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무속과 괴담 사이(21)] 폭동이 빚은 지옥도 몰 끌렌더르 (Mall Kle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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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과 괴담 사이(21)] 폭동이 빚은 지옥도 몰 끌렌더르 (Mall Klender)

기사입력 2021.09.29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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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지고 아시아와 세계가 경제위기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던 1998년 5월, 자카르타에서는 수하르토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민주화운동이 일어났고 그에 편승한 도시빈민들의 폭동과 약탈이 벌어졌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의 1998년 5월은 앞과 뒤가 서로 다른 그림을 담고 있는 동전과도 같다.


 자카르타 폭동은 공식적으로 1998년 5월 12일에서 15일까지 나흘간 전개되면서 자카르타를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만들었고 1,200명 넘는 사망자를 냈다. 여기저기서 약탈과 소요가 벌어졌고 특히 화교들에 대한 린치와 화교 여성들에 대한 잔혹한 겁탈과 살해가 공공연하게 벌어졌다. 


 이후 수하르토가 하야한 후에도 자카르타의 팽팽한 긴장감은 오래 동안 계속되었고 이 시기의 혼란이 불 붙인 종교분쟁, 종족분쟁은 1년 넘게 전국을 휩쓸며 수많은 희생자를 냈다.

 

 상황이 치안당국의 통제를 훌쩍 넘어선 1998년 5월 15일 벌어진 족자플라자 (Yogya Plaza) 약탈사건은 치명적인 화재와 큰 인명피해로 이어졌다. 현재 몰 끌렌더르(Mall Klender)’라 불리는 ‘몰 찌뜨라 끌렌더르(Mall Citra Klender)’는 당시 전소한 ‘몰 족자(Mall Yogya)’를 수리하여 재건축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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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몰 끌렌더르(Mall Klender)

 

 당시 머르데카닷컴 기사에 따르면 그날 오전, 몰 경비원들이 바리케이드를 세워 폭도들의 난입을 막으려 했으나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폭도들이 오전 11시 경부터 마침내 바리케이드를 뚫고 몰 안으로 밀려들었다.

 

 몰은 당시 며칠 간 계속된 폭동으로 정식 개장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하나 또 다른 보도에서는 당시 상당수의 상인들과 손님들이 몰 안에 있었다고도 한다. 아무튼 폭도들이 난입했을 때엔 몰 안에 조명이 모두 꺼진 상태여서 폭도들은 암흑 속에서 약탈을 벌였고 상당수가 방향감각을 잃었다.

 

 그런 와중에 6층까지 올라간 폭도들이 침대와 옷가지들을 1층 홀에 던져 쌓아 놓고 기름을 뿌려 불을 붙였다. 그것은 자살행위였다 불이 타면서 발생한 유독성 연기가 자욱이 번지자 1층에선 호흡곤란으로 졸도하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불길이 급속히 위층으로 번지자 출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다급하게 창 밖으로 뛰어내리기도 했다. 그들 중 일부는 밑에서 사람들이 받아줘 목숨을 건졌다.

 

 일각에서는 이 화제가 일단의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저지른 방화라고 주장한다. SLTA(고등학교) 학생복장을 한 일단의 청년들이 푸조(Fuso) 트럭에서 기름통을 내리는 것이 목격되었고 화재가 시작된 후 그 청년들이 아까 그 트럭을 타고 그곳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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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폭동 당시 약탈 장면 및 화재가 진압된 후의 몰 끌렌더르 모습

 

그렇게 시작된 불이 건물 전체를 집어삼켰다. 

화재가 진압된 후 드러난 몰 안의 상황은 지옥도를 방불케 했다. 화염 속에서 불타 녹아내려 신원확인조차 어려운 400구 정도의 시신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매체에 따라 이 화재로 목숨을 잃은 사망자가 300명이라는 곳도 있고 450명이란 곳도 있다. 워낙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은 상황에서 시신수습과 신원확인이 제대로 이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신들이 녹아내리거나 완전히 타버린 채 뒤엉켜 있어 형체가 제대로 남지 않은 경우도 허다했다.

