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들은, 자신이 사회의 경쟁에서 앞서있건 뒤처져있건 상관없이, 이제 막 걸음마를 습득한 아이들에게 바로 뜀박질을 가르치고는, 이어서 자신들이 내민 손끝 방향을 향해 질주(疾走)하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질주의 ‘질’은 병(病) 질(疾) 자를 씁니다. 질은 괴로움과 아픔을 뜻하기도 합니다. 잠시 멈춰선 채 ‘나는 누구인가’와 ‘왜 달려야 하는가’를 알아내려는 노력이 장려되기는커녕 금기시되는 분위기 속에서 끊임없이 질주로 이어지는 경쟁은 개인에게 심각한 정신적, 심리적 손상을 입히게 될 뿐만 아니라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까지 나타나게 됩니다.
시인은 “새벽에 깨어 찐 고구마를 먹으며” ‘조그만 예의’를 생각합니다. “이 팍팍하고 하얀 살이/검은 흙을 밀어내며 일군 누군가의 평생 살림이었다”는 생각, 이 조그만 예의는 비록 소박하긴 해도 인간과 인간, 나아가 한 생명과 다른 생명이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이자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고구마를 먹을 때 목이 메는 것은 단지 고구마의 퍽퍽함 때문에 나타나는 생리 현상이 아니라, “이 대책 없이 땅만 파내려 가던 붉은 옹고집을/단숨에 불과 열로 익혀내는 건/어쩐지 좀 너무하다”는 미안함 때문에 “가슴을 퍽퍽 치고 먹어야 하는 게 조그만 예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인이 생각하는 ‘조그만 예의’보다는 더 가볍지만,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야 할 예의조차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을 매일매일 마주하고 있습니다. 승강기 문이 닫히기 직전 밖에서 누군가의 발걸음이 느껴지면 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려주는 예의, 여닫이문을 나서면서 나의 뒤 또는 앞에 누군가를 위해 문을 잡아주는 예의…… 또 베풀어준 사람에게 고마워하며 자신도 다른 이를 위해 그렇게 할 줄 아는 예의.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게 아닌데도 말입니다.
오늘도 세상의 모든 생명이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정년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90년대 초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