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무속과 괴담 사이 (5)] 라왕세우(Lawang Sewu) - 천 개의 문 뒤에 숨은 천 개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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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과 괴담 사이 (5)] 라왕세우(Lawang Sewu) - 천 개의 문 뒤에 숨은 천 개의 유령

기사입력 2021.02.2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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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인도네시아의 무속문화를 한정된 지면에 모두 세세히 소개할 수는 없지만 항간에 떠도는 도시괴담이나 영화, 문학작품 등을 통해서, 또는 문화적 단서나 연구자들이 생산한 관련 자료와 논문들을 통해, 우리 곁에 의외로 가까이 다가와 있는 현지 무속과 귀신들의 세계, 그리고 직장과 거래선에서, 또는 일상생활 중 만나게 되는 경건한 현지인들 마음 속, 무의식의 저편을 살짝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지려 합니다.

 

 어느 나라나 오래된 저택, 잔혹한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 이해할 수 없는 구조물이 세워진 곳 등엔 그럴 듯한 괴담들이 한 두 개씩 엮어 있기 마련이다. 인도네시아에도 귀신들이 출몰할 법한 으스스한 배경을 가진 곳들이 도처에 있는데 일가족이 몰살당한 남부 자카르타의 고급 주택지 뽄독인다의 폐가,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거대한 문어조형물이 건물 옥상을 기어오르고 있는 반둥의 루마구리따(Rumah Gurita),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포로수용소로 사용되었던 말랑 소재 뚜구(Tugu) 고등학교 단지, 영기 서린 구눙머라삐(Gunung Merapi), 구눙거데(Gunung Gede), 구눙살락(Gunung Salak) 같은 자바의 높은 산들에도 괴담과 전설들이 깃들어 있고 거기서 귀신이나 마물을 보았다는 목격담도 넘쳐난다. 그중 가장 음산하기로 유명한 곳이으로 스마랑의 라왕세우(Lawang Sewu)를 꼽는 이들이 많다.

 

 한동안 TV에서 인기를 얻던 미스터리 리얼리티쇼를 이곳에서 촬영한 담력시범 출연자가 얼마 후 기괴한 방식의 죽음을 맞았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그래서 이곳을 음산한 흉가일 거라 상상하기 쉽지만 사실 라왕세우는 식민지 시대였던 20세기 초에 세워져 네덜란드령 동인도 철도회사 본사로 사용된 기품 넘치는 건물로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를 거쳐 아직도 잘 관리되고 있는 번듯한 유명 관광지다.

 

라왕세우 1930년대.jpg
1930 년대의 라왕세우 건물

 

  라왕세우는 자바어로 ‘천 개의 문’을 뜻하는데 이는 실제로 이 건물에 무수한 문과 창문들이 달려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자카르타 안쪽 북부 바다 위에 떠 있는 불과 몇 십 개 섬들을 묶어 ‘천 개의 섬’(뿔라우스리부)이라고 이름 붙인 것처럼 ‘천 개의 문’은 분명 과장법이 사용된 묘사지만 라왕세우엔 실제로 큰 창문들이 600개 이상 달려 있다. ‘천 개’가 너무 지나친 과장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이 건물이 품고 있는 여러 괴담들도 너무 과장된 건 아니지 않을까?

 

 이 건물의 역사를 먼저 둘러보면 유령들의 사연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스마랑 뚜구무다(Tugu Muda) 로터리 앞에 위치한 라왕세우 건물은 L자와 I자 두 동의 주건물과 기타 부속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는 국영 인도네시아 철도공사(PT. KAI (Persero)) 소유이고 1904년 2월~1907년 7월 기간 건축된 직후엔 동인도에 세워진 첫 네덜란드 철도회사 Nederlandsch-Indische Spoorweg Maatschappij (NISM)의 본사로 사용되었다. 부속건물들이 추가로 지어진 것은 1916년~1918년 사이의 일이다. 그렇게 120년 가까이 된 이 건물은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와 1, 2차 세계대전, 독립전쟁과 수많은 반란 등 인도네시아의 근, 현대사를 지켜보았다.


