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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끝까지 책임지는 국가

인문창작클럽 연재
기사입력 2019.04.2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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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책임지는 국가

배동선 작가

국가2.jpg▲ 깔리바타 영웅묘지 초입 광장 (사진=배동선)
 

코린도 건물이 있는 번잡한 빤쪼란 사거리 한복판, 지금은 겹겹이 세워진 톨과 고가도로 위로 뻗어나와 금방이라도 창공으로 뛰어나갈 듯한 빠뚱 디르간따라(patung Dirgantara-우주인 동상)는 원래 할림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외국인들을 환영하는 자카르타 경계 표시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거기서 멀지 않은, 우리 동작동 국립묘지에 해당하는 깔리바따 영웅묘지(Taman Makam Pahlawan Kalibata)도 원래는 도시 변두리에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비교적 잘 관리된 그곳엔 1965년 9.30 쿠데타로 살해당한 아흐맛 야니 육군사령관을 비롯한 여러 장성들과 당시 통합군 사령관이었던 나수티온 장군, 수딴 샤흐리르, 쥬안다, 아담말릭 같은 총리, 부통령 등 적잖은 유명 인사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특히 9.30쿠데타 희생자들의 묘역은 특별한 바닥공사가 되어 있어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나수티온 장군 대신 잡혀가 모진 고문 끝에 목숨을 잃은 삐에르 뗀데안 대위는, 그날밤 권총으로 반란군에게 저항하다 끝내 사살된 빤자이딴 장군과 함께 기독교인 묘역에 묻혔습니다. 기독교인 묘역과 무슬림 묘역은 묘비 형태로 쉽게 구분됩니다.

국가5.JPG▲ 기독교인 묘역의 빤자이딴 장군과 뗸데안 대위 무덤 (사진=배동선)
 

이런 영웅묘지가 인도네시아 주요 도시 대부분에 각각 마련되어 있는 것은 동작동 국립묘지에 더이상 빈 곳이 없어 대전 현충원을 세운 것과는 조금 성격이 다른 것 같습니다. 영웅들을 자기 지역에 모신다는 생각이었겠죠. 그래서 독립전쟁을 이끌었던 수디르만 전군사령관과 우립 수모하르조 참모장은 족자 소재 스마키(Semaki) 영웅묘지에, 수카르노는 고향 블리따르에 묻혔습니다. 물론 모두 고향으로 돌아간 것은 아닙니다. 수마트라 부낏띵기 출신 모하마드 하타 초대 부통령은 빈타로 소재 따나꾸시르(Tanah Kusir) 묘지에 묻혔고 한국인 양철성은 가룻 영웅묘지에 누워 있습니다.

대부분의 역사가 유명한 정치가들과 장군들 위주로 쓰여지는 것을 감안하면 깔리바타 영웅 묘지엔 특이한 이력의 사병 두 명이 있습니다. 물론 그곳에 묻힌 다른 사병들도 많지만 우스만 자나틴(Usman Janatin) 병장과 하룬 토히르(Harun Thohir) 상병만큼 특별히 조명받은 이들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들 이름을 딴 KRI 우스만-하룬이라는 해군 경순양함도 가지고 있습니다. 매우 진귀한 경우죠.

수카르노 정권 말기 북부 깔리만탄 국경지대에서 공산당 주축의 인도네시아군은 말레이시아 연방으로 합병 진행 중이던 사라왁 지역의 영연방군과 국지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말레이시아 본토 공격에 나서 싱가포르에 특공대를 상륙시켜며 전선 확장을 기도했지만 대부분 형편없이 실패하고 말았어요. 그 와중에 기어이 시내 침투에 성공한 인도네시아 해병대원 우스만과 하룬은 1965년 3월 10일 샹하이뱅크가 입점한 맥도날드 건물을 폭파해 적잖은 인명 피해를 냈습니다. 그러나 탈출에 실패하면서 곧바로 영연방군에게 생포되고 맙니다.

바로 그해 9.30쿠데타가 벌어져 국제사회와 각을 세우던 수카르노의 몰락이 시작되었고 권좌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던 수하르토는 이듬해인 1966년 8월 11일 말레이시아와 평화 협정을 체결하며 전쟁을 끝냅니다. 수카르노는 1967년 3월 12일 권력에서 완전히 밀려나고 정권을 잡은 수하르토가 1968년 3월 27일 제2대 인도네시아 대통령으로 정식 취임하지만 우스만과 하룬은 여전히 풀려나지 못했습니다. 국가의 명령을 받고 적국에서 전투 명령을 수행한 그들은, 그러나 피해국에서는 공비이자 테러범으로 치부되었고 1965년 8월 9일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한 싱가포르에서 내내 창이 교도소에 내팽개쳐쳐 있었습니다. 그 몇년 사이 전쟁 당사자들 입장은 모두 바뀌었지만 우스만과 하룬에게 떨어진 사형선고는 그대로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1968년 10월17일 아침 6시 교도소 내에서 교수형에 처해집니다. 그때 우스만은 25살, 하룬은 21살이었습니다.

