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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뜻밖의 고백

인문창작클럽 연재
기사입력 2019.08.30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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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현영 

빨갛고 하얀 깃발이 펄럭인다. 차를 타고 지나는 큰 길가에도 사탕 사러 가던 골목길에도 식사하러 들어가던 식당 입구에도 담 낮은 대문 앞에도 선물로 받은 꽃다발에도 빨간색과 하얀색이 조화롭다. 한번 눈에 띄기 시작하니 온통 빨갛고 하얀 세상이다.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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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곳곳에 다양하게 장식된 상메라뿌띠 [사진=조현영]
 

2억이 훌쩍 넘는 인구에 다양한 민족이 사는 이 넓은 나라 국기의 이런 심플함이라니,  한 눈에 쏙 들어오고 깔끔하게 어필한다.  국기의 근엄함 따위는 넣어두고 눈길 닿는 곳,  스치는 곳  어디서든  춤을 추며 기꺼이 독립을 축하하고 있다. 함께 축하해주고 싶어진다. 

인도네시아 국기 메라 뿌띠(Merah –Putih)는 단순하고 직접적이다. 상단의 빨간색은 용기를 하단의 하얀색은 순결의 의미를 담고 있다. 독립을 준비하던 1944년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Sukarno)의 세 번째 부인 파뜨마와띠(Fatmawati) 여사가 손수 만든 2x3미터 크기의 국기가 인도네시아 최초의 국기이며 이를 ‘상 사까 메라뿌띠( Sang Saka Merah Putih )’라고 부른다. 상 사카 메라뿌띠는 매년  독립기념식 때마다 대통령 궁에서 게양되었고 1969년 이후에는 원본이 낡아 복제된 국기를 사용하고 있다. 상 사까 메라뿌띠 원본은 모나스 독립기념관에 보관되어 있지만, 메라뿌띠 국기와 빨강 하얀 깃발과 장식 등이 그를 대신해 8월 17일 당일 전후 다양한 모습으로 어디에서나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파트마와티 국기 만들기.jpg▲ 파뜨마와띠(Fatmawati) 여사가 인도네시아 최초의 국기를 만들고 있다.[사진 출처:https://rakyatrukun.com/merah-putih-dulu-kini-dan-nanti/]
 
독립기념식을 끝내고 국기를 하강하는 중에  바람에 말린 국기가 내려오지 않자 한 군인이 게양대를 맨손으로 타고 올라가 국기를 잡고 내려왔다는 기사를 읽었다. 아하! 인도네시아!  핸드폰에는 독립기념일 맞이 피자 햄버거 음료 등  원플러스원  프로모션 광고가 보인다. 사무실 직원들이 분주해졌다. 반유왕이 농부들은 논에서, 족자카르타의 어느 마을 고물상들은 고물수거장에서, 반둥의 등반가들은 절벽에서, 발리에서는 전통의상을 차려 입고, 메단의 주민들은 델리 강에 몸을 담그며  독립기념식을 거행하는 기사를  보았다. 아~ 인도네시아~ 흥미로웠고 마음이 뭉클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가장 순결한 마음으로 자신의 나라 독립을 기념하고 있었다. 대통령 궁에서 거행한 화려하고 근엄한 기념식보다 모자라는 것은 1도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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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www.detik.com]
 
한편에서는 독립을 원하는 파푸아 분리주의자들이 메라뿌띠 국기를 훼손하고 하수구에 버려 체포되고 큰 시위로 번지는 일도 있었다.  인도네시아 독립의 날에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이러니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국기를 대하는 자세나 독립을 축하하는 방식 등이 우리와는 결이 다르게 느껴졌다. 적어도 나에게 태극기는 조심스러웠고 광복절은 늘 엄숙한 분위기로만 인식되어 있다. 그런데 인니 사람들은 다르다. 국기를 상징하는 빨간색하얀색을 활용하여  둥글게 길죽하게 삐죽삐죽  만들어 여기저기 걸어놓고는 차 안에서 멍 때리다가도, 배불리 밥먹고 나오는 길에도, 아침 새소리에 눈을 뜨는 순간에도 잊을래야 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독립’이 가까이에서 실존하는 듯이 느껴졌다. 한때는 과하다 여겨졌던 것들이 좋아졌다. 

인도네시아에서  18년을 살면서 이 나라에 대해 무심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인도네시아가 좋으면서도 싫었고 편하면서도 불편하였으며 오래 살면서도 곧 떠날거라는 이중적인 마음이었다. 이제서야 나는 우리와 다른 인도네시아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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