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신성철] 3.1운동과 인도네시아 한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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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철] 3.1운동과 인도네시아 한인사회

기사입력 2019.02.01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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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 


인도네시아 조선인 역사 최종.jpg
 
3.1운동은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의 초석을 닦는 계기가 됐다. 재인도네시아 한인 1호로 기록된 장윤원 선생은 1919년 당시 국내 은행에 근무하면서 은행 돈의 일부를 3.1운동 자금으로 빼돌렸다가 일본경찰에 적발되자, 임시정부가 있던 중국으로 도주했고, 이어 1920년 9월에 바따비아(Batativa, 자카르타의 옛 이름)로 왔다. 재 인도네시아 한인사 연구자인 김문환 선생에 따르면, 장윤원은 일본 패망 후 바따비아에 설립된 재 자바조선인민회와 고려독립청년당을 후원했고 일본 군속으로 왔던 조선인들의 귀국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장윤원과 그 가족 j.jpg▲ 장윤원 선생의 가족사진 [사진출처=김문환 재 인도네시아 한인사 연구자]

태평양전쟁 직후인 1942년 일본이 인도네시아를 점령했을 때, 제국주의 일본은 조선인을 일본군 소속 포로감시원, 위안부, 농업전문가 및 민간인 신분의 홍보영화감독과 통신사 직원 등으로 인도네시아에 파견했다. 조선인들은 자의반 타의반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강제로 인도네시아로 오게 됐고, 고국으로 돌아갈 때도 기적이라 부를 만한 힘든 과정을 통해 일부만 돌아갔다. 나머지 사람들은 낯선 땅에서 죽어갔고 아주 소수만 정착해 후손을 남겼다. 당시 인도네시아인들은 그들을 일본인이라 불렀고 조선인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했다고 한다.  

3.1운동 후 100년이 지난 2019년 1월 현재 한국인 3만여명이 인도네시아에 거주하고 있다. 회사 또는 단체가 파견한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발적으로 인도네시아 행을 결정했다. 현지 주요도시에 한인회가 생겼고, 한국을 모르는 인도네시아인은 거의 없을 듯하다. 인도네시아인들은 K-Pop과 K-Pop 가수를 좋아하고 한국드라마를 보고 한국음식을 즐긴다. 이제 우리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다. 

일본의 식민통치는 가혹했다. 인도네시아 대문호 쁘라무디야 아난다 뚜르는 <작가의 망명>이라는 대담집에서, “일본군이 자바에 상륙하고 3일만에 거의 모든 일본군인이 자바 여성을 성폭행했다. 당시 여성들은 얼굴에 석탄가루를 묻혀 군인들이 여성이라는 걸 알아보지 못하게 했죠. 나이 든 여성들 심지어 할머니들까지 그렇게 했다”라고 증언했다. 또 “1943년 일본군이 수세에 몰리자 강제노동자(로무샤 romusha) 체제를 도입했죠. 인도네시아 안팎의 요새 건축에 동원된 농민 70만명 중 30만명이 죽었다”라고 말했다.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인도네시아는 지정학적 위치와 천연자원 때문에 강대국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하는 국가다. '인도네시아의 행동하는 양심'이라 평가받는 언론인이며 소설가인 목타르 루비스는 자신의 소설 『사랑과 죽음』(1977) 속 인물 사델리(Sadeli)를 통해 인도네시아 독립투쟁이 결코 인도네시아 민족만이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웃국가나 민족을 설득해 국제사회의 공조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지도자의 리더십에 희생정신, 포용력, 청렴성 등만이 아니라 외국어와 지적 능력을 통한 외교 전략을 구사하는 것까지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쁘라무디야 역시 “오늘날 세계 어떤 나라도 외부의 개입을 피할 수 없고 독자적으로 뭔가를 하기란 더욱 어려워졌다”라며 강대국의 간섭을 막기 위해 약소국들이 연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도네시아는 일본 침략으로 네덜란드 식민지배에서 벗어났고,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함에 따라 일본 식민지배에서 벗어났다. 1945년 네덜란드가 연합군의 일원으로 다시 인도네시아로 돌아왔을 때 족자카르타 술탄 하멍꾸부워노 9세 등 민족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인들도 공격적으로 독립전쟁을 했고, 태평양전쟁 후 인도네시아에 남은 일본군과 양칠성 같은 일본 군속의 일부 조선인들도 네덜란드에 대항하는 전투에 참여했다. 더불어 인도네시아는 인도와 미국 등 우방국의 외교적 지원을 통해 네덜란드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수 있었다. 쁘라무디야는 독립 후에도 미국과 서방국가, 중국, 소련, 일본 등이 인도네시아에서 수까르노 정권의 몰락과 수하르또 정권의 등장과 장기집권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해왔다고 <작가의 망명>에서 지적했다. 

