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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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28

기사입력 2019.11.06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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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仙岩寺) 가는 길
                                  
                                   이성희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을 간다
당감동 버스 종점을 지나
포장된 산길 조락(凋落)의 가을 하늘 눈 시림 속을 걷는다
이곳이 예전 화장터였음을 아이들은 모르겠지
코스모스는 바람에 흔들리며 잠시 사라졌다가
넘실 가는 허리를 굽혀 오는데
누군가 거친 한 생에 느낌표를 찍는 검은 연기가 오를 때면
무엇에 놀란 새들 후두둑 날아오르며 여는 이승의 끝에서
선암사 저녁 종소리가 먼 노을 빛을 안고 깔리던
이 길섶 오래도록 앉아서 내가 내린 뿌리 위에
코스모스는 여전히 피어 있다
이곳을 떠난 후 나는 어른이 되고
더러 몇 번 가졌던 종교도 잃고
슬픔 같은 것도 많이 잊어버렸지만
어디 있을까 그때의 쓸쓸한 소년은
마른 풀꽃으로 흩어지기도 하면서
모르는 척 재잘거리며
아이들 속에 숨어 따라오고 있을까

                                고려원 현대시인선24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하여』 고려원, 1996

식물원카페.jpg▲ 사진 김상균
 
가을은 곧 다가올 비어버림을 애써 모른 척하듯 수목의 화려한 탈바꿈에서 비장미(悲壯美)마저 느끼게 되는 계절입니다. 
“당감동 버스 종점을 지나/포장된 산길 조락(凋落)의 가을 하늘 눈 시림 속을 걷는다/……/코스모스는 바람에 흔들리며 잠시 사라졌다가/넘실 가는 허리를 굽혀 오는데/……/선암사 저녁 종소리가 먼 노을 빛을 안고 깔리던/이 길섶 오래도록 앉아서 내가 내린 뿌리 위에/코스모스는 여전히 피어 있다/……/어디 있을까 그때의 쓸쓸한 소년은”

이 가을, 그때의 쓸쓸했던 당신은 어디에 있을까요?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Nat King Cole의 ‘Nature Boy’입니다.


김상균 시인.jpg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90년대 초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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