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무속과 괴담사이 (6)] 빙의인형 – 즐랑꿍(Jelangkung)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무속과 괴담사이 (6)] 빙의인형 – 즐랑꿍(Jelangkung)

기사입력 2021.03.05 11:3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편집자주] 인도네시아의 무속문화를 한정된 지면에 모두 세세히 소개할 수는 없지만 항간에 떠도는 도시괴담이나 영화, 문학작품 등을 통해서, 또는 문화적 단서나 연구자들이 생산한 관련 자료와 논문들을 통해, 우리 곁에 의외로 가까이 다가와 있는 현지 무속과 귀신들의 세계, 그리고 직장과 거래선에서, 또는 일상생활 중 만나게 되는 경건한 현지인들 마음 속, 무의식의 저편을 살짝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지려 합니다.

 

사진1.jpg
<자일랑꿍(Jailangkung)>(레거시 픽쳐스, 2017년)

 


  빙의한 귀신을 쫒아내려는 콘스탄틴이나 구마사제들이 있는 것처럼 그 반대로 초혼술로 죽은 자의 혼령을 소환하려는 시도도 예로부터 늘 있어 왔습니다.

 

  강령술은 대개 죽은 자에게 미처 듣지 못한 얘기들을 묻기 위해 행해지는데 비명횡사한 자의 혼령에게 죽음의 원인, 찾지 못한 시신 위치를 묻거나 급사한 재력가에게 유산에 대한 상속의지를 묻는 것 등이 주종이었죠. 하지만 만만찮은 비용이나 번거로운 절차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영매를 사칭하는 사기꾼들의 발호는 차치하고서 말입니다.

 

  액토플라즘과 떠오르는 테이블을 발생시키는 서구의 강령회 말고도 우리 가까이 민간에서 적잖은 초혼술이 행해지는데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여고생들이 볼펜을 맞잡고 주문을 외는 분신사바 같은 것입니다. ‘분신사바’란 일본어 分身樣 (분신사마)에서 온 것이 분명하고 혼령을 부르는 주문 역시 '분신사바 분신사바 이윳테 쿠다사이'(분신님 분신님, 말해주세요) 또는 좀 더 원어에 가깝게 ‘분신사마 분신사마 오이데 쿠다사이’(分身様 分身様 おいで下さい 분신님 분신님 와주세요)와 같이 일본어 주문을 외는 것이니 말입니다. 한국귀신들 소외감 느낄 듯합니다.

 

사진2.jpg

 

 분신사바의 원조 격인 일본의 코쿠리상은 3-4명 정도가 참여하고 숫자, 고주온도(일본어 자모음표), 네, 아니오, 그리고 신사 기둥모양 등을 그린 종이 위에 10엔짜리 동전을 놓고 참가자들이 그 위에 집게손가락을 함께 올려놓고서 코쿠리상을 부르는 주문을 외우는 놀이입니다. 그러면 여우의 혼령이 동전에 빙의해 참가자들 질문에 대답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초혼술이 정말 효과를 발휘한다고 믿는다면 명시된 절차를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분신사바나 코쿠리상을 통해 어떤 존재가 정말 그 자리에 나타난다면 보통 사람들이 그걸 제대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례는 서양의 위자보드(Ouija Board) 사용 후기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위자보드란 단어가 좀 생소할 지 모르지만 우리가 헐리웃 영화에서 수없이 보아왔던 이렇게 생긴 물건입니다.

 

사진3.jpg

 

 위자게임은 두 명 이상이 마주보고 앉은 후 말판 위에 손을 얹고 주문을 외우면서 시작됩니다. ‘주위에 누가 와 있나요?’라는 질문에 말판이 Yes를 가리키면 본격적으로 게임이 시작되는데 처음에는 Yes와 No 로 답할 수 있는 것에서 점차 알파벳으로 단어를 완성하는 식으로 말판이 움직이게 됩니다. 하지만 이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은 절대 혼자 이 게임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15분 이상 게임을 지속해도 안되고, 말판이 위자보드에서 떨어지면 영혼은 사라지게 된다는 등의 암묵적인 절대 규칙들이 존재합니다.

 

 이 위자보드에 대해서도 영화가 몇 편씩이나 나와 있고 무시무시한 얘기들이 넘쳐납니다. 분신사바, 코쿠리상, 위자보드 모두의 공통된 문제는 초혼술을 통해 불러낸 악령이 돌아가지 않고 온갖 기괴하고 소름끼치는 일을 벌이기도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런 위험성을 애초에 최소화시키는 소환주문이 있습니다.

