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무속과 괴담 사이 (25)] 박제된 모습으로 영생을 사는 흡혈귀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무속과 괴담 사이 (25)] 박제된 모습으로 영생을 사는 흡혈귀

기사입력 2021.11.26 10:5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무속 도입.png

 

자카르타를 출발해 반둥을 거쳐 자바 남쪽 간선도로를 따라 달리면 양칠성의 무덤이 있는 가룻(Garut)과 자카르타 부자들의 별장이 많다는 따식말라야(Tasikmalaya)를 지나 찌아미스(Ciamis)라는 지역에 이르게 됩니다. 그곳은 6세기부터 16세기까지 존속한 것으로 알려진 갈루 왕국(Kerajaan Galuh)이 약 200년 간 도읍으로 삼았던 곳이었습니다. 갈루 왕국은 이후 인도네시아의 네덜란드 식민지화가 진행되면서 부빠띠(Bupati)가 다스리는 군(郡)이 되었는데, 이곳에 2004년에 개관한 갈루 임바나가라 박물관(Museum Galuh Imbanagara)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26일 갈루 박물관.png


이 자그마한 박물관엔 왕관, 끄리스 단검, 순금으로 만든 작은 종, 칼, 창 등 1636~1816년 사이 갈루 지역 통치자들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이한 점은 비록 전시해 놓진 않았지만 왕가 인물의 것으로 알려진 해골도 한 개 보관되어 있다는 겁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 해골은 이미 몇 차례 매장했지만 매번 아무도 모르게 원래 보관하고 있던 자리로 되돌아와 있곤 해서 그후 더 이상 매장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보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 더 특이한 것은 이 박물관에 젱롯(jenglot)이라 불리는 작은 괴물들을 10마리 이상 보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젱롯들은 사실 갈루 왕국의 유물이 아니라 깔리만딴과 동부자바 등지에서 발굴되어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가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해 이곳에 맡겨온 것입니다. 핏자국이 묻은 흰 천에 쌓여 보관되고 있는 젱롯들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눈동자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어 그 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박제된 것 같은 젱롯이 움직이는 듯 보이고 급기야 보던 사람이 거품을 물고 쓰러져 귀신 들린 듯 발작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끄수루빤(Kesurupan-빙의) 현상은 인도네시아에서 그리 드문 일이 아닙니다. 콩나물 시루처럼 사람들이 빽빽하게 밀집해 작업하는 봉제공장이나 중고등학교에서 집단 빙의가 벌어져 조업이나 학습이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개인적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 특히 여성들이 쉽게 빙의 증세를 보이기도 합니다. 인도네시아에서 2021년 10월 20일 <영매(The Medium)>란 제목으로 개봉한 태국 호러영화 <랑종>을 보던 관객이 관람 중 빙의 증상을 보이며 발작을 일으킨 사건도 있었고 그 일이 입소문을 타다가 급기야 매체를 통해 알려지자 영화에 관객들이 몰려 상당한 흥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26일 갈루 박물관 젱롯.jpg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젱롯은 인도네시아 민속과 전설에 등장하는 작고 기괴한, 사람의 형상을 한 괴물입니다. 크기는 5센티미터에서 20센티미터 정도로 박제나 인형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은 젱롯이 사람들이 볼 때 움직이지 않을 뿐이지 사실은 살아있다고 믿습니다. 기본적으로 흡혈귀로 분류되는 놈이죠. 미이라처럼 바짝 마른 외관은 사람와 닮았고 손톱이 2센티미터 넘는 경우도 있고 머리칼은 대개 젱롯의 신장보다 더 긴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부릅뜬 듯한 눈엔 흰자위가 없죠. 

 

젱롯의 본체는 사실 브타라까랑(Bethara Karang)의 높은 도를 닦던 수행자였다고 하며 그 도의 궁극에서 영생에 이르는 순간 신의 저주를 받아 젱롯이 되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영생을 얻은 그 도인의 혼이 젱롯 안에 남아 조화를 부린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 주술의 이름을 따 젱롯을 브타라까랑(BK)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수집가들은 젱롯을 신비로운 힘을 지닌 부적이나 신물(神物)로 여깁니다.


젱롯은 주로 자바에서 발견되는데 두꾼이 초자연적 의식을 치른 후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주로 땅 밑, 무너진 집 지붕 또는 거대한 나무의 몸체 안 등 다양한 장소에서 발견됩니다. 1972년 동부자바 울링이(Wlingi)의 두꾼들이 띠라깟(tirakat-금식을 동반한 기도의식)을 하자 젱롯 네 마리가 나타났는데 그중 숫놈은 주인을 모든 위험으로 지켜줄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합니다. 꾸두스의 깔리뿌두(Kaliputu) 마을에서도 한쌍의 암수 젱롯을 잡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젱롯이 가진 불가사의한 힘은 개인이나 가정을 보호하기도 하고 때로는 개인이나 가정, 심지어 한 지역을 괴멸시킬 정도의 엄청난 재난을 불러오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6일 젱롯 모음.png

  

깔리만딴과 발리에서도 일부 발견되는 젱롯의 암수나 그 능력은 역시 도통한 두꾼들만 알아볼 수 있는 것이겠죠. 


