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칼럼] 열 일곱 소녀의 도전/조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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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열 일곱 소녀의 도전/조은아

기사입력 2020.10.2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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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

 

“당신들은 자녀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모습으로 자녀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

 

이 가슴 뜨끔한 말은 2018년 12월,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제24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연설에서 한 말이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15세였다.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는 누구인가.

 

2003년 1월 3일 스웨덴에서 태어난 그녀는 11세에 자폐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받는다. 그 주요 증상 중에 하나가 한 가지에 집중한다는 것인데 그레타에게는 환경 문제가 그 대상이 되었다.

특히 기후 변화의 심각성에 주목했던 그녀는 지구의 환경이 파괴되어 가는 것에 침묵하고 기후 변화 대응에 미온적인 어른들에게 반항의 의미로, 2018년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등교를 거부하고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한다. 그리고 ‘지금은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ForFuture)’이라는 해시태그로 자신의 '등교 거부 운동을 전 세계에 알리며 같이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녀의 행동은 서구권 진보 청소년층을 주축으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그녀의 지지자들을 양산해 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FridaysForFuture’이라는 캠페인으로 발전하고 200여국 2만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전파되었다.

 


29일 타임지에 실린 그레타.jpg
타임지에 실린 그레타 툰베리

 

 

이 물결은 소셜 미디어 밖으로 넘쳐 2019년 3월 15일, 125여개국 2천여 도시에서 100만명 이상이 운집한 적극적인 기후 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학생 주체 시위,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 시위(School strike for climate)’로 이어진다. 2019년 9월 20일과 27일에는 150여개국 4500여 도시에서 400만명 이상이 시위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레타는 또 1년간 휴학(Gap Year) 하고 영국에서 미국, 스웨덴에서 스페인까지 비행기가 아닌 보트로 이동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비행기가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발생하는지 알렸다. 지난해 1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 9월에는 미국 뉴욕에서 열린 UN 기후 행동 정상회의, 12월에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UN 기후 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 연단에 서서 기후 변화에 대해 어른들이 적극적인 행동을 해 줄 것을 호소했다. 

올해 열렸던 다보스포럼에서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의 설전 중 ‘트럼프 대통령과 기후 변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 할 만큼 세계 정상들 앞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지난해 뉴욕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포브스지 선정 올해의 여성 100위, 과학 저널 네이처 올해의 인물 10인으로 선정되는 등 열 일곱살 소녀의 활보는 누구보다 진보적이고 전 세계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컸다.  

 


29일 그레타 1인 시위.jpg
그레타 1인 시위 모습

 

 

영웅 인가, 꼭두각시 인가.

 

물론 그녀가 유명해 지면서 각종 반격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녀가 비행기 대신 기차를 이용해 이동하면서 먹는 음식들이 일회용 포장지에 싸여져 있고, 비건을 주장하는 그녀가 집에서 최고급 가죽 쇼파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녀가 탔던 무탄소 태양광 동력 요트는 완벽한 무탄소가 아니었고 선원들은 그녀의 퍼포먼스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어야 한다는 등 그녀가 스스로 영웅이 되기 위해 혹은 정치적 노리개로 조정 당하며 이중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날 선 비판과 조롱들이 쏟아졌다.

 

대서양을 가로 지르며 4800km를 항해한 그녀의 최고급 태양열 요트팀의 창설자이자 선장인 피에르 카시라기는 모나코 공가의 외손자로, 최상류층이자 셀러브리티에 속한다. 단지 배기가스를 뿜어내지 않았을 뿐 엄청난 사치성 퍼포먼스였다는 것이다. 일반 유람선을 이용하더라도 비행기로는 10시간이면 갈 거리를 배를 이용해 수 일에 걸쳐 감으로써 식료품, 폐기물, 기타 생필품 등의 수요가 늘어나고, 배 안에서 사용해야 하는 전기도 또 다른 에너지를 태워 얻어내야 한다. 또한 1인당 편도 여행에 드는 유류의 양은 10시간과 10일 내내 엔진을 돌리는 것을 비교할 때 비행기 쪽이 오히려 적다.

 

할아버지는 영화 감독, 아버지는 배우, 엄마는 오페라 가수라는 뒷배경과 ‘여성, 청소년, 장애인’이라는 관심 받기 좋은 삼박자의 테마로 그녀가 더 급격히 유명세를 탈 수 있었다는 말은   완벽한 억측도 아닐 것이다.

