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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 고와 한인2세 그리고 코로나19

인문창작클럽 연재
기사입력 2020.06.11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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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연숙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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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에서 열린 광복절 행사 [데일리인도네시아 자료사진]
 
“나는 중국을 몰라. 나는 여기서 태어났고 여기서 살고 있어. 나는 인도네시아 사람이야. 우리 어머니는 중국에 가고 싶어 하셨어. 내가 중국에 간다면 여행이지 살러 가지는 않을 거야.”

신세 고. 중국이름 고칙민(Goh Chik Min). 1940년대생. 인도네시아 독립 후 혼란기에 성장했고 9.30사태도 겪었다. 수하르토 집권기의 중국인 탄압도 기억한다. 하얀 맑은 얼굴은 누가 봐도 중국계 후손이다. 그리고 그는 인도네시아어, 중국어(광둥어), 영어로 소통할 수 있고 의학 관련 한국말도 구사한다.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에서 중의학을 공부한 한의사이다. 신세는 인도네시아에서 중국 한의사를 부르는 호칭이다. 

신세 고는 한국인들에게는 중부자카르타 빠사르 바루에 사는 침을 잘 놓는 중국계 한의사로 알려져 있다. 한국인들은 1990년대 초반부터 그에게 침을 맞으러 다녔다. 그런데 이건 내가 확인한 내용이고, 어쩌면 그 이전부터 한국인이 다녔을 수도 있다. 나는 2000년대 초반부터 다닌 것 같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으면 저녁에는 어깨가 너무 무겁고 아팠다. 눕지도 앉지도 서지도 못하다가 침을 맞고 오면 통증도 가시고 몸도 가벼워졌다. 신세 고는 침을 깊숙이 꽂은 후 침 끝에 쑥을 올려서 태웠다. 쑥을 태우며 나오는 열기가 침을 통해 몸으로 전달되는 방식이다. 한국 한의사들이 침을 얕게 꽂은 후 전기자극을 주는 방식과 다르다. 

2000년대 초반에는 늘 환자가 기다리고 있어서 증세 말하고 침만 맞고 왔지만,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환자가 줄어 우리만 있을 때가 많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여유가 생겼다. 침을 꽂고 누워서 ‘신세’라는 말의 뜻을 물었다. “혹시 신세가 선생(先生)에서 온 말인가요?”라고 물으니, 그는 “맞아. 사람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던 데서 온 명칭이야”라고 확인해 주었다. 그리고 나서 사람에 대해, 세상에 대해, 인도네시아에 대해,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중국을 몰라. 나는 여기서 태어났고 여기서 살고 있어. 난 인도네시아인이야”라는 말이 내 귀에 꽂혔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중국에 가고 싶어 하셨어”라는 말까지. 

우리 아버지는 황해도에서 월남하셨다. 황해도만이 아니라 평안도와 함경도, 경기도 북부에서 월남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피난민, 실향민, 북한사람’ 등으로 불렸지만 이젠 거의 남한 사람들과 구별이 안 되고 그저 대한민국 사람이다. 지금도 그들은 고향에 가고 싶어하지만 살겠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자신들의 삶이 시작됐고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남아있고 부모님이 묻혀 계시는 땅을 확인하고 싶은 정도이다. 그들의 자녀들은 북한을 모르고, 모르는 만큼 북한이 별로 궁금하지 않고 북한에 가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신세 고는 9.30사태로 이후 중국과 교류가 자유롭지 않았고 중국계임을 드러내지 못하는 상황을 살았고, 우리 아버지도 남북 분단과 반공 이데올로기로 북한과 교류하거나 방문할 수 없는 세월을 사셨다. 수하르토 대통령이 실각하고 인도네시아에서 민주화가 진행되고 중국과 교류를 재개하고 활발해질 때도 인도네시아에 사는 중국인들은 중국계임을 드러내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여전히 조심스럽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전세계를 자유롭게 오가던 시대에도, 남한에 사는 실향민들은 북한에 있는 고향에 갈 수 없었고 여전히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나서 자라는 한인2세들은 한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들은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수없이 오가며 양국의 좋은 점들을 누리며 산다. 그들은 단절된 뿌리가 아니라 교류하고 도움이 되는 뿌리로서 한국을 인식한다. 그들은 신세 고나 우리 아버지와 달리, 국경이 단절을 만드는 높은 장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앞으로 그들은 국경을 장애물로 여기게 될 수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각국이 입국 절차를 강화했다. 열이 나면 비행기에 탈 수도 다른 나라에 갈 수도 없다. 나라마다 외국인에 대한 혐오가 강해지고 있다. 지난 20년 간은 한국인들이 비교적 인도네시아에서 자유로웠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달라질 미래. 코로나19가 국경을 너무 높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코로나19가 우리 삶을 과도하게 구속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와 자카르타경제신문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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