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이 지고 있네
송찬호
기어이 기어이 동백이 지고 있네
싸리비를 들고
연신 마당에 나서지만
떨어져 누운 붉은 빛이 이미
수백 근을 넘어 보이네
벗이여, 이 볕 좋은 날
약술도 마다하고
저리 붉은 입술도 치워버리고
어디서 글을 읽고 있는가
이른 아침부터
한 동이씩 꽃을 퍼다 버리는
이 빗자루 경전 좀 읽어보게
문학과지성 시인선 239 『붉은 눈, 동백』 문학과지성사, 2000
“기어이 기어이 동백이 지고 있네/싸리비를 들고/연신 마당에 나서지만/떨어져 누운 붉은 빛이 이미/수백 근을 넘어 보이네……”
매화가 지고, 한겨울을 이겨낸 동백이 ‘기어이’ 지고 있네요. 겨우내 불의 심장 같은 꽃을 피운 채 봄이 가까이 있음을, 머지않아 꽃들의 개화가 이어질 테니 견디라고 참아내라고 우리에게 힘을 줬었는데 말입니다. 눈부시게 하늘거리는 꽃잎을 봄바람에 팔랑거리는 벚꽃의 만개와 함께, 뒤란에서 묵언 수행이라도 하는 듯, 참았던 눈물을 떨구듯, 뚝뚝 송이째 떨어지는 동백의 낙화는 묘한 아름다움을 줍니다. ‘때’와 ‘분수’라는 것을 꽃과 나무는 저리도 잘 아는데, 우리는 언제나 자연의 순리를 선선히 받아들일는지요.
모두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조속히 극복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Doris Day의 ‘Fly me to the moon’입니다.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70년대 후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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