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무속과 괴담 사이(23)] 살아있는 시체들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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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과 괴담 사이(23)] 살아있는 시체들의 나라

기사입력 2021.10.30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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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 도입.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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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술라웨시 토라자 지역


 

인도네시아 문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토라자(Toraja)를 거론할 때 고지대에서 수확되는 향 좋은 명품 아라비카 커피 브랜드와 선대의 시신을 무덤에서 꺼내 옷을 갈아 입히고 같이 생활하는 기괴한 이미지를 떠올릴 것 같습니다. 


토라자의 독특한 문화가 서구권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70년대의 일로 토라자의 순혈 상알라(Sangalla) 마지막 고위 귀족의 장례식에 400여명의 조문객들이 찾아와 축제처럼 거행되었는데 그 모습이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을 통해 공개되면서부터입니다. 토라자의 독특한 문화는 이후 술라웨시의 유력한 관광상품이 되었고 매년 수만 명의 관광객이 토라자를 찾는데 특히 마네네(Ma’nene) 의식이 치러지는 7-8월경에 몰립니다. 


과거 네덜란드 동인도 정부는 술라웨시 마카사르족과 부기스족 사이에 이슬람이 급속도로 확산하며 민족주의가 팽배하자 아직 대부분 정령신앙을 가지고 있던 남부 고산지대 토라자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해 친정부 세력으로 끌어들이려 했습니다. 국가 개념보다는 부족 개념이 강했던 당시 토라자인들은 마카사르, 부기스 족에 맞서 많은 수가 기독교로 개종했고 독립 후에는 자바를 근거지로 수카르노 정부와 대립하던 다룰이슬람 반군이 술라웨시까지 들어와 15년 간 게릴라 활동을 벌이는 동안 이에 대한 반발로 더 많은 수의 토라자인들이 기독교에 편입되었습니다.


그래서 토라자인들 중 아직도 알룩 또돌로(Aluk Todolo) 전통신앙을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이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돌로란 조상을 뜻하며 알룩 또돌로는 조상들로부터 대대로 믿어 내려온 알룩 신앙이란 뜻이죠. 하지만 이슬람, 개신교, 천주교, 힌두, 불교의 5대 종교만 인정하던 초창기 인도네시아 정부가 토라자인들의 전통신앙을 합법적인 종교로 받아들인 것은 1969년에 이르러서의 일이고 그나마 별도의 종교가 아니라 힌두교의 한 분파로서 인정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알룩 신앙이 힌두교와 어느 부분에 접점이 있는지는 좀 애매합니다. 알룩 신앙의 창조신 뿌앙 마뚜아(Puang Matua)는 땅의 신, 지진의 여신 죽음의 신, 치료의 여신 등 데와타(Dewata)라고 통칭되는 여러 신들 위에 군림하는 최고신입니다. 세상의 시작은 하늘과 땅이 혼인하면서 먼저 어둠이 나왔고 어둠을 가르며 빛이 나왔다고 합니다. 뿌앙 마뚜아는 신을 위한 천계, 사람들을 위한 지상세계, 그리고 짐승들이 사는 지하세계를 창조했는데 최초의 인간은 천계에서 사다리를 타고 지상에 내려왔습니다. 그 통로가 아직도 남아 인간세계가 신들과 소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알룩 신앙의 그 어디에도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 같은 전통적인 힌두신들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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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자의 똥꼬난 가옥들

 

 

토라자의 똥꼬난(Tongkonan)가옥은 남부 술라웨시의 다른 지역 전통가옥들에 비해 크게 달라 보이진 않지만 현대식 건물 하나도 없이 오로지 똥꼬난으로만 한 마을이 이루어진 풍경은 역시 매우 인상적입니다. 똥꼬난은 원래 네 개의 기둥 위에 지어진 천계의 건축물이었는데 토라자족의 조상이 천계에서 지상에 내려온 후 천계의 그 집을 흉내내 지었다고 합니다. 토라자 말로 ‘똥꼰’은 ‘앉는다’라는 뜻이어서 똥꼬난의 모습은 뿌앙 마뚜아가 가부좌를 틀고 앉은 모습을 본 딴 것인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누구나 재력이 있다면 지을 수 있는 똥꼬난 가옥은 원래 귀족 전용이었는데 그것도 등급이 있어 관청, 부족장, 일반 귀족들의 똥꼬난이 각각 다르고 일반 평민들은 똥꼬난 근처에 바누아(Banua)라고 부르는 단촐한 대나무집을, 1909년까지 존속했던 노예들은 따로 작은 오두막을 짓고 살았습니다.


