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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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71

기사입력 2020.11.17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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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김길녀

 

아직은 춥지 않은 하루하루입니다

나뭇잎들은 서둘러 가을을 떠나고 싶어 하지만

단풍은 쉽사리 이별선언을 하지 못합니다

오래된 습관처럼 십일월 마지막 주에는

안개를 찾아 숲으로 숲으로 늦은 휴가를 떠납니다

몇 장 남은 단풍과 수북하게 쌓인

단풍의 낙화에 발목을 담그고 서서

한 해의 궤적을 낙엽 더미에 차곡차곡 묻습니다

나만이 아는 신전 돌층계를 지나 이끼 낀 돌기둥에

이르면 일 년에 한 번 내가 내게 주는

가장 경건한 선물의 시간을 제단 위에 펼칩니다

참, 잘 · 살 · 아 · 왔 · 다

서늘한 바람은 느리게 먼 그곳에서 단풍 파이 향기를 실어옵니다

긴 스웨터 끝자락 조금씩 스며드는 햇볕 공양을 받습니다

홀로 치른 의식의 제단 위로 노랑노랑 안개에 젖은

자작나무 잎사귀들이 쌓입니다

말없이 지켜보는 사람의 어깨가 넓게 부푼 하루입니다

십일월 안개를 따라온 자작나무 깊은 숲길 끝

안개 무리 속에 키 큰 따뜻함 새겨진 흰 그림자

두 팔 벌려 우리를 반겨줍니다

그림자 손을 잡은 채 가만히 십·일·월이라고 속삭입니다

 

                                            『시인이 만난 인도네시아』 도서출판 역락, 2017

 


식물원카페.jpg
사진 김상균

 


 “아직은 춥지 않은 하루하루입니다/나뭇잎들은 서둘러 가을을 떠나고 싶어 하지만/단풍은 쉽사리 이별선언을 하지 못합니다/오래된 습관처럼 십일월 마지막 주에는/안개를 찾아 숲으로 숲으로 늦은 휴가를 떠납니다/몇 장 남은 단풍과 수북하게 쌓인/단풍의 낙화에 발목을 담그고 서서/한 해의 궤적을 낙엽 더미에 차곡차곡 묻습니다/……”

 단풍 시즌이라고들 얘기하는 시기는 대략 10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입니다. 이때의 여행은 마지막을 예감한 활엽수의 화려한 변신을 보며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잠깐의 호사(豪奢)를 누리는 것이라면, 11월 하순에서 12월에 하는 여행에선, 다시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함께, 그래도 “내가 내게 주는 가장 경건한 선물”이자 다독거림인 “참, 잘 · 살 · 아 · 왔 · 다”고 스스로 되뇔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어느새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힘들고, 지치고, 어려운 시기를 모두 잘 헤쳐오셨습니다. 모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모두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조속히 극복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조원선의 ‘습관(Bye Bye)’입니다.

 

 

김상균 시인.jpg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90년대 초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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