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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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19

기사입력 2019.09.0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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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동리 일박

                          곽재구

아흐레 강진강 지나 
장검 같은 도암만 걸어갈 때 
겨울 바람은 차고 
옷깃을 세운 마음은 더욱 춥다 
황건 두른 의적 천만이 진을 친 듯 
바다갈대의 두런거림은 끝이 없고 
후두둑 바다 오리들이 날아가는 하늘에서 
그날의 창검 부딪는 소리 들린다 
적폐의 땅 풍찬노숙의 길을 
그 역시 맨발로 살 찢기며 걸어왔을까 
스러져 가는 국운, 해소 기침을 쿨럭이며 
바라본 산천에 찍힌 소금 빛깔의 
허름한 불빛 부릅뜬 눈 초근목피 
어느덧 귤동 삼거리 주막에 이르면 
얼굴 탄 주모는 생굴 안주에 막걸리를 내오고 
그래 한 잔 들게나 다산 
혼자 중얼거리다 문득 바라본 
벽 위에 빛 바랜 지명수배자 전단 하나 
가까이 보면 낯익은 얼굴 몇 있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하나 더듬어 가는데 
누군가 거기 맨 나중에 
덧붙여 적은 뜨거운 인적사항 하나 

  정다산(丁茶山) 1762년 경기 광주산 
  깡마른 얼굴 날카로운 눈빛을 지님 
  전직 암행어사 목민관 
  기민시 애절양 등의 애민을 빙자한 
  유언비어 날포로 민심을 흉흉케 한 
  자생적 공산주의자 및 천주학 수괴

바람은 차고 바람 새에 
톱날 같은 눈발 섞여 치는데 
일박 사천 원 뜨겁게 군불이 지펴진 
주막방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사람을 사랑하고 시대를 사랑하고 
스스로의 양심과 지식을 사랑하여 
끝내는 쇠사슬에 묶이고 찢긴 
누군가의 신음 소리가 문풍지에 부딪쳤다.

                                                  오늘의 詩人叢書29 『전장포 아리랑』 민음사, 1985

4일 식물원카페.jpg▲ 사진 김상균
 


2박 3일간 실학(實學) 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실학의 3조(祖)이신 반계 유형원,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 선생의 자취와 그분들의 향기를 되새기며 정갈한 마음으로 걷는 시간. 아름다운 하루하루였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시대를 사랑하고/스스로의 양심과 지식을 사랑하여/끝내는 쇠사슬에 묶이고 찢긴/누군가의 신음 소리가 문풍지에 부딪쳤다.”
어두운 시기. 고통을 감내(堪耐)하고 온몸으로 빛을 보여준 참으로 고마운 선조(先祖)들입니다.
조선 후기, 그때는 ‘목민(牧民)’의 자세가 결여되어서 인민(人民)이 고통스러웠지만, 지금은 큰 걸음 더 나아가 ‘청민(聽民)’, ‘감민(感民)’의 자세여야 할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앞장선 인간의 됨됨이는 다를 바 없는 듯하여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Chopin과 Debussy의 곡, Piano Solo입니다. 풀벌레 소리 가득한 밤, 초가을의 정취를 가득 느끼시길…




김상균.jpg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90년대 초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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