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나무도 벼도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
해변가 하얀 모래와 몇 그루의 야자나무는 우리가 어렸을 때 동경했던 대표적인 남국(南國)의 풍경이었다. 어쩌다가 몰래 본 외국영화의 열애 장면들이 대개 야자나무가 있는 해변을 배경으로 했던 것 같다. 사막 한 가운데 자리잡은 오아시스의 상징으로도 작열하는 태양을 마다않고 당당하게 서 있는 야자나무가 너무도 돋보였다. 그 아래 졸고 있는 몇 마리 낙타는 어린 시절에 느꼈던 평화스러움 그 자체였다.
야자나무는 적도를 중심으로 열대와 아열대에 거쳐 강수량에 크게 구애 받지 않고 넓게 분포되어 있는 수목의 하나이다. 이 지역에는 대체로 울창한 밀림이 산재되어 있고 그 속에 다시 수백 종류의 다양한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그러니 야자나무는 그저 야자 열매나 따고 대나무처럼 속이 비어 있으며, 바나나처럼 낫으로 베어내도 다시 솟아 오르는 다년생 초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도 했다.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의 열대지역에 동(東)에서 서(西)로 5,200km로 넓고 길게 자리잡고 있는 군도대국(群島大國)으로 전 국토의 73퍼센트에 해당하는 140만 평방킬로가 산림지역이다. 전세계 열대산림의 10퍼센트를 차지하며 러시아와 브라질 다음으로 넓은 산림면적을 보유하고 있는 이 나라에는 약 4,000종의 수목이 있고, 그 중에서 267종이 오늘날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야자나무는 그 가운데에 속한 하나이다.
야자나무는 인도네시아에서 뽀혼 끌라빠(pohon kelapa)로 불리운다. 뽀혼이 ‘나무’라는 보통명사이고 보면, 끌라빠(kelapa)나무라고 칭해야 우리가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알고 있던 야자나무인 셈이다. 비(非) 전문가의 짧은 관찰에 따르면, 이 나라에는 끌라빠라는 명칭이 붙어 있는 야자나무는 세 종류가 있다. 그저 끌라빠라고만 부르는 보통 야자나무와 끌라빠 가딩(kelapa gading)과 끌라빠 사윗(kelapa sawit) 등이 그것이다. 이 밖에도 끌라빠라는 별개의 단어가 따라 붙지않는 쟘비(jambe)와 빨름(palem)이라는 야자나무 유사종(類似種)도 있다.
우선 끌라빠 가딩은 보통 끌라빠의 친가(親家) 쪽으로 4촌쯤 된다. 야자나무가 다 자라면 대개 10미터 이상 15미터 안팎의 꼿꼿하고 우람한 체구를 갖추며 잎은 땅을 향한다. 그러나 끌라빠 가딩은 5미터 정도에서 성장을 멈추고 잎들은 대개가 하늘을 향한다. 몸체도 열매도 당연히 작다. 두 종류의 야자나무는 같은 형태의 열매가 열리나 색깔이 판이하게 다르다. 보통의 끌라빠 열매는 짙은 녹색이 대부분이고 일부가 녹색에 검붉은 색깔을 연출한다. 끌라빠 가딩의 열매는 노랗게 맺어 우윳빛을 가미해 가는데, 이곳에 있는 야생 코끼리의 상아와 비슷한 색깔이 된다고 한다. 가딩(gading)은 상아(象牙)라는 뜻이다.
끌라빠 사윗은 팜유(palm oil) 용 열매가 열리는 나무이다. 그러니 야자나무와의 관계는 친가 쪽이 아니라 외가(外家) 쪽일 것으로 생각된다. 야자나무의 외당숙(外堂叔) 쯤 되지 않을까 하는데, 나뭇잎 모양이 끌라빠와 흡사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단정한 야자나무의 경우와 달리 몸체에 붙어 있던 나뭇잎을 베어낸 흔적이 지저분하게 남아있다. 나무 높이는 끌라빠 가딩과 비슷하나 산만하게 무성한 잎과 목재를 연상하기에는 다소 거리가 먼 몸체 등 전체적인 느낌이 야생(野生)하는 열대수목의 전형인 듯 하다.
끌라빠 사윗은 인도네시아에서도 열대 원예작물 재배에 가장 적합하다는 쟈바(Jawa)섬에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모두 수마트라(Sumatra)와 말레이(Malay) 반도에 집중되어 있다. 전문가들의 답변으로 끌라빠 사윗은 적도를 중심으로 남북위 5도 이내에서 가장 잘 자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쟈바는 남위 5도 이남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끌라빠 사윗의 작은 포도(葡萄)알 크기로 검붉게 익는 열매는 오래 전부터 공업화 과정을 거쳐 식용유를 만드는 데, 몇 년 전만 해도 말레이시아가 세계 1위 생산국이었으나, 인도네시아에게 자리를 넘겨줬다.
