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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 (26)] 장군의 딸 아웅산수지

기사입력 2019.09.03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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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의 'ASEAN 톺아보기' (26)] 장군의 딸 아웅산수지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6일까지 5박6일 일정으로 태국 미얀마 라오스 등 아세안 3개국을 순방 중이다. 이로써 문 대통령은 약속한 대로 아세안 10개국을 모두 방문하게 됐다.

이 중 미얀마는 아세안의 마지막 남은 미개척 시장이자 ‘포스트 베트남’으로서 성장 가능성이 높아 주목받는 나라다. 아세안 국가 중 인도네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국토가 넓고, 천연자원이 풍부하며, 젊은 층이 인구 5400만 명의 3분의 2에 달하며, 아세안과 중국, 인도 등 거대 경제권을 연결하는 지정학적 요충이기 때문이다.

54년간의 군부통치에 종지부를 찍고 2016년 3월 출범한 아웅산수지의 문민정부는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 발전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2018년 2월 발표한 ‘미얀마 지속가능개발계획(MSDP)’은 ‘평화롭고 번영하며 민주적인 미얀마’를 추구하고 있어 한국 신남방정책의 비전과 목표에도 부합한다. 이런 정책을 활용한 진출 전략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미얀마도 한국의 발전 경험에 관심이 크다. 섬유·봉제, 농림수산가공업 같은 제조업 육성을 통해 미얀마의 산업화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한국 중소기업의 진출을 촉진하기 위해 양곤 북부지역에 추진 중인 ‘한·미얀마 경제협력 산업단지’를 조속히 완공해야 한다. 한류 열풍을 활용한 소비재·유통산업 진출도 유망해 보인다.

아웅산수지.jpg▲ [아웅산수지 [이미지=한국경제]
 
미얀마 현대사를 이해하는 열쇠

미얀마는 중국 일본 인도 미국 등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곳이기도 하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의 일환으로, 말라카 해협을 거치지 않고 벵골만과 인도양으로 직접 진출하는 ‘중·미얀마 경제회랑’ 건설을 추진 중이다. 특히 차우퓨 심해항구 및 경제특구, 철도·도로 건설 사업에 관심이 많다. 미국 일본 및 주변국은 중국의 ‘채무함정(debt trap) 외교’의 위험성을 우려한다.

미얀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웅산수지 국가고문과 그의 아버지이며 미얀마 독립의 영웅인 아웅산 장군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이 부녀의 인생 역정에 굴곡진 미얀마 현대사가 그대로 투영돼 있어서다. 영국 식민통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력 투쟁하던 아웅산은 일본과 협력해 1942년 영국을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일본의 의도가 미얀마 독립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아웅산은 1945년 3월 반일항쟁을 선포하고 연합군에 합류한다. 문제는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이 곧바로 미얀마 독립을 의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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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를 영(英)연방의 자치령으로 두려는 의도를 간파한 아웅산은 완전한 독립을 위해 1947년 2월 변방지역 소수종족과 연방제 도입을 위한 ‘팡롱(Panglong) 합의’를 이루고, 이어 4월 미얀마 최초의 의회 선거에서 압승한다. 그러나 초대 총리로 취임할 예정이던 아웅산은 7월 19일 조직 내 반대세력에 의해 각료 6명과 함께 암살당한다. 그의 나이 32세 때였다. 미얀마 정부는 이들을 양곤 순국자 묘역에 안치하고 이날을 ‘순국자의 날’로 지정했다.

1988년 미얀마의 민주화 항쟁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아웅산 장군의 초상화 앞에 선 아웅산수지는 이렇게 외쳤다. “아웅산의 딸로서 민주화 열망에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이 국가적 위기는 제2의 독립투쟁입니다.” 1962년 쿠데타 이후 계속된 군부 통치에 저항한 아웅산수지는 1989년부터 2012년까지 가택연금 상태로 있었다. 1991년 노벨평화상도 가택연금 상태에서 수상했다. 미얀마 국군을 창설한 아웅산 장군의 딸이 군부 탄압을 받은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아웅산 장군이 묻힌 순국자 묘역은 한국에도 잊을 수 없는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1983년 10월, 미얀마를 국빈 방문해 아웅산 장군 묘소를 참배하던 전두환 대통령 일행은 북한의 폭탄 테러를 당한다. 대통령은 위기를 모면했으나 공식 수행원 등 고위 인사 17명이 희생됐다. 이는 미얀마의 주권과 민족적 자긍심을 짓밟은 폭거이기도 했다. 미얀마 정부는 즉각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했다.

진정한 친구로서 협력을 생각할 때

아웅산수지 정부는 수많은 과제에 직면해 있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군부와의 협력, 자치를 주장하는 무장 소수종족과의 평화 프로세스, 군부의 절대적 우위를 규정한 헌법 개정 문제,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 발전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로힝야족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은 가장 큰 딜레마다.

아웅산수지 국가고문은 이제 미얀마 지도자로서 문 대통령을 맞이한다. 11월 말에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및 한·메콩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미얀마의 미래와 한·미얀마 파트너십 발전을 위해 어떤 구상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한국은 진정한 친구로서 미얀마의 민주화와 국민 화합, 경제 발전을 위해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할 때다.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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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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