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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파자르 부스토미와 부야 함카/배동선

인문창작클럽 연재
기사입력 2020.09.1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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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선 작가  


오늘은 영화 이야기입니다.

2017년 9월에 개봉된 CJ 엔터테인먼트 합작영화 <사탄의 숭배자>(Pengabdi Setan, 조코 안와르 감독)에 420만 명 관객이 들어 그해 로컬영화 흥행 수위를 차지하면서 당시 인도네시아 영화판은 목하 호러 영화 천지로 흘러갈 기세였어요. 하지만 불과 몇 개월 후인 2018년 1월 개봉된 <딜란 1990>(Dilan 1990)이 630만의 관객을 불러들여 그해 로컬영화 흥행 1위를 차지하면서 청소년 로맨스 장르가 급부상합니다. 이 성적은 인도네시아 로컬영화 전체를 통틀어 역대 2위 흥행성적이기 했어요. 불과 30년 전인 1990년대 학생들의 풋풋한 사랑이 그 또래 젊은이들은 물론 당시 학창시절을 보낸 40~50대 인도네시아인들의 감성을 자극한 것이죠. 마치 <응답하라 1988>, <응답하라 1994> 같은 한국 드라마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딜란 3부작.JPG▲ <딜란> 3부작
 
그 속편 <딜란 1991>도 이듬해 520만 명 관객으로 2019년 흥행수위를 차지하면서 인도네시아인들이 품은 90년대에 대한 향수가 일시적 현상이 아님을 확인합니다. 3부작의 마지막편 <밀레아: 딜란의 목소리>(Milea: Suara dari Dilan)가 올해 2월 개봉해 310만 명의 관객을 모았는데 현재 코로나 사태로 극장 영업재개일정이 불확실한 현재, 이번에도 이 영화가 로컬영화 흥행 1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일련의 영화 시리즈가 3년 연속 흥행수위를 차지한 적은 없었으므로 제작사인 팔콘픽쳐스(Falcon Pictures)와 파자르 부스토미(Fajar Bustomi) 감독은 현지 영화사에 큰 획을 긋는 셈입니다.

가린 누그로호, 하눙 브라만티오, 리리 리자같은 유명 영화감독들을 배출한 자카르타 예술대학(Institut Kesenian Jakarta-IKJ) 동문인 파자르 감독은 청소년 로맨스 영화의 전도사 같은 사람입니다. 2008년 감독 데뷔작도 <베스트프랜드?> (bestfriends?)라는 청소년 영화로 25만 명 관객이 들었고 올해 3월 12일 개봉한 청소년 로맨스 코미디 <마리포사>(Mariposa)는 팬데믹으로 극장들이 문을 닫으면서 급히 스크린에서 밀려나는 불운을 맞았지만 그 사이 74만 명의 관객을 모아 올해 로컬영화 흥행 7위에 올라 있습니다. 참고로 웬만한 현지 제작 영화들은 관객 20만 명 정도가 손익분기점이어서 파자르 감독은 데뷔 이후 줄곧 제작사에 적잖은 이익을 안겨준 흥행감독인 셈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난독증때문에 정규 커리큘럼 소화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부분입니다. 콘티로 보여주거나 누군가 잘 설명해 주지 않는 한, 글로 된 대본은 그에게 가로세로 줄이 그어진 매트릭스처럼 보일 뿐이었어요. 그래서 영화 디렉팅 전공과목을 낙제한 그는 학교를 1년 더 다녔고 필기 대신 영화테마 실습과제로 A학점을 받아 이듬해 졸업하게 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죠. “장애로 인해 남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했고 더 많은 질문을 던져야 했습니다.” 어려움이 닥치면 이를 피하려 편법을 쓰지 않고 정면으로 극복해 가는 모습은 국적이나 직종을 떠나 항상 감동적입니다. 