쟘비는 나무 모양이 끌라빠(야자나무)와 비슷하지만, ‘끌라빠’라는 호칭을 붙여주지 않는다. 쟘비는 쟈바어(語)로 쟈바에서 주로 통용되는 명칭이며, 쟘비가 흔한 수마트라와 말레이 반도지역에서는 삐낭(pinang)으로 불리운다. 실제로 말레이 반도 중북부에는 예로부터 국제무역이 성한 삐낭(Pinang)섬이 있다. 억지로 쟘비와 보통 끌라빠와의 촌수를 셈해 본다면, 방계(傍系)로 8촌쯤 될 것이다. 열매도 달걀 크기로 모양만 야자 흉내를 내고 있고 별로 쓰임새도 없는 것으로 보아 쟘비는 야자나무의 퇴화종(退化種)이 아닌가 한다.
쟘비는 또한 대나무처럼 속이 비어 있기 때문에 목재나 땔감용으로도 적합하지 못하다. 그러나 이 나무도 출중하게 키가 커서 야자나무를 능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녀석들은 주요 국경일의 경축행사 때 벌어지는 나무타기 경기에서 존재가치를 발휘한다. 원래가 미끄러운 쟘비의 표피에 공업용 오일을 발라서 반들반들하게 해 놓고 나무 꼭대기에 옷가지나 옷감 등을 올려 놓는다. 많은 지원자들이 나무 꼭대기의 상품을 차지하려고 용기를 내 보지만, 대부분은 반쯤 올라가다가 미끄러지면서 엉덩방아를 찧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쟘비 나무를 둘러싸고 운집한 관객들은 남녀노소가 하나가 되어 모두 손뼉을 치면서 즐거워한다.
빨름은 끌라빠 사윗을 지칭하는 영어의 팜나무(palm tree)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흡사한 명칭과는 아주 다르게 빨름은 외진 팜 농장에 있지 않고 정원수나 가로수가 되어 언제나 많은 사람들 곁에 있다. 다 자라면 야자나무 높이에 육박하는 빨름은 언뜻 보기에 일반적인 수목이라기 보다는 늘씬하고 섹시한 미인의 몸매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이 나무는 관상용(觀賞用) 이외에는 과일용으로나 목재용으로 전혀 쓸모가 없다. 야자나무와의 관계를 굳이 연상해 보자면, 어떤 난봉꾼 야자나무가 하룻밤 외도(外道)를 해서 생겨난 돌연변이가 아닌지 모르겠다.
야자나무는 야자가 땅에 떨어져 싹이 튼 후 15년 내지 20년이 되어서야 열매가 매달리기 시작한다. 이 나무는 어떤 수목에 못지 않게 긴 수명을 누린다. 어떤 이는 100년이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200년도 더 살 것이라고 말한다. 이 나무는 15미터 안팎의 높이로 자라면 대개 성장을 멈추는데, 높은 키 때문에 종종 번개를 맞아 천수(天壽)를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야자나무는 한 번 꽃을 피워 열매를 맺기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하던 일’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근년 들어 원예농업의 발달로 키가 작은 4년생 야자나무로부터도 열매를 얻게 되었다며 언론매체가 크게 보도하고 있으나,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데 익숙한 이곳 사람들은 대개가 이를 떨떠름해 하는 것 같다.
울타리 안의 야자나무는 가난한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소중한 존재이다. 언제라도 누구라도 야자 열매를 따러 높은 나무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발 디딜 홈을 일정한 간격으로 파 놓았다. 초등학교 운동회에도 한 동안 일정한 거리를 뜀박질하여 야자나무로 재빨리 기어 올라가서 야자 열매를 따 내려오는 경주가 있었으나 낙상 사고가 있은 후에 폐지되었다고 한다. 도시 변두리에 띄엄띄엄 자리잡은 취락단지 근처에는 원숭이들이 먹을 것을 찾아 자주 나타난다. 이들이 마구잡이로 각종 수목의 열매를 훼손하기 때문에 사람 키 높이의 야자나무 밑둥에 냄새나는 비닐로 감싸 놓기도 한다. 우리 시골의 호두나무에 청솔매가 올라가지 못하도록 양철판을 감아 놓은 것과 비슷한 풍경이 아닌가.
야자나무의 넓고 긴 잎은 따빠스(tapas)라 하여 마대(麻袋)와 같은 섬유질이 아래쪽으로부터 감싸듯 보호한다. 이 설렁설렁한 잎들은 야자나무가 완전히 성장하여도 15 내지 30가지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나무 아래 쪽의 땅에는 언제나 햇볕이 잘 들어 작은 키의 나무들이 자랄 수 있고, 경작지로 개간하여 각종 야채와 밭 작물을 심기도 한다. 그러니 조금 먹고 많이 쉬는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야자나무는 편안한 쉼터를 제공하고, 각종 가축들을 더위로부터 보호하고 나아가서 신선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등 여러가지 역할을 혼자서 해 낸다.
관광지로 유명한 인도네시아 발리(Bali)섬에는 고층 건물이 없다. 모두 야자나무 키 아래에 놓인다. 몇 그루 서 있는 야자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 도시 순환도로가 직선을 고집하지 않고 우회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인간들이 만든 어떠한 호사스런 건축물이나 많은 건설비가 소요되는 고속도로도 신(神)들이 만든 평범한 한 그루의 야자나무를 함부로 얕잡아 보지 않는다.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인다”는 우리의 금언이 이곳 쟈바에서는 그 큰 의미를 야자나무가 지니고 있다. ‘다 자란 야자나무는 잎이 (하늘로 치솟지 않고) 땅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양승윤 교수 (한국외대, 동남아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