1985년 남술라웨시 주정부가 18개의 전통마을과 매장지를 관광지로 지정했는데 아무리 같은 알룩 또돌로 신앙을 가진 이들 똥꼬난 마을들이 모든 전통을 일사불란하게 똑같이 공유하는 것은 아니어서 지리적 위치나 환경에 따라 각각 어느 정도 차이가 나, 토라자를 방문한 관광객들의 후기를 보면 어딘가 미묘하게 엇갈리는 부분들이 발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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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꼬난 건물을 쏙 빼어 닮은 람부솔로 장례식의 상여 행렬

 


토라자의 알룩 또돌로 신앙공동체가 행하는 람부솔로(Rambu Solo) 장례의식은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보존된 가장 오래된 장례문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람부솔로 장례식은 성대하기로 유명한데 일견 그 성대함이 자손들의 등골을 빼먹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토라자 사람들은 이를 위해 미리 오랫동안 저축하는데 집안의 어른이 돌아가시면 그 시신을 집안에 두고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대하듯 음식도 제공하고 목욕도 시키고 새 옷을 갈아 입혀 함께 외출하기도 하면서 몇 년을 함께 지내는 동안 시신은 미이라가 됩니다. 그 사이 돈이 충분히 모이면 드디어 장례식을 열어 망자를 떠나보낼 수 있게 되는 거죠.


고귀하고 부유한 집안일수록 람부솔로 장례식은 더욱 성대하고 여러 날에 걸쳐 거행됩니다. 11일간 계속된 장례식의 기록도 있습니다. 이 의식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도살되는 물소와 돼지들의 엄청난 숫자입니다. 때로는 단 한 번의 장례식에서 수십 마리의 물소와 수백 마리의 돼지를 잡기도 합니다. 그것은 가문의 부를 과시하는 방편이기도 하지만 망자의 영혼이 사후세계인 뿌야(puya)로 편히 가려면 더 많은 물소가 수레를 끌어줘야 하니 도살한 물소의 숫자는 망자에 대한 가문의 존중과 자녀들 효심의 크기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며칠씩이나 계속된 잔치가 끝나면 이제 진정한 안식에 들 준비가 된 망자는 똥꼬난 건물을 쏙 빼 닮은 상여에 실려 안치할 무덤으로 향합니다. 상여는 돌산에 마련된 무덤이나 일반 주택처럼 본떠 만든 석관 형태의 빠따께(Patake)로 가는데 그곳엔 망자가 누울 관이 일찌감치 준비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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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의 도착지인 암벽 묘지구멍

 

 

사망일로부터 람부솔로 장례식까지의 기간은 꼭 몇 년씩 걸리는 것은 아니고 몇 주, 몇 개월 만에 거행되기도 합니다. 성대한 장례식을 치를 수 있는 가문이 많지 않아 가난한 사람들은 람부솔로 의식을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전통적으로 망자의 관은 동굴, 특히 석벽 동굴이나, 시간과 돈을 들이고 여러 문양을 넣어 만든 빠떼께(pateke) 석관에 넣거나 벼랑에 매달기도 합니다. 이가 다 나기 전에 죽은 아기는 큰 나무 몸통에 구멍을 파고 그 안에 넣어 장례를 치릅니다.


