩날려 떨어지는 잎사귀‘라는 의미인 rangkas와 ‘대나무’를 뜻하는 betung 의미가 합성된 것이다. 시적인 지역명이기도 하지만 그는 시에서 농부가 대부분인 랑까스비뚱 주민들이 그 이름이 갖고 있는 상징처럼 과거 인도네시아의 피 식민통치 기간 동안 전횡을 일삼는 관리들 때문에 어떻게 철저히 망가지고 정의가 권력자에 의해 말살되었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물따뚤리 박물관은 르박군 군청 소재지인 랑까스비뚱에 위치해 있다. Museum은 흘린 글씨로 Multatuli는 하얀 글씨 정자로 쓰여 있었다. 정자로 된 하얀 글씨는 강직했고 고결했던 그의 정신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대지 면적은 박물관, 공원, 회의실과 현관을 모두 합쳐 1,842m² 규모이다. 그중 현관(pendopo)은 232m²이며 박물관 부지만은 220m²로 작고 단정한 박물관이었다. 박물관 지붕은 옅은 회색이며 박물관 문과 현관 기둥은 노란색이었다. 박물관 입구 벽돌 벽에 순다(Sunda)어로 “물따뚤리 박물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ilujeng Sumping)"라고 쓰여 있었다. 이처럼 박물관 외관은 지적이고 밝고 단아해 보였다.

박물관장인 우바이딜라 묵따르(Ubaidilah Muchtar)(이하 우바이)씨는 작은 키에 다부진 체구로 얼핏 보기에 군인 같았다. 겨자 색 인도네시아 공무원 복장이 잘 어울렸으며 르박 군을 상징하는 로고가 있는 명찰에는 교육부 공무원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는 르박의 찌세엘(Ciseel) 시골 지역에 있는 소방(Sobang) 3 중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물따뚤리 독서회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열정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막스 하벨라르』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그의 안경너머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그는 2000년, 반둥교육대학에 다니던 때 『막스 하벨라르』를 처음 읽었고, 그 후 20여년을 저자 물따뚤리에 몰두하면서 살고 있다고 했다. 

박물관 건립에 대한 구상은 2009년 우바이씨를 중심으로 자카르타에 있는 몇몇 그의 친구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중에는 밤방 에르유다완(Bambang Eryudawan), 인도네시아 건축가 연합(IAI), 꾸리에 수디또모(Kurie Suditomo, ‘TEMPO’ 기자), 보니에 뜨리야나(Bonnie Triyana, Historia Magazine 기자) 등이 있었다고 한다. 관련 구상을 2015년까지 거듭하다가 2016년 4월에 르박 군이 1923년에 건축한 군수 보좌관 집무실 겸 숙소로 사용했던 건물을 박물관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물따뚤리 탄생 197년이 되는 2017년 『막스 하벨라르』가 발간된 5월에 반뜬(Banten)주 르박군 랑까스비뚱에 물따뚤리 박물관 간판이 걸리고 개관 준비를 시작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최초의 반 식민 유물을 전시하는 물따뚤리 박물관은 1828년 12월 2일 창립된 르박 군 제 189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2018년 2월 11일 정식 개관하였다.   

Max Havelaar.JPG▲ 세계 각국어로 번역된 <막스 하벨라르>
 

우바이 관장실은 77m² 크기였다. 그의 책상 위에는 민족주의에 대한 각성을 불러일으킨 물따뚤리 혹은 『막스 하벨라르』와 관련된 서적이 30 여권이나 있었다. 그 중에는 인니어판 책표지에 <1999년 미국의 뉴욕 타임즈, 막스 하벨라르는 식민주의를 말살시키는 책>이라고 쓰여 있고, 꽃무늬 사룽(Sarung)을 입고 끄루둥(Kerudung)으로 머리를 가린 아딘다와 물소, 그리고 사이자가 나무와 꽃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또 네덜란드어로 된 책 표지에는 2003년 최우수 도서상을 받은 책이라고 쓰여 있다. 미국 펭귄 북 고전에서 출판된 『막스 하벨라르』 표지에는 지방 관리들의 모임(Sebah)에 인니인 부하가 머리를 조아리고 보고하는 장면인데 『막스 하벨라르』 13장에 나오는 장면이다. 다른 책 표지는 물따뚤리가 석판에 그린 자화상이 그려져 있다. 또 다른 표지에는 네덜란드 식민 통치의 부패상에 대한 세계인들의 눈을 뜨게 한 책, 국민들에게 독립에 대한 영감을 준 첫 번째 책이라고도 쓰여 있었다. 독일어로 쓴 표지에는 군수의 명령에 따라 군수 경호원들이 농부의 물소를 강탈하는 장면이, 이태리어로 쓴 책 표지에는 반뜬 농민들의 일상생활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담겨져 있었다. 

Map Display.JPG
 

우바이 관장은 전 세계에서 46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물따뚤리 번역본 및 관련 서적을 광범위하게 수집하였고 네덜란드에서 간행되는 물따뚤리 관련 간행물에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고 한다. 『막스 하벨라르』 안에는 몇 개의 삽화 그려져 있었다. 배고픈 땅을 떠도는 농부들, 사랑하는 물소 등에 올라 탄 사이자, 호랑이가 나타나는 장면, 어린 소년 소녀, 사이자와 아딘다가 애틋하게 바라보는 모습, 물소 살 돈을 벌기 위해 바타비아로 가는 길에 땅그랑에서 초생달을 보며 ‘나의 신부, 아딘다 3년만 기다려줘.’라고 속삭이는 사이자, 달이 뜨는 첫날 절구통에 금을 그으며 사이자를 기다리는 아딘다가 그려져 있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 수백만이 다시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에 쨍쨍한 햇볕 속에 쪽배를 타고 노를 저으며 그들의 마지막 도피처 람뿡으로 탈출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아딘다를 찾기 위해 미친 듯이 람뿡 구석구석을 찾아 헤매는 사이자의 모습도 담겨져 있다. 

물따뚤리가 바타비아(지금의 자카르타), 서부 수마트라, 마나도(Manado), 말루꾸(Maluku) 등 여러 지역에서 근무를 했었는데, 물따뚤리 박물관이 르박에 세워진 배경에 대한 질문에 “르박은 『막스 하벨라르』가 태어난 곳이며, 『막스 하벨라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즉 르박은 물따뚤리가 군수 보좌관으로 일한 마지막 장소이고, 또한 물따뚤리가 쓴 ‘사이자 아딘다’라는 특별한 이야기의 중심 배경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르박군에 대한 물따뚤리의 각별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라고 우바이관장은 말했다. 

Baduy and Multatuli Poster.JPG
 

인문창작클럽(INJAK)
인문창작클럽 (인작: 회장 이강현)의 회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인으로 구성되었으며, 개개인의 다름과 차이를 공유하고 교류하면서 재인도네시아 한인사회를 조명하는 새로운 시각이 되고자 노력하는 모임입니다.

*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와 자카르타경제신문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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