한국전쟁은 한민족간 내전으로 시작돼 미국, 중국, 소련 등의 강대국의 참전으로 국제전으로 확대됐다. 한반도는 일본이 물러난 후 미국과 소련의 개입으로 신탁통치와 분단을 겪었고, 무력으로 통일하겠다는 김일성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을 겪는다. 목타르 루비스는 유엔종군기자로 한국전에 참가한 후 한국전 종군기(Catatan Perang Korea)를 발표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남과 북의 적대관계 때문이 아니라, 한반도 밖에서 도래한 외세끼리의 충돌 때문에 일어났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라며 “한민족 스스로는 남과 북을 갈라놓은 38선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잘 알지 못했다”라고 이 책에 기록했다.

우리는 왜 독립국가를 원하나? 우리가 바라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목타르 루비스는 자신의 소설 『사랑과 죽음』(1977) 속 인물 조한을 통해 독립투쟁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우리는 존엄성과 자유, 그리고 권리를 가진 민족으로 살기 원하므로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우리 일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고, 우리 자신이 주인이 되며, 다른 민족의 노예가 아닌 우리 민족이 주인이 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민족과 동등한 존엄성을 가진 민족으로서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기 위해 독립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3.1운동은 현대 대한민국의 시작이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 언론에 낸 칼럼에서 3.1운동이 무기력했던 독립운동의 전환점이 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국내외 독립투쟁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세계사적 대전환기였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유럽의 약소국들이 독립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가 유럽 외 다른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에게까지 해당될 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상황이었지만, 조선의 민족운동가들은 ‘이것이 실오라기 같은 것일지라도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3.1운동을 전개했다. 3.1운동 후 일제의 탄압을 피해 한인들은 전세계로 흩어졌고 새로운 곳에서 항일독립투쟁을 이어갔다. 

한반도에 대한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영토에서 일본 해상초계기 저공위협 비행 사건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초계기가 2018년 12월 20일부터 2019년 1월 23일까지 총 4차례나 저공비행으로 대한민국 해군 함정을 위협했다. 윤우 한국항공대학교 초빙교수는 최근 한국 언론에 쓴 칼럼을 통해 지금까지 일본 정권은 북한의 위협을 군사력 증강과 국내 보수 정치세력의 결집용 명분으로 적절히 이용해왔다며, 전쟁이 가능한 국가, 공격이 가능한 군대로 전환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동북아 긴장 상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썼다. 또 그는 “앞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될수록 일본은 새로운 안보위협을 만들어내기 위해 분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우 교수는 이런 일본의 입장에 대해 남북관계 개선이 일본을 포함한 주변국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분석하고 이를 공유·공감함으로써 그들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한반도 평화를 진심으로 지지할 수 있도록 하는 외교적인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3.1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목타르 루비스는 독립투쟁을 ‘끝없는 길’이라고 정의했다. 우리 앞에는 남북분단, 일본 도발, 중국 팽창, 미국 패권 등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쉽지 않은 과제들이 놓여있다.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국방력과 함께 외교적인 노력이 필요한 사안들이다. 또 정부 대 정부의 공식외교만이 아니라 방탄소년단(BTS)과 슈퍼주니어, 재외국민 등 민간인들이 할 수 있는 공공외교 또는 소프트외교도 있다. 한반도에서 불과 100여년 전에 동학농민전쟁과 청일전쟁, 러일전쟁, 일제침략, 한국전쟁을 겪는 동안 몸과 마음과 재산을 바쳐 싸운 조상들 덕분에 지금 우리는 평화롭게 한반도와 인도네시아를 오가며 살고 있다. 우리와 우리 후손들도 수많은 난제를 해결하며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독립국가를 유지하며 평화롭고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애국가 1절 첫 번째 소절 가사에는 한반도에서 영원히 평화롭게 살고 싶은 한국인의 소망이 담겨있다. 소망을 실현하는 일 그리고 미래를 만드는 일,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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