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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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83

기사입력 2021.02.1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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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식(月蝕)

 

                               황인숙

 

     누가 별로 젊지 않은

     한 이방 여인의

     안위를 걱정하겠는가

     버스는 끊어지고,

     식당을 나서

     여인은 걸어간다

     퉁퉁 부은 다리를 번갈아

     지상에서 살짝 떼었다 무겁게 내려놓는다

     비바람이 불지 않아도

     눈보라가 몰아치지 않아도

     깊은 밤

 

     더 짧게 질러가는 길이

     있을지 모르는데

     알고 싶어 하지 않고 그녀는

     매일 같은 길을 걸어간다

     무뚝뚝하지만

     헤매지 않을 길을

     간혹 버스가 있는 시간에도

     그녀는 걸어간다

     버스비를 아끼자고

     허겁지겁 돌아갈 게 뭐람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방

 

     일이층은 보석상점과 양품점

     지하와 삼사층은 카페와 식당

     쇼핑센터 네 동이 둘러싼

     좁다란 광장

     거기서 이어지는

     대로에서 대로, 그리고 작은 방

 

     가녀리건 해쓱하건

     누가 이미 젊지 않은

     한 이방 여인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눈 여겨 보겠는가

     일산이나 강남의

     중국에서 온 여인

     혹은 하와이나 뉴욕의

     한국에서 온 여인

 

    어쩌다 제 땅을 떠나

    인적 끊긴 깊은 밤

    모형 도시 같은 거리를

    경직된 얼굴로 따박따박

    혼자 걸어가는

    제 땅에서도 가난하고

    낯가리고 겁 많았을

 

                  문학과지성 시인선 492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문학과지성사, 2016

 

      

16일 식물원카페.jpg
사진: 김상균

 

   ‘민중운동의 큰 어른’ 백기완 선생이 2월 15일 영면하셨습니다. 숱한 고초를 겪으면서도 민주·민중운동의 앞자리를 늘 지켜온 분이었습니다. 경향신문은 ‘통일, 유신 철폐, 노동 해방… 걸어온 삶이 시대의 염원이었다’라는 제목을 뽑았습니다. 선생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 신군부의 보안사령부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한 끝에 81kg이었던 몸무게가 풀려났을 땐 38kg이었고, 고문 후유증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고생하셨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남기신 글귀는 ‘노나메기’였다고 합니다. ‘노나메기’는 ‘너도나도 일하되 모두가 올바로 잘사는 세상’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버스는 끊어지고,/식당을 나서/여인은 걸어간다/퉁퉁 부은 다리를 번갈아/지상에서 살짝 떼었다 무겁게 내려놓는다/비바람이 불지 않아도/눈보라가 몰아치지 않아도/깊은 밤”

  시인은 위의 시에서 ‘이방 여인’의 고단한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 땅에 태어나서도 주인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제 땅에서도 가난하고/낯가리고 겁 많’은 어려운 이웃의 삶에 봄의 햇발이 넘실거릴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정책적 뒷받침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랑과 온기는 과연 어떠한지도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모두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조속히 극복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송창식의 ‘밤눈’입니다.

 

 

김상균 시인.jpg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70년대 후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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