 

'인권을 위한 자원봉사팀’이 자카르타 폭동 후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끌렌더르의 족자 플라자(Yogya Plaza) 약탈사건은 자카르타 폭동이 최고조였던 1998년 5월 15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경까지 두 시간 사이에 벌어졌고 이후 방화로 전소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구축한 공식 집계에 따르면 자카르타 폭동과 그 이후 치안불안이 계속되던 1998년 5월 12일부터 6월 2일까지 약 1200 여명이 사망하고 31명이 실종되었는데 이중 총기나 도검에 의한 사망자는 27명에 불과했지만 화재로 사망한 이들(화재에 휘말리거나 폭도들에게 겁탈당한 후 불 속에 던져진 화교 여인들을 포함) 1,190명에 달했다. 이 자료에서는 족자 플라자에서 치명적인 화재가 벌어진 5월 15일 자카르타 전역에서 564명이 화재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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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신원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사망한 이들의 상당수가 아직까지도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대부분 폭도들일 것으로 추정하지만 가족들을 구하러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고 하며 상인들과 손님들이 몰 3층에 대피해 있다가 화재를 피하지 못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5월 15일은 폭동이 시작된 지 나흘째 되던 날이었고 폭동 첫날부터 자카르타 곳곳에서 약탈이 벌어지면서 몰은 물론 재래시장들조차 모두 문을 닫았는데 족자플라자(몰 끌렌더르)만 혼자서 꿋꿋하게 문을 열었을 리 없다. 따라서 닫힌 몰 안에 상인들과 손님들이 있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사망자들 대부분은 약탈하러 들어갔다가 몰 안의 어두움과 밀폐된 공간에서 급격히 번진 화염과 유독가스 때문에 결국 빠져나오지 못한 폭도들이란 추론이 우세하다. 하지만 신원이 확인된 일부 사망자 유족들로서는 가족이 불타 죽은 것도 억울한데 폭도나 약탈자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것이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망자들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사망자들이 상인이나 손님으로 바뀌고 여러 버전의 사건 배경과 전개가 나오면서 실체가 분명치 않은 도시전설로 변모해 간 것으로 추정된다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자카르타 폭동의 흔적이 지금은 시내에서 대부분 사라졌지만 폭동 당시 파괴된 건물들과 다른 흔적들이 꽤 오랫동안 방치되기도 했다. 그리하여 1998년 5월은 수하르토 철권정치를 종식시킨 민주화운동의 승리보다는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자카르타의 폭동의 잿빛 5월로 기억되고 있다.

 

족자플라자는 화재 2년 후인 2000년에 다시 건축되어 몰 끌렌더르(Mall Klender)라는 이름을 바꿔 달고 영업을 시작했으나 자카르타 폭동 당시 족자플라자 화재사건은 인근 주민들의 트라우마로 남았고 그 사건이 남긴 도시전설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많은 괴담과 유령 목격담이 나오면서 오래된 상처를 건드렸다.

 

몰에 손님들이 아직 많지 않던 재개장 초기, 특정시간에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들썩거리지는 분위기가 느껴지곤 했는데 이는 당시 희생자 유령들이 몰 안을 돌아다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라와망운(Rawamangun)행 27번 앙꼿 버스를 탄 한 승객은 함께 타고 있던 다른 승객들이 재건축 전이어서 아직 전소된 상태 그대로였던 몰 끌렌더르 앞에 내려 건물 안으로 사라지듯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자신이 유령들과 함께 버스에 탔음을 알았다는 경험담을 전했다.

 

실제로 몰 끌렌더르의 화재사건이 있고 나서 사흘쯤 되던 시점에 인근 앙꼿 버스 기사들은 기괴한 손님들을 자주 태웠다고 한다. 처음 탈 때엔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지만 몰 끌렌더르 앞에 내린 그들이 눈 앞에서 홀연히 사라지거나 버스요금으로 낸 지폐가 나뭇잎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인도네시아에서 나뭇잎은 귀신들이 둔갑시켜 사용하는 전용지폐다. 

