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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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11

기사입력 2019.07.1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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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기억하는 물

                               김혜순

  직육면체의 물, 동그란 물, 길고 긴 물, 구불구불한 물, 봄날 아침 목련꽃 한 송이로 솟아오르는 물, 내 몸뚱이 모습 그대로 걸어가는 물, 저 직립하고 걸어다니는 물,물,물…… 내 아기, 아장거리며 걸어오던 물, 이 지상 살다갔던 800억 사람 몸 속을 모두 기억하는, 오래고 오랜 물, 빗물, 지구 한 방울.
  오늘 아침 내 눈썹 위에 똑, 떨어지네.
  자꾸만 이곳에 있으면서 저곳으로 가고 싶은
  그런 운명을 타고난 저 물이
  초침 같은 한 방울 물이 
  내 뺨을 타고 어딘가로 또 흘러가네.

                                                 문학과지성 시인선 243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문학과지성사, 2000


11일 식물원카페.jpg▲ 사진: 김상균
 

인천 서구에서 시작된 붉은 수돗물 논란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낡은 수도관 탓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은 결코 공산품처럼 생산되어, 사용하고 폐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입니다.
“봄날 아침 목련꽃 한 송이로 솟아오르는(던) 물”이 지금은 어디서 무엇으로 변모해 있을까요? 하지만 이러한 순환(循環)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우리가 지금 만나는 물이 “이 지상 살다갔던 800억 사람 몸 속을 모두 기억하는, 오래고 오랜 물”일는지 모른다는 시인의 인식에 공감합니다. “이 지상 살다갔던” 모든 생명의 “몸 속을 모두 기억하는, 오래고 오랜 물”이라는…… 물이 모든 생태계와 생명을 잇는 인연(因緣)의 핵(核)이자 축(軸)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적어도 물을 통해서는 ‘나와 너’가 분리될 수 없으며, 과거-현재-미래가 분절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모든 생명이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데일리인도네시아]




Andre Gagnon의 ‘Les Jours Tranquilles’(조용한 날들)입니다.



김상균 시인.jpg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정년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90년대 초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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