 

또한 그레타의 주장은 지금이 아니면 너무 늦는다는 '위급 상황'임을 강조하며 여러가지 즉각적이고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특히 화석 연료의 사용을 중단하고 탄소 배출 규제를 급격히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신흥공업국과 개발도상국들로부터 “경제 성장을 포기하라는 소리”냐는 반발을 사는 등 그녀가 매우 극단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소녀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그녀가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환경운동가여서가 아니다.

 

17세 소녀에게 기대한 그 이상의 것

 

처음 어린 소녀 그레타가 매주 금요일 학교 가기를 거부하고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나는 곧 그녀가 학교로 돌아가 열심히 공부해서 미래의 환경 인재로 자라주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 교과서 같은 기대와는 전혀 다른 행보로 나를,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물론 그레타의 활동으로 인해 기후 변화 관련 정책을 직접적으로 바꾼 정부는 없다. 하지만 아직도 부모의 보호가 필요한 그녀가 ‘나의 행동으로 세계가 바뀔 수 있다’는 신념으로 세계의 기후환경 문제에 불을 지폈다는 사실 자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해 말 과학전문지 더 뉴사이언티스트(The New Scientist)는 2019년을 그레타와 시위대의 활동으로 인해 대중이 기후변화에 대해 "마침내 눈을 뜨게 된 해"라고 평가했다.

 

소셜미디어에서 최신 유행에 열광하던 전세계의 수 백만명의 청소년들이 그녀의 #FridaysForFuture 캠페인으로 인해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된 것은 대단히 큰 성과다.  

 

또 그녀로 인해 비행기 승객 한 명이 1㎞를 이동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85g으로 기차(14g)보다 20배 이상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스웨덴에서는 비행기 탑승을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는 문화 현상인 ‘플뤼그스캄(Flygskam/플라이트 쉐임Flight shame)’이 생겼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기차 여행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뜻의 ‘탁쉬크리트(Tagskryt)’라는 말도 탄생했다.

 

현실적인 가장 큰 성과로는 장 클로드 융커 유럽 연합 집행위원장으로부터 7년간 EU가 1조 유로를 기후 변화 대비에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환경 운동’은 인간이 행동의 자유를 앞세워 무엇이든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지만, 그것이 모두를 위험에 처하게 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도덕적 도전’이다. 꼭 해야만 하는 행동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래서 지속적으로 의미와 의견을 형성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레타는 이슈를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환경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직접 행동으로 나서는 사람을 늘리고 이들을 보고 따라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게 하는 효과를 주고 있는 것이다.  완벽한 방법은 없다. 누구에게든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함을 기대할 수는 없다. 만약 누군가 완벽한 환경운동가가 되겠다고 한다면 일단 입고 있는 그 화학 섬유의 옷가지부터 벗어 던져야 할 것이다. 천연 소재라도 그 소재가 옷으로 가공되는 동안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이산화탄소와 각종 부자재를 생각한다면 그 조차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일회용 비닐 봉지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종이 용기 사용을 권장하지만, 이 종이 용기조차도 일정한 형태를 만들고 내용물이 새지 않도록 하기 위해 플라스틱이나 포일 등이 포함된 여러 개의 소재 층으로 이루어진다. 이론적으로 각 층을 분리해 종이만 재활용할 수 있겠지만 누가 과연 그 얇은 종이팩의 층을 한꺼풀씩 분리해 낼 것인가. 옥수수, 사탕무, 카사바 등의 작물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친환경 수지(PLA) 제품들은 ‘퇴비화가 가능하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그냥 던져두면 된다는 뜻이 아니라 이들 제품을 제대로 분해시키기 위해서는 높은 열과 수분 조절이 필요한 전문 퇴비시설이 있어야 한다.

 

일회용 황색 종이 봉투는 그 제조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물과 천연자원이 사용되면서 재사용 비닐 봉지에 비해 지구온난화 잠재력이 80배나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계속해서 관심을 갖는 것, 지속적인 이슈에 반응하는 것, 그래서 우리가 꼭 해야 할 도덕적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일 것이다.

 

지금 해야 할 것을 미루는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더 망가진 지구를 물려주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일이다.  

 

*이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와 자카르타경제신문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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