망자의 관이 놓인 암벽 동굴이나 빠떼케 앞에는 망자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 만든 목각 따우따우(Tau tau)를 옷과 장신구로 치장해 놓아 두는데 토라자 사람들은 그 목각에 망자의 영혼이 깃들어 남은 가족들을 지켜보며 보호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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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 행렬 맨 앞에서 길을 열며 묘지에 도착한 따우따우(tau-tau) 목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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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밖에 안치한 따우따우는 기술의 발달로 고인의 생전 모습을 점점 더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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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양이 들어간 석관 빠따께(petake). 이 노부부의 따우따우는 생동감과 완성도가 뛰어나다.

 

 

외부인 시각에서 기괴하기 짝이 없는 토라자의 전통의식은 마네네(Ma’nene)라는 것입니다. 고인의 가족들이 매년, 또는 3-4년에 한 번 무덤을 찾아 망자의 시신을 관에서 꺼내 목욕시키고 새 옷을 입혀 주는 전통 행사입니다. 망자의 영혼은 이미 물소를 타고 뿌야로 건너갔는데 후손들은 왜 선조의 시신을 놓아주지 않는 걸까요? 상당한 문화적 인식의 차이가 있지만 마네네 의식은 우리가 차례 또는 제사를 지내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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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네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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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네 의식

 

 

마네네 의식은 죽은 가족 구성원의 시신을 암벽 무덤이나 빠따께에서 회수하면서 시작되고 햇볕에 건조시킨 후 새 옷을 입혀 다시 무덤에 안치하거나 집으로 모시고 와 가족들이 함께 추모행사를 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무덤에서 돌아온 부모가 가족들에게도 사뭇 섬뜩할 법한데 미이라가 되기까지 몇 년간 집에 시신을 모시며 수발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오히려 그립고 아련한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특히 어려서 죽은 자녀의 미이라를 꺼내 온 아버지의 마음이 과연 어떤 것일까도 헤아려 보게 됩니다.


그럼 이제 이런 의문이 듭니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현세에서 함께 어울리는 토라자 사회에도 과연 귀신이 있을까? 이 사람들은 웬만한 귀신으론 놀라지도 않는 것 아닐까? 하지만 의외로 토라자엔 적잖은 귀신들이 깃들어 있습니다. 물론 그들 중엔 천연두를 퍼뜨리는 마마귀신 다뚜 마루루(Datu Maruru) 역병을 일으키는 인도 소소이(Indo Sosoi), 밤길에 마주치는 장대 같은 큰 존재로 싸워서 지면 죽고 이기면 평생을 지켜줄 부적을 준다는 라룬둔(Lalundun), 악령이면서도 마을의 수호신이 되기도 하는 삼뿌라리(Sampurari) 등 귀신이라기보다는 신에 가까운 존재들도 있고 무서운 목소리로 우유를 달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 수수시디(Susu Sidi), 긴 꼬리가 달린 여인 또껭꼭(To Kengkok), 새처럼 하늘을 나는 니웅(Niung), 정글 속에서 마주치는 두터운 입술을 가진 나체의 여인들 빠나다라(Panadara), 늑대처럼 울부짖는 여신 인도오론(Indo Orron) 같이 마물에 가까운 것들, 흑마술사의 변신인 흡혈귀 뽀뽁(Po;pok)도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혼에서 발생하는 실라꾸(Silaku)나 바띠똥(Btitong), 봄보(Bombo), 뽄띠아나(Pontiana) 같은 귀신들이 있다는 것은 조금 의외입니다. 그들은 왜 뿌야로 가지 못한 걸까요? 대체로 남술라웨시 괴담과 도시전설 속에 등장하는 귀신들과 같거나 비슷한 이름을 가진 것들이 토라자에서는 사뭇 다른 프로필을 가지고 나타나는데 바띠똥이 그 중 하나입니다.


바띠똥은 출산 중 사망한 여성에게서 발생한 악령으로 사람에게 빙의해 악한 의도를 이루려 한다는 면에서 자바의 꾼띨아낙과 비슷하지만 이마나 머리 또는 손 어딘가에 발광체가 달린 듯 빛을 낸다는 점은 술라웨시 로컬 귀신인 빠띠똥(Patitong)의 특징입니다. 빠띠똥은 콧 속에서 불덩어리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 밤길을 밝히며 죽어가는 사람의 남은 목숨을 앗아간다고 해요.