 

  Jelangkung jelangsat      즐랑꿍, 쯜랑섯

  Di sini ada pesta          디 시니 아다 뻬스따 (여기 잔치가 열렸네)

  Pesta kecil-kecilan        뻬스따 끄찔끄찔란 (아주 작은 잔치가 말이야)

  Jelangkung jelangsat      즐랑꿍, 즐랑섯

  Datang tidak diundang     다땅 띠다 디운당 (왔지만 초대한 적 없고)

  Pergi tidak diantar         뻐르기 띠다 디안따르 (돌아간데도 배웅하지 않아)

  

  맨 마지막 두 구절은 이렇게도 불립니다.

 

  Datang Ga Dijemput    다땅 가 디즘뿟   (오더라도 데리러 가진 않고) 

  Pulang Tak Diantar     뿔랑 딱 디안따르 (가더라도 데려다 주진 않아.)

 

  올 테면 오고 갈 테면 가라니 깔끔하지 않습니까? 

  

  분신사바나 코쿠리상을 할 만한 나이의 인도네시아 학생들이 즐랑꿍 놀이를 통해 혼령을 부르는 주문입니다. 즐랑꿍 (Jelangkung)이란 귀신을 소환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인형, 또는 그 인형을 통해 혼령을 소환하는 ‘놀이’를 지칭합니다, 하지만 즐랑꿍 놀이에도 사뭇 음습한 에피소드나 전설들이 많이 전해집니다.

 

                                                      ========

 

  자와(Jawa)지역 한 산골마을엔 경외의 대상이던 두꾼이 살았습니다. 약초와 주술로 마을사람들 병을 고쳐주던 그는 가난했지만 한때 저주술 두꾼으로 악명을 날렸던 사람입니다. 결혼을 하며 마음을 잡은 그에겐 성실한 아들이 한 명 있었어요. 아들은 주술을 배우지 않고 대신 열심히 땀 흘려 가세를 일으켰습니다. 도시에 나가 떼어온 물건들을 마을과 인근 시골에 팔았는데 부지런함과 서글서글한 성격, 그리고 뛰어난 장사수완으로 큰 돈을 벌어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아들에게 부담주지 않기 위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 속에 움막을 짓고 살던 아버지는 옆 마을 지체 높은 집안과 혼담이 오갈 때엔 뿌듯한 마음에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습니다. 아버지가 뚜율을 부리거나 귀신들의 힘을 빈 재물주술로 아들을 형통하게 한다고 사람들이 수근거리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어차피 두꾼이란 마을에 상서롭지 않은 일이 생길 때마다 곧잘 혐의를 뒤집어쓰는 직업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수근거림과 비난은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이번엔 더 많은 말과 수레를 끌고 물건을 떼러 도시로 떠난 아들과 일행이 많은 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백방으로 수배했지만 그 행방이 묘현했습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또 다시 몇 달이 지나자 사람들은 아들의 재산을 갉아먹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아들이 피땀 흘려 쌓아 놓은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하릴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욱이 그가 몇 번씩이나 뽑아 본 점괘는 아들이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의 시신이라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산막을 닫고 세상을 떠돌았습니다. 그러나 아무 소득도 없이 몇 개월 만에 돌아온 마을에서 그는 자신의 산막마저 불타 없어지고 딸들도 팔려갔는데 피눈물을 흘리며 몸져누운 아내마저 결국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마을사람들은 그의 가족들에게 매정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두꾼은 문득 이 모든 재난에 어쩌면 마을 사람 누군가가 연루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사진4.jpg

 

  그날 밤 그는 나무와 지푸라기를 엮어 만든 사람크기 인형에 옷을 입히고 막대 팔을 달아 마을 광장에 나타납니다. 거기선 마을 사람들의 잔치가 한창이었습니다. 광장 한 가운데에 나무인형을 세워놓은 두꾼은 어리둥절한 마을 사람들 앞에서 초혼술을 펼쳐 죽은 아들의 영혼을 불러 나무인형에 덧씌웁니다.

 

  “아들아! 너는 과연 죽고 만 것이냐?  너의 차가운 몸은 지금 어디에 누워 있느냐?”

 

  나무인형이 움직이며 팔이 북쪽 산 너머를 가리킵니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아! 같이 간 사람들은 어디에 있느냐? 그들은 모두 어디에 있느냐?”

 

  나무인형의 팔은 여전히 북쪽 산 너머를 가리켰습니다. 그들도 그쪽 멀리 어딘가에 함께 묻혀 있는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아들아! 너는 왜 죽었느냐? 혹시라도, 너를 죽인 사람이 여기 이 사람들 중에 있느냐? 만약 있다면 누군지 가르쳐 다오!!”

