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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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70

기사입력 2020.11.03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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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엘레지

 

                                          김은정

 

   바닷가에 앉는다

   어제의 내일이었지 지난날의 미래였지 오늘

   햇살의 기울기가 낮게 저 건너 산을 끌고 간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건 참으로 희망 아닌가

 

   바람의 무게로 날리는 추억이 아직도 괭이질을 해대는 가슴 속은 차르르르 파도의 탄력을 붙잡는 갯바위의 손으로 가득하다 이미 각오한 대로 하오의 시계 바늘에 긁혀 진한 생피를 쏟는다 젊음의 반을 넘어가고 있는 해의 눈동자 안으로 나를 밀어 넣는다 한쪽이 아프면 다른 한쪽의 아픔은 잠시 생각을 바꾸어 쉰다 세상의 소금기에 겉절은 일상이 인색하게 몸을 비틀며 구부린다 다정히 데리고 온 것도 데리고 갈 것도 없는 삶의 벌판은 그래도 모서리를 문질러 많이 부드러워졌다 서글픈 웃음소리 알알이 당겨 가는 그물 같은 하늘이 서쪽으로 쏟아지고 기억의 비탈에 다소곳이 붙은 소라고동 속으로 물결은 조심스럽다 일렁이는 파도의 그늘 아래 수궁가를 부르는 물새 까치발 선 눈시울 그렁그렁 저물 무렵 해가 한지 자락처럼 얇게 젖는다

 

   오래오래 무겁게 들고 있던 마음을 겨우 내려 놓으면 

   도도한 능선이 나의 가슴 안으로 걸어 들어와 

   발 끝으로 천천히 세상을 민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눈부시게 슬픈 날,

   빗금 간 토기 같은 삶들은 먼 데 시선을 둔다

   언제나 저쪽으로 괴는 눈길을 둔다

   햇살이 시간을 노저어 가는 저 건너까지

   저 너머 너머까지

 

                                      시작시인선 68 『너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천년의시작, 2006

 

 

11월3일 식물원카페.jpg
사진 김상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연의 이법(理法)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11월, 깊어가는 가을에서 얻게 되는 것은 ‘내려놓는 것’과 ‘비운다는 것’의 아름다움과 비감(悲感)을 동시에 체득하는 것이겠죠. 이 무렵 우리 곁을 떠나는 이에게서 느껴지는 상념이 우리에게 더욱 크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햇살의 기울기가 낮게 저 건너 산을 끌고 간다/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건 참으로 희망 아닌가//…… 한쪽이 아프면 다른 한쪽의 아픔은 잠시 생각을 바꾸어 쉰다 세상의 소금기에 겉절은 일상이 인색하게 몸을 비틀며 구부린다 다정히 데리고 온 것도 데리고 갈 것도 없는 삶의 벌판은 그래도 모서리를 문질러 많이 부드러워졌다 …… 물새 까치발 선 눈시울 그렁그렁 저물 무렵 해가 한지 자락처럼 얇게 젖는다”

 

  모두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조속히 극복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Gary Karr의 첼로 연주입니다. Albinoni의 ‘Adagio in G minor’

 

 

김상균 시인.jpg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90년대 초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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