 

몰 끌렌더르 괴담이 퍼져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는 것조차 두려워하던 시절, 몰 주변에 화재나 연기가 보이지 않는데도 매캐한 연기냄새와 함께 어디선가 사람들이 울부짖으며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어디든 괴담이 도는 곳이면 담력훈련을 하려 찾아오는 사람들이 꼭 있기 마련인데 족자플라자 1층 전화박스에 귀신이 출몰한다는 괴담을 들은 두 명의 대학생이 이를 확인하려 했다. 그들은 밤 11시경 몰 안에 숨어들어 1층 전화박스에서 세 시간쯤 기다렸으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결국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막 돌아가려 하던 새벽 1시경 살이 지글지글 불에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복도에 켜 있던 전구도 갑자기 꺼졌고 어둠 속에서 타는 냄새가 더욱 강해지면서 몸이 전소되어 비틀어지고 얼굴이 녹아 흘러내린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식의 유령 목격담은 몰 끌렌더르 주변에 얼마든지 넘쳐난다. 2000년에 마글랑에서 자카르타에 온지 얼마 안된 아버지와 아들이 새벽 두 시경 집에 가려고 몰 앞 정류장에서 앙꼿 버스를 기다리는데 판매원 복장의 여성이 몰 방향에서 걸어와 정류장 의자에 앉았다. 잠시 후 아버지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도 급히 아들을 잡아 끌어 정류장을 벗어났는데 이상하게 여긴 아들이 정류장을 돌아보자 여성 판매원은 몸이 반쯤 타버린 모습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

 

재건축이 진행될 당시에도 그곳에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는데 밤 늦게 그로박(간단한 조리기구를 장착하고 음식재료를 실은 폭이 좁은 리어카)을 끌고 그 앞을 지나는 영세상인들의 목격담이 특히 많았다. 새벽 한 시 반쯤 족자 플라자 앞을 지나던 나시고렝(nasi goreng-볶음밥) 상인은 자신을 불러 세우는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았지만 거기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살짝 겁을 먹은 상인이 그곳을 벗어나려 몇 걸음 옮기자 갑자기 아무도 없던 길가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옷과 몸이 일부 타버린 남자가 다리도 없이 공중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재건축한 몰에서 일하게 된 한 경비원은 야간경비를 서다가 동료들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는데 3층에서 복도 끝을 돌아 사라지는 동료 뒤를 따라가다가 갑자기 시체냄새가 풍기는 것을 느꼈다. 3층은 가장 많은 시체들이 발견된 곳이다. 무서움을 느낀 그가 급히 달려 복도 끝을 돌았지만 앞서 가던 동료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시체냄새가 더욱 강해졌다. 머리 속이 새하얗게 된 그는 전력으로 달려 도망치듯 1층으로 내려갔다. 동료들이 거기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 데도 가지 않고 계속 1층에만 있었다는 것이다. 경비원은 아까 누구를 따라 3층까지 갔던 것일까?

 

넘쳐나는 몰 끌렌더르의 괴담은 2014년 <몰 끌렌더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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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작 영화 <몰 끌렌더르>

 

많은 사람들이 처참하게 목숨을 잃은 사건들을 얼마 지나지 않아 상업영화, 그것도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호러 영화로 만드는 현지 영화제작사들의 의도가 때로는 사건 자체보다 더 섬뜩하게 느껴지곤 한다. 


인도네시아인들은 무슬림은 물론 비무슬림들도 지아라(ziarah)라는 것을 즐겨 한다. 일종의 순례인 지아라는 성인들, 이슬람 높은 학자들, 유명인들의 묘지를 돌며 추모하는 행사로 치러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죽은 이들의 넋, 또는 그들이 남긴 좋은 기운이 거기 남아 있어 그 정기를 받기 위함이다. 그래서 수카르노, 디포네고로, 수디르만 등 인도네시아 역사상 유명한 위인들의 묘지엔 평소에도 많은 참배객들이 다녀간다. 


그런 측면에서 사람들이 몰 끌렌더르에 당시 죽은 이들의 기운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건 귀신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와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1998년에 타버린 건물은 완전히 새단장을 마친 지 오래지만 아직도 몰 끌렌더르는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가장 앙커르(angker)한 곳, 즉 가장 귀신이 자주 출몰하는 곳으로 꼽힌다. (끝)


♣배동선 작가는 인도네시아의 동포 향토작가. 현지 역사, 문화에 주목하며 저서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와 공동번역서 <막스 하벨라르>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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