그런데 젱롯이 정말 도를 닦는 고행을 하다가 저주받은 도인의 모습일까요? 천 년 전부터 자바에 알려지게 된 브타라까랑의 도를 깊이 수련하여 마침내 진리를 깨우치면 죽지 않고 영원히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영생의 비밀을 깨우치면 신에게서 특별한 힘과 능력을 얻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신도들에게 추앙받는 은둔자, 수행자, 도인들이 동굴 속에 들어가 깊은 명상을 시작하는데 궁극의 깨달음을 얻는 순간 그는 세상을 모두 가진 것 같은 충만함과 행복을 느끼지만 현실 속에서 그의 몸은 수축해 작아지며 그렇게 줄어든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송곳니 네 개가 솟아나며 젱롯의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젱롯은 그 도인이 영생을 사는 축복받은 모습일까요? 아니면 브타라까랑의 신을 사칭한 악마에게 예배하여 특별한 힘과 능력을 얻은 대가로 영원한 저주를 받고 만 것일까요? 잘못된 가짜 신을 쫓은 끝에 죽어 안식에 이르러야 할 인간의 영혼이 젱롯의 작은 몸 안에 갇히고 만 것은 아닐까요? 그런 식으로 영생하는 건 상당히 곤란한 일일 것 같습니다.

 

 솔직히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지만 젱롯이 사실은 살아 있고 아직도 그 안에 고대의 도인이 품고 있던 거래한 영력을 남아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고 그래서 젱롯을 수집해 소장하는 일반인들이나 두꾼이 있습니다. 젱롯이 살아 있다고 믿으니 음식을 줘야 할 텐데 젱롯이 흡혈귀로 분류되는 이유는 사람의 피를 먹는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것도 아무 피나 주면 안되고 반드시 O형이나 AB형이어야 하며 만약 피가 없다면 부득이 향유(香油)를 줘도 됩니다. 그렇다고 피를 담은 그릇을 젱롯 근처에 놓아 두면 사람이 보지 않는 사이에 젱롯이 스스로 움직여 피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것은 아니고 젱롯 스스로의 특별한 방식으로 피를 섭취하거나 피 속에서 필요한 영양분만 취한다고도 합니다. 3-8시간마다 50ml의 피를 마신다고 하며 새끼 고양이 키우듯 식사 때를 맞춰 피를 입에 주사기로 넣어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26일 쟁롯 모음2.jpg

  

인도네시아에는 앞서 소개한 갈루 임바느가라 박물관 외에도 그간 발견된 젱롯을 진열해 놓은 ‘전시관들은 여럿 있습니다. 그 젱롯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피부나 머리칼을 채취해 검사한 결과 원숭이나 생선을 교묘하게 변형해 박제한 가짜들로 판명된 것들이 많지만 그렇다고 모든 젱롯을 전수검사한 것은 아니어서 일각에서는 젱롯이 인형이나 다른 생물의 박제를 조작한 것이 아니라 실제 주술의 결과물인 영적 물체라고 믿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젱롯을 잡았다며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순회 전시회를 열기도 하며 심지어 말레이시아의 술탄 알람 샤 박물관(Sultan Alam Shah Museum) ‘전설, 진, 귀신관’에도 충격적인 형태의 젱롯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다 사람들이 만든 장난감들로 전혀 초자연적이지 않은 ‘사기’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당연히 많습니다.


2008년 말레이시아의 과학자들이 이리얀자야(지금의 서파푸아)에서 한 사업가가 전시목적으로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로 가져온 젱롯 네 마리의 머리털에서 DNA를 채취해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젱롯들은 모두 사람 형상이었는데 DNA 검사 결과 네 마리의 머리칼은 모든 유전자 정보가 일치하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즉 젱롯 네 마리 모두 한 사람의 머리칼을 뽑아 심었다는 뜻이었죠. 어떤 머리칼은 모근이 머리칼 바깥 쪽 끝에 달려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머리칼을 젱롯에 심을 때 거꾸로 심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의미, 즉 모두 사기라는 뜻이었습니다.

 

자카르타의 찝또 망운꾸수모 병원(RSCM)에서 조사한 결과도 젱롯이 살아있는 생물체가 아니라는 결론이었습니다. 우선 엑스선 촬영 결과 젱롯은 마치 진흙으로 빚은 것처럼 몸 안에 뼈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표피에서는 인간의 DNA가 확인되었죠. 즉 무생물로 만든 몸체에 사람의 피부로 덮은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얼핏 생각해도 그런 가짜 젱롯을 만드는 데에 그 정도의 노력과 재료(사람 피부!)를 들인다는 게 개연성이 있는 일일까요?


한편 말레이시아에서는 엑스선 촬영을 통해 어떤 젱롯 견본 팔에 뼈가 발견된 것도 있었다고 합니다. 젱롯은 말레이시아에서 한 마리에 5천 링깃(약 138만 원)에서 3만 링깃(약 830만 원) 정도 가격으로 거래되는 걸 보면 분명 젱롯이 진짜라는 믿음도 있는 겁니다. 1993년에도 젱롯을 발견했다며 한바탕 소동이 있었는데 당시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UI) 의대에서 나서 검사를 했는데 젱롯의 크로모솜의 구조가 인간과 유사하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26일 젱롯 다양.png

 

젱롯은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얄팍한 사기일 뿐일가요? 아니면 정말 신에게 벌을 받고 있는 인간의 모습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데일리인도네시아]

 

♣배동선 작가는 인도네시아의 동포 향토작가. 현지 역사, 문화에 주목하며 저서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와 공동번역서 <막스 하벨라르>를 출간했다.

 

 

<저작권자ⓒ데일리인도네시아 & dailyindonesia.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