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영선 (25)] 아세안 미러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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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 (25)] 아세안 미러클

기사입력 2019.08.13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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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의 'ASEAN 톺아보기' (25)] 아세안 미러클

1967년 8월 초, 태국 수도 방콕에서 100㎞쯤 떨어진 작은 휴양지 방센에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5개국 외교 수장이 모였다. 이들은 새로운 동남아 지역협력 구상을 다듬은 뒤 8일 태국 외교부 중앙홀에서 ‘방콕선언’에 서명했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서명식에서 5개국 외교 수장은 한결같이 아세안 출범이 외세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기 위한 노력임을 강조했다. 또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사고와 행동을 촉구하면서 아세안은 누구도 배척하지 않으며 뜻을 같이하는 모든 국가와 함께하는 열린 기구가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당시 동남아 정세는 불신과 혼란 그 자체였다. 1964년 미국의 통킹만 사건으로 촉발된 베트남 전쟁이 확전으로 치달았고, 동서냉전 속에 공산주의 확산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었다.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안이 추진되자 수카르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이를 분쇄하기 위해 대결정책(콘프론타시)을 펼쳤다.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은 보르네오섬 북부 사바에 대한 영유권을 둘러싸고 충돌했다. 말레이계와 중국계의 유혈충돌로 혼란에 빠진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시아연방에서 축출되다시피 독립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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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 전 혼란 속 아세안 탄생

이런 엄중한 국내외 정세 아래 출범한 아세안은 당시 지도자들의 예지와 시대적 통찰력, 집요하면서도 세련된 외교의 결과물이었다. 자국 우선의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공동의 안보·경제 발전을 추구하는, 뭉쳐야 산다는 기본정신을 구현한 것이다.

출범 반세기가 지난 아세안은 지역 협력과 통합의 성공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돌이켜보면 수많은 도전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아세안은 이런 위기를 극복하면서 한 단계 더 발전하는 지혜와 회복력을 보여줬다. 1970년대 인도차이나의 공산화가 확산됨에 따라 아세안은 공동의 외교정책과 실질적 경제협력이 중요함을 인식하게 된다. 이에 따라 외교장관회의 수준이던 아세안을 1976년 정상회의로 격상하고, 동남아우호협력조약(TAC)을 체결하는 한편 원활한 운영을 위해 아세안 사무국을 설치했다. 역외 파트너와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유럽연합(EU), 일본, 미국 등과 대화 관계를 수립했다. 1978년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하자 유엔을 통해 주도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아세안의 존재감을 국제사회에 각인시켰다.

1990년대 들어 탈냉전과 함께 세계화가 진전되자 아세안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아세안자유무역지대(AFTA)를 추진하고 다자안보협의체인 아세안지역포럼(ARF)을 창설하는 한편 동남아비핵지대조약(SEANWFZ)을 맺었다. 이념적으로 대치 관계에 있던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도 차례로 받아들여 1999년에는 동남아 10개국 모두의 지역기구로 모습을 갖췄다.

1997년 태국에 이어 인도네시아에 불어닥친 외환위기와 이로 인한 동아시아의 경제위기는 엄청난 시련이었다. 역부족을 통감한 아세안은 한·중·일 3개국을 끌어들여 아세안+3 협력 메커니즘을 출범시켰다. 이에 따라 역내 국가 간 통화스와프제도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가 구축됐다.

2007년 아세안헌장을 채택해 아세안을 보다 제도화하는 한편 중국, 일본, 한국, 미국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동아시아정상회의(EAS)를 출범시키는 등 외연을 확대했다. 특기할 점은 아세안이 역외국가들과 지역협력 문제를 논의할 때 아세안이 중심에 서야 한다는 ‘아세안 중심성’ 원칙을 견지하고 역외국가들도 이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아세안의 괄목할 만한 발전은 2015년 말 아세안공동체 출범이 계기가 됐다. ‘하나의 비전, 하나의 정체성’을 모토로 출범한 아세안공동체는 정치·안보, 경제 및 사회·문화 분야에서 통합된 공동체 형성을 지향하고 있다.

대화·타협정신 주목해야

이렇게 발전한 아세안도 수많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회원국 간 다양성과 개발 격차를 어떻게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발전과 통합을 이뤄나갈지가 관건이다. 미·중 패권경쟁 아래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도 지난한 과제다. 최근 아세안은 인도·태평양 협력에 대한 공동의 입장을 발표하는 기민함과 결속력을 보이긴 했으나 개별국가 간 이해관계가 복잡한 것도 사실이다.

지난 8일 아세안 창설 52주년을 기념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소재 아세안 사무국의 신청사 개관식이 있었다. 인도네시아 정부 지원으로 건설된 신청사는 16층 빌딩 2개 동 규모로, 아세안의 정신인 ‘대화(dialogue)’를 상징해 41.3m 길이의 하늘다리로 연결했다. 1967년 당시 반목과 불신이 만연했던 동남아가 하나의 공동체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기적과도 같다. 최근 한·일 갈등을 바라보면서 많은 이견에도 불구, 상호존중과 신뢰의 바탕 위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아세안의 정신과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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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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