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7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7

기사입력 2019.06.12 08:2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사랑

                                                         박형진

풀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모든 살아 있음의 제자리를 생각했다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 속
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
풀은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어서
비로소 나는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 창작과비평사, 1994


12일 식물원카페.jpg▲ 사진: 김상균
 

“나는 나무에서 잎사귀 하나라도 의미 없이는 뜯지 않는다. 한 포기의 들꽃도 함부로 꺾지 않는다. 벌레 한 마리도 밟지 않도록 조심한다. 여름밤 램프 밑에서 일할 때 벌레들의 날개가 타서 책상 위에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창문을 닫고 무더운 공기를 호흡한다.” “나는 살려고 하는 여러 생명 중의 하나로 이 세상에 살고 있다.” - 알버트 슈바이처

사랑했던 사이, 부부, 부모와 자식 간에 이르기까지 끔찍한 일들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드물었던 일들이 일상처럼 일어나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요? 전문가마다 다양한 이유를 들 테지만 추정하여 언급될 그 모두에 공통될 수밖에 없는 것은 ‘생명 경시’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에서 인용한 슈바이처 박사의 ‘생명 외경(畏敬)’ 사상을 오늘 우리 사회에서 되새겨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제 농부인 시인은, 길을 가던 중 자신에게 날아든 풀 여치 한 마리를 만나면서,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나는/모든 살아 있음의 제자리를 생각”하게 됩니다. ‘파란 날개 숨결’을 느낀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공감한다는 것이며, 바로 생명에 대한 외경을 감지하는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공감이 앞설 때,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이 될 수도 있고,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일 수 있을 것입니다. 시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늘은 맑고/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 속/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풀은 점점 작아져서/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들어서며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알았다고 말합니다. 

위의 시는 참으로 지고지순(地高至純)한 ‘사랑’의 노래입니다. 우리는 시와 소설, 가요에 이르기까지 사랑이 범람하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많은 것들을 사랑이라 이름 붙이고 있는지 모릅니다. 신학자이자 탁월한 음악가였던 슈바이처 박사가 의사가 되어 ‘원시림의 성자(聖者)’로서의 삶을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잎사귀, 풀꽃이나 벌레 하나의 생명까지 존중하는 ‘참사랑’의 마음이 자리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자연의 파괴자이자 뭇 생명의 수탈자로서의 ‘나(우리)’를 벗어나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자 생명체들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사랑도 자비도 평화도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세상의 모든 생명이 행복하기를 간구(懇求)합니다. 


엘가(Elgar)의 사랑의 인사(Salut d'amour)입니다. 




김상균.jpg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정년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90년대 초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



<저작권자ⓒ데일리인도네시아 & dailyindonesia.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