인간, 특히 임산부를 해코지하고 물소의 생명을 빨아먹는다는 바띠똥을 쫓아내는 방법이 흥미롭습니다. 자락나무(Kayu jarak) 가지로 때려 바띠똥을 죽일 수 있습니다. 자락나무는 우리로 치면 벼락맞은 대추나무 정도 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딱 한 대만 때려야 합니다. 여러 대 때리면 오히려 더욱 사나워져 낭패를 보게 되죠. 또 다른 방법은 마을 입구에 빠사께(passakke) 잎과 깜부니(kambuni) 잎 또는 까랑불루(kerrang bulu) 잎으로 속을 채운 대나무를 세워놓거나 똥꼬난 마을의 동쪽 공터에서 마마눅 딸루(Ma’manuk Tallu)라는 희생제를 치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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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자의 자락나무(왼쪽)와 빠사께 잎 등을 채운 대나무(오른쪽)

 

 

마마눅 딸루(Ma'manuk Tallu) 의식은 뿌앙 마뚜아(Puang Matua)와 데와타(Dewata)에게 제물을 바치는 의식입니다. 특이한 점은 공터 네 군데에 바나나 잎을 포개어 쌓은 네 개의 더미 위에서 성스러운 닭 네 마리를 잡아 제물로 바친다는 겁니다.


까루룽(Karurung)이라 부르는 첫 번째 닭은 검정에 가까운 짙은 갈색 몸에 검은 발을 가졌고 알룩 신앙 시조령에게 바쳐집니다. 천계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는 그 분 말입니다.


두 번째 닭은 래(Rae)라고 하는데 전체적으로 검지만 목에 붉은 빛이 감돌고 흰 발톱을 가졌습니다. 토라자 땅을 지키는 신 암뿌 빠당(Ampu Padang)에게 바쳐지는 닭이죠. 이런 특징을 가진 닭은 매우 드물어 찾기 힘들지만 다른 닭과 대체할 수 없으므로 이 닭 없이는 마마눅 딸루 의식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알룩 신들의 서열 중 암뿌 빠당이 절대 낮지 않다는 것을 강변합니다.

 

세 번째 닭은 딸루니(Talluni)인데 붉은 몸통에 노란 다리를 가졌고 삥기란 랑잇 신(Dewa Pinggiran Langit), 번역하자면 ‘하늘가의 신’에게 바쳐집니다. 이 신은 사람들 마음 속에 파고들어 악한 일을 행하고자 하는 충동을 일으킵니다. 익힌 음식을 싫어하여 오직 구운 음식이나 날것을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의식 장소에 만들어 놓은 세 번째 바나나 잎 더미엔 익히지 않은 쌀을 조금 올려 놓죠. 

네 번째 닭은 셀라(Sella)인데 거뭇거뭇한 붉은 색 깃털을 가졌고 다리는 하얗습니다. 바로 우주와 인간, 작물, 가축과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주관하는 창조주이자 최고신 뿌앙 마뚜아에게 바쳐지는 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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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앙 마뚜아에게 바쳐지는 ‘셀라’

 

이런 마마눅 딸루 의식이 비띠똥 같은 귀신도 쫓아내는 힘을 갖는 이유는 뿌앙 마뚜와와 조상신, 암뿌빠당, 데와 삥기르 랑잇 같은 쟁쟁한 신들이 강림하는 의식이 벌어지는 마을에 다른 잡귀신들이 감히 얼씬거릴 수 없기 때문이겠죠.


오늘 이 글에 귀신이 발붙일 자리가 거의 없는 것처럼요. (끝)


♣배동선 작가는 인도네시아의 동포 향토작가. 현지 역사, 문화에 주목하며 저서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와 공동번역서 <막스 하벨라르>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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