 

  한맺힌 두꾼의 목소리가 광장에 쩌렁쩌렁 메아리 치자 나무인형은 마치 발이라도 달린 것처럼 미끄러지듯 광장을 가로지르며 그 팔로 사람들을 가리키기 시작했습니다. 한 명, 두 명…, 열 명…, 이십 명…, 오십 명.... 두꾼은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아들의 성공을 보고 시기심에 눈먼 마을사람 모두가 작당하여 도시로 떠나던 아들 일행을 저 북쪽 산속에서 따라잡아 모두 죽여 파묻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마을의 여인들은 그 사실을 알고서도 쉬쉬하며 죄책감도 없이 아들의 재산을 갉아먹었습니다. 마을사람들 얼굴은 흙빛으로 변했고 두꾼의 두 눈에선 불똥이 튀었습니다.

 

  그날 밤 두꾼은 자신의 생명을 제물로 온갖 악독한 귀신들을 소환해 자신이 알고 있는 최악의 산뗏저주를 마을에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 마을은 마치 수백 년 동안 아무도 살지 않은 폐허처럼 변해 있었고 온전히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없는 그 곳에 두꾼이 만든 나무인형만이 산처럼 쌓인 마을사람들의 시체들 위에 덩그러니 홀로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

 

  즐랑꿍은 사실 그 기원이 고대 중국본토라고 합니다.

 

  즐랑꿍(Jelangkung)이라는 이름은 중국어의 ‘야채바구니 혼령’이란 의미의 ‘짜이 란 공’(Cai Lan Gong = 菜篮公)에서 유래했다고 여겨지는데 반으로 가른 박 모양의 말린 야자열매를 머리로 하고 팔에 필기구를 장착한 인형의 모양을 하고 있는 반면 중국의 즐랑꿍은 아랫부분을 야채바구니에 고정해 혼자 서 있을 수 있도록 한 형태입니다.

 

  즐랑꿍 놀이도 코쿠리상이나 의자보드와 같이 꼭 지켜야 하는 일정한 규칙이 있습니다.

 

  준비물

  - 나무인형, 야자열매 바가지인형 또는 지푸라기인형, 묘지에서 가져온 진흙

  - 온전한 공물

  - 꽃잎 공양

  - 쓴 커피와 설탕 넣은 커피, 쓴 차와 설탕 넣은 차, 물, 각각 다른 유리컵 사용

 - 한 군데에서 수확한 미직, 자파론, 장미에서 얻은 기름 각 한 스푼

 - 시장에서 파는 군것질 거리 일곱 가지

  

  물론 인도네시아 학생들이 즐랑꿍 놀이를 할 뗀 그냥 나무인형과 받침대, 또는 고무줄 정도만 준비하는 게 보통입니다. 

 

  * 규칙

  - 반드시 밤 9시에 실시 (그 이전엔 안됨)

  - 참가자는 최소 5명이상. 꼭 홀수여야 함.

  - 혼령이 도착했을 때 도망가거나 기절하는 등 이상행동 금지.

  - 혼령이 도착했을 때 달아나면 나중에 화가 미침.

  - 놀이는 뜰이나 빈 집 또는 밀폐된 방에서 행한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즐랑꿍 놀이를 해 본 사람 이야기에 따르면 이런 규칙들을 다 무시하고 성냥개비나 수수깡으로 알파벳 A자를 만들어 꼭지점에 머리를 달고 한쪽 다리에는 연필을 끼웠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 양쪽에서 맞잡은 두 줄의 고무줄 위에 인형을 앉혀 놓고서 여러 명이 함께 주문을 외워 인형을 움직이게 했죠. 물론 고무줄이 탄성에 떨리며 그 바람에 인형이 한쪽 발로 개발새발 그리는 그림에 초등 여학생들이 까무러치도록 놀랐을 것은 틀림없습니다. 학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명을 지르며 인형을 내팽개치고 방에서 도망쳐 나왔는데 그날 밤부터 매일 밤 누군가 집문이나 방문을 두드려 나가 보면 아무도 없는 이상한 일들이 계속 벌어졌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들 한동안 귀신에 쫓기는 악몽에 시달렸다고 하더군요. 이 역시 초혼술로 소환한 귀신을 제대로 돌려보내지 못해 벌어지는 일입니다.

 

  인도네시아의 즐랑꿍이 코쿠리상이나 위자보드보다 획기적으로 우수한 부분이 한 가지 엿보입니다. 코쿠리상이나 위자보드처럼 귀신을 불러내 ‘예’ 또는 ‘아니오’로 대답하는 게 아니라 즐랑쿵은 주관식으로 대답합니다. 인형에 끼워 놓은 필기구로 직접 글을 쓰니 말입니다. 즐랑꿍 인형의 작동은 무당이 날 선 작두 위에서 널 뛰는 것 정도의 분명한 강령의 증거를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끝)

 

사진5.jpg

 

 

♣배동선 작가는 인도네시아의 동포 향토작가. 현지 역사, 문화에 주목하며 저서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와 공동번역서 <막스 하벨라르>를 출간했다.

 

 


<저작권자ⓒ데일리인도네시아 & dailyindonesia.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