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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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15

기사입력 2019.08.07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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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깨 위의 호랑이
―밤에 산을 오르내리며

                                   정현종

​추억은―
익는다

밤중에 사불산四佛山을 오른다
달이 있으나 구름에 가려
계곡은 컴컴하고 길은 희미하다
낙엽 아래 잔돌이 많아
걷기가 쉽지 않고
일행의 전짓불이 길을 비춰준다

추억은 익어서 떨어진다

윤필암閏茟庵 비구니 파란 머리들
인제는 익어서 달이 되어
제 키만한 높이에서 파랗게
구름에 가렸다 나왔다 하고,
달도 구름도 잘 익어서
밝거나 어둡거나 제 모습대로
익어서 모두 흐름 삼매三昧

지나간 시간이여
익어서 떨어져야 보석이니

해골 썰렁한 암자를 지나
조선 소나무 서 있는 정상에 오른다
밤바람은 차고, 먼 외로운 불빛들.
우주를 한마당 노래방으로 만들고
(이런 노래방을 두고 왜 그
컴컴한 구석에서 소리들을 지르는지)
다시 길을 더듬어 내려온다.
이 밤에 산을 내려오니
막무가내로 나는 소리친다
“그놈의 호랑이 묵직하구나!”

즉시 익어버리는 시간도 있느니

나는 호랑이 한 마리를 잡아
짊어지고 내려왔던 것이다.
익은 시간 속의 전설이여
전설 속에 회복되는 시간이여
오, 내 어깨 위의 호랑이여

                                        문학과지성 시인선 161 『세상의 나무들』 문학과지성사, 1995


5일 식물원카페.jpg▲ <호랑이>, 작자 모름, 조선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2017
 

가뜩이나 무더운 날씨에 옆 나라에서 불쾌지수를 극한으로 올려주고 있네요. 하지만 누구 좋아하라고 불편한 기분에 빠져 있을 순 없지요. 
“익은 시간 속의 전설이여/전설 속에 회복되는 시간이여/오, 내 어깨 위의 호랑이여”를 외치며, 우리 마음속 호방豪放한 기상氣像 가득한 ‘조선의 호랑이’와 함께 8월 한여름을 힘차게 관통하시기 바랍니다.

온누리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데일리인도네시아]

애니메이션 “The Lion King”의 soundtrack 중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입니다.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90년대 초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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