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등
박소영
머리 하늘 향하게 하는 미루나무 끝에
세 삼태기 구름이 걸려있다
내가 어제 만났던 이름을 생각해 보았다
해바라기 판은 검고 단단한 어제가 촘촘하다
거기서 매미와 무당벌레는 지금을 움직인다
구름을 흩어가는 바람은 어디로 부는가
저 새는 구름 묻은 날개로 어디로 가는가
만질 수 없는 너의 안부를 묻는다
미루나무 그늘까지 품고 가는
당신의 등이 환하다
2020 하반기 77 『내일을 여는 작가』 한국작가회의, 2020
불현듯 가을이 더 깊어지기 전에 마음에 담으려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마음 움직이는 대로 다니다 보니 송광사(松廣寺)에서 길상사(吉祥寺)까지 갔더랬습니다. 두 절은 법정 스님의 손길이 오랫동안 닿아있던 곳이죠. 불일암(佛日庵)에 올랐던 젊은 날 여름,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물으시던 스님의 카랑카랑하던 목소리 아직 마음에 남았는데, 당신이 홀연히 떠나신 지 벌써 10년…… 당신의 ‘빈 의자’엔 가을만 가득합니다.
“구름을 흩어가는 바람은 어디로 부는가/저 새는 구름 묻은 날개로 어디로 가는가/만질 수 없는 너의 안부를 묻는다/미루나무 그늘까지 품고 가는/당신의 등이 환하다”
모두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조속히 극복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장사익의 ‘허허바다’입니다.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90년대 초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