파자르 부스토미 감독.jpg▲ 파자르 부스토미 감독
 
그런 그가 함카(Hamka, 1908~1981)의 전기영화를 준비 중이란 소식은 뜬금없기도 하고 사뭇 신선하기도 합니다. 미낭까바우 출신 성직자이자 사상가였고 유명한 문인이었던 압둘 말릭 까림 암룰라(Abdul Malik Karim Amrullah)는 훗날 국가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 영웅으로 선정되는데 함카(Hamka)란 그가 메단에서 글을 쓰던 당시부터 사용한 필명입니다. 청소년 로맨스 영화의 대가가 함카 같은 역사적 인물의 생애, 그것도 수카르노 시절 반란혐의로 투옥되는 말년까지를 포괄하는 중량감 있는 일대기를 과연 어떤 모습으로 그려낼까요? 

1908년 생인 함카는 16살이던 1924년부터 이슬람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다가 이후 인도네시아 양대 이슬람단체 중 하나인 무함마디아를 통해 전국적인 인물이 되는데 1942~1945년 사이 인도네시아에 진주한 일본군에 협조한 일로 한동안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그는 여러 저서도 남겼는데 특히 1938년 그가 30세 때 쓴 소설 <반더베익호의 침몰>(Tenggelamnya Kapal van der Weijk)은 곧 한국에서도 첫 번역본이 출간됩니다. 2013년 동명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이 작품에 그려진 미낭까바우 출신 젊은 남녀의 치열한 사랑이 파자르 감독의 청소년 로맨스 취향과 코드가 맞아떨어졌던 걸까요?

Buya-Hamka (1).jpg▲ 부야 함카
 
파자르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를 보고 감명받아 영화감독의 길로 들어섰다고 합니다. “자신을 옥에 가두었던 수카르노의 장례식을 이맘이 되어 직접 집전했던 그의 꿋꿋하고 진실된 인격을 좋아합니다. 이 영화는 나의 <쉰들러 리스트>가 될 것입니다.” 이 영화의 대본을 준비하는 데에만 4년이 걸렸다는 파자르 감독은 이렇게 자신의 최고작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개봉을 계획했던 이 영화는 코로나 사태에 밀려 사실상 언제 관객들과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작년 조코 안와르 감독이 영화 <군달라>(Gundala)로 새롭게 열어재친 인도네시아 토착 수퍼히어로 장르는 부미랑잇 시네마틱(Bumilangit Sinematik)의 세계관을 토대로 <스리아시>(Sri Asih), <피르고와 스파클링스>(Virgo dan Sparklings) 등 후속작이 기획되어 있습니다. 한편 또 다른 현지 수퍼히어로 세계관인 사트리아 데와 시리즈는 와양 그림자극의 주인공들을 각색한 수퍼히어로 영화 일곱 편을 2027년까지 매년 한 편씩 개봉하기로 하고 올해 그 첫 번째 작품인 <사트리아 데와: 가똣까차>(Satria Dewa: Gatotkaca)가 촬영을 시작하는 등 인도네시아 영화산업은 보다 풍성한 한 해를 맞을 예정이었습니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말이죠.

최근 수 년간 매년 100편 이상 로컬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헐리우드나 볼리우드, 또는 한국에 아직 비할 바 아니지만 동남아에서 영화제작이 가장 활발한 나라이고 2016년 현지 영화산업이 해외자본에 개방된 이후 획기적인 질적, 양적 성장을 거듭하던 중이었습니다. <써니>, <여고괴담>, <수상한 그녀>, <7번 방의 선물> 등 한국영화 리메이크작들은 물론 앞서 언급한 감독들이 만든 좋은 영화들도 꽤 많이 나왔고요.  

그래서 어쩌면 지금까지 그냥 지나쳤을 인도네시아 영화에도 최소한의 관심을 가지고 좋은 영화와 좋은 감독에게 한인 영화애호가들도 조금 힘을 실어줄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예의 파자르 부스토미 감독의 함카 전기영화 개봉을 손꼽아 기대합니다. (끝)


*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와 자카르타경제신문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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