라왕세우 건물 모형.jpg
라왕세우 건물 모형

 

 코스만 씨트로엥(Cosman Citroen)이 설계한 이 건물은 동인도의 네덜란드 이성주의(Dutch Rationalism)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정면에 보이는 두 개의 쌍둥이 타워는 원래 7천 리터의 물탱크 용도로 세워졌다. 건물엔 커다란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들이 설치되었고 넓은 중앙계단의 고풍스러움엔 식민지 시대의 정취가 물씬 묻어 있다. L자형 주건물 지하엔 과거 주지사 관저와 스마랑 항구까지 이어지는 터널이 건설되어 있었다. 그 뒤편 I자형 건물 역시 크고 높은 창문들이 수없이 달려 있는데 일종의 냉방장치로서 지하층 일부가 늘 지하수가 침수되도록 만들어 그 지하수가 증발하며 건물의 온도를 끌어내리도록 설계했다. 말하자면 일부러 수맥 위에 건물을 지은 셈이다. 

 

 그렇게 철도회사 본사로 사용되던 라왕세우 건물을 1942년 진주한 일본군이 징발해 교통국으로 사용했는데 뒷편 건물을 감옥으로 개조해 여기서 수시로 고문과 처형이 자행되었고 라왕세우 괴담의 대부분이 그 즈음의 사건들을 배경으로 한다. 

 

라왕세우 일제시대.jpg
1942년 일본군 강점기 당시 일본군 교통국으로 사용되던 라왕세우 본관건물 앞

 

  일본군 진주 당시 항복한 네덜란드군들은 별도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 이곳은 인도네시아인 독립투사들이 주로 잡혀왔는데 고문당해 죽은 이들이 수천 명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감옥으로 개조된 차갑고 축축한 지하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문당한 후 머리가 잘렸는데 그 잘린 머리들을 한 구석에 잔뜩 쌓아 두곤 했다는 증언도 있다. 그곳엔 네덜란드군 복장의 유령들은 물론 일본군 유령들도 목격된다고 하는데 특히 좁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나오는 건물 위층에서 창백한 얼굴을 한 네덜란드 여인의 유령 이야기가 유명하다. 그 여인은 고문당할 두려움에 떨다가 결국 자살을 택했다고 하며 직원들이나 방문객들이 목격한 여인의 원혼은 발이 바닥에 닿지 않은 채 허공에서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원수들을 찾아다닌다고 한다. 

 

 일본이 패망한 후 독립전쟁이 불붙던 1945년 10월 인도네시아에 진주한 연합군 일부가 라왕세우의 L자 건물 지하통로를 통해 도시 진입을 시도하며 인도네시아 측에 큰 사상자를 냈는데 건물에서 일하던 직원들 다섯 명도 목숨을 잃었다. 그 다섯 명을 기리는 기념비가 라왕세우 건물 앞에 세워져 있다. 

 

 1949년 인도네시아가 주권을 회복한 후 제4지역군 디포네고로 부대 사령부로 사용되다가 1994년 국영철도국(Perumka-이후 국영철도공사가 됨)에 귀속되었다.

 

 2009년엔 최초 건축한 지 100년이 지난 L자형 주건물에 대한 전반적인 수리와 복원공사가 시작되었고 2011년 7월 5일 Purna Pugar Cagar Budaya Gedung A Lawang Sewu라는 이름으로 재개관되어 스마랑의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이때는 라왕세우 괴담이 이미 전국에 파다했으므로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당국에서 라왕세우에 대한 관광홍보에 더욱 노력한 측면도 있다. 