국가4.jpg▲ 교수형을 앞둔 두 청년. 자카르타에 도착해 운구되는 장면 (출처=구글 아카이브)
 

이들을 국가가 끝내 외면했다면 그후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누구도 목숨 걸고 조국을 지키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그들의 처형 소식에 침통했고 외교 채널을 통해 넘겨 받은 그들의 유해는 그날 곧바로 인도네시아로 송환되었습니다. 두 해병대원은 국가적인 추도 속에 당일 추모 인파가 모인 깔리바타 영웅묘지에서 대대적인 영결식을 받으며 영면에 들었습니다. 그들은 즉시 국가영웅으로 지정되었고 멘뗑 아리아주타 호텔 앞 뚜구따니(TuguTani) 농민병 동상 주변 도로는 그들 이름을 따 '해병대원 우스만과 하룬로'(Jl. Prajurit KKO Usman dan Harun)라는 도로명이 붙었습니다. 깔리바타 영웅묘지에 묻힌 주요 인사들을 소개하는 묘역 초입 대리석 벽면에도 그들의 액자가 총리들, 장군들 사이에 함께 진열되어 있습니다.

국가1.jpg▲ 깔리바타 영웅묘지에서의 안장식. 자지러지는 우스만의 어머니 (출처=구글 아카이브)
 
비록 상대국에선 자국 국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범이라는 낙인을 거두지 않았지만 그들을 사지로 보냈던 국가는 명령을 수행하다 목숨을 잃은 자국 병사들을 최후의 순간 외면하지 않고 최상의 예우로 응분의 책임을 다한 것입니다.

우스만과 하룬의 묘비는 물론, 독립전쟁 중이던 1945년~1949년 묘역에 누워있는 수많은 무명전몰용사들의 묘비를 둘러보면 내로라 하는 장군들, 정치가들의 무덤을 대하는 것보다 더욱 절절한 감상이 밀려옵니다. 크고 작은 전투와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무명용사들 역시, 우리는 절대 모를, 그러나 장군들 인생만큼이나 기구하고 다채로운 나름대로의 사연을 가지고 있을 터인데 국가가 그것을 묵묵히 존중하는 모습은 사뭇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그래서 영웅묘지 위령탑 기저에 새겨진 문구가 더욱 마음에 와닿습니다.


IA TIDAK DIKENAL NAMANYA             우린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하나
NAMUN JASANYA BERKUMANDANG     그가 기여한 바는 지금도
DISEGENAP PENJURU TANAH AIR       조국 강토 모든 구석과 모서리까지
KARENA TELAH MEMBERIKAN            큰 울림을 남긴다.
JIWANYA DEMI KEMERDEKAAN           그는 조국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BANGSA DAN NEGARANYA               목숨마저 아낌없이 버렸으므로.


인도네시아에서는 안중근처럼 걸출한 국가영웅의 유해조차 찾지 못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듯합니다. 깔리바타 영웅묘지의 묘비들을 보면서 한국의 독립투사들, 전몰용사들이 떠오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크고 작은 역사상의 전쟁들, 대첩들을 통해 여러 걸출한 장수들이 이름을 떨쳤지만 언제나 그 최전선에는 온몸으로 적을 맞았던 이름모를 병사들이 있었던 것처럼 독립 대한민국의 기틀도 수많은 순국선열의 피로 물들어 있을 터이니 말입니다.

이 글을 쓰는 2019년 4월 22일은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독립지사 계봉우, 황운정님과 그 배우자들의 유해를 공군 2호기 편으로 국내 봉환했다는 소식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날입니다.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잊지 않고 그 마지막 뼛조각 하나까지 되찾아 고국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도리이며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의 의미를 더하는 것입니다. 자기 영웅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하고도 완전한 독립을 향해 나아가는 또 하나의 계단입니다. (끝)

국가3.jpg▲ 깔리바타 영웅묘지 위령탑 (사진: 배동선)
 

*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와 자카르타경제신문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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