 

 

라왕세우 지하계단.jpg
I자 건물 지하와 연결된 계단

 

 현재 라왕세우는 인도네시아 철도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증기기관 모형과 식민지 시대 사용하던 타자기 등 집기, 여러 희귀 문서들을 전시되어 있다. 

 

 라왕세우의 괴담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데엔 2007년 9월 개봉한 영화 <라왕세우: 꾼띨아낙의 복수(Lawang Sewu: Dendam Kuntilanak)>도 한 몫을 했다. MD 픽처스 제작, 아리 아지스(Arie Azis) 감독 작품이다. 

 


라왕세우 영화.jpg
<라왕세우: 꾼띨아낙의 복수 (Lawang Sewu: Dendam Kuntilanak)>

 

 그런데 라왕세우처럼 인도네시아 근현대사와 얽힌 전설과 괴담을 들여다보면 어딘가 인지부조화를 느끼는 지점이 있다. 괴담에 등장하는 외국인 유령들 중 네덜란드인들은 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젊은 여인 또는 민간인 유령으로 표현되고 일본인들은 죽어서도 군복을 입고 단체로 움직이며 누군가의 목을 베거나 자신들 목이 떨어지고도 뭔가를 계속 도모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즉 네덜란드인 유령들은 인도네시아인들이 감정이입하기 쉬운 피해자 쪽이거나 어딘가 연민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일본인 귀신들은 대체로 단체로 등장하는 강박적인 가해자로 묘사된다. 말랑의 뚜구 고등학교 콤플렉스 강당에서도 밤마다 목이 없는 일본군들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현대사에서 일부러 찾아보려 하지 않는 한 항일투쟁 부분은 별로 드러나 있지 않다. 그렇다고 1942년 당시 350년간 인도네시아를 철권으로 강점하고 착취하던 네덜란드군을 쳐부수고 진주한 일본군에게 인도네시아인들 모두가 환영일색이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네덜란드에게 항거한 것 못지 않는 저항이 일본군 강점기에도 벌어졌고 인도네시아 공화국 1대, 2대 총리를 지낸 수딴 샤리르와 아미르 샤리푸딘은 모두 항일전사 출신이다. 하지만 그들의 항일운동이 대체로 저평가되어 묻혀버린 것은 항일운동에 적극 가담한 이들 중엔 이후 몇 차례의 반란과 9,30 쿠데타 등으로 공공의 적으로 전락해버린 공산주의자들이 적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지금껏 국부로서 추앙받고 있는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과 하타 부통령이 전범급 적극적 일본군 부역자 출신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일본의 힘을 빌어 네덜란드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친일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일본 극우에 동조하는 한국의 망국적 친일세력과는 그 결을 달리 한다. 

 

 아무튼 수카르노와 하타의 전력으로 인해 일본군이 벌인 만행이 축소되고 미화된 측면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정치색을 전혀 담지 않은 도시전설과 괴담들은 당시 민초들의 눈에 비쳤던 외국인들에 대한 감정을 투영한다. 당시 식민지시대 현지 사회지도층에게 네덜란드는 타도의 대상, 일본은 협력의 대상이었지만 어쩌면 대다수 서민들에게 네덜란드인들은 너그러운 주인의 이미지를, 일본군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을 막무가내로 뎅겅뎅겅 처댄 무시무시한 망나니의 이미지를 심었고 그 이미지가 라왕세우와 인도네시아 각지의 괴담 속에 등장하는 외국인 유령들에게서 발현된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라왕세우의 유령들은 오늘도 밤이 내리면 적막한 건물의 긴 복도를 거닐며 그들이 목숨을 잃던 날의 비극을 또다시 되풀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라왕세우는 지금도 가장 귀신이 많이 출몰하는 지역 중 첫 번째로 꼽힌다. [데일리인도네시아]

 

 2021. 1. 21.

 

 

♣배동선 작가는 인도네시아의 동포 향토작가. 현지 역사, 문화에 주목하며 저서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와 공동번역서 <막스 하벨라르>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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