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무속과 괴담 사이(27)] 동화편: 위라고라 (Wir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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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과 괴담 사이(27)] 동화편: 위라고라 (Wiragora)

기사입력 2021.12.28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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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 도입1.png


 오래 전에 뚜율, 바비응예뻿, 부토이조 등 재물주술에 등장하는 마물들의 자료를 찾아보다가 위라고라(Wiragora)라는 흥미로운 마물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뭐라고라?’가 아니고요. 위라고라가 인드라마유(Indramayu)의 ‘부토’라고 하여 부토이조와 비슷한 존재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위라고라의 전설 두 개를 발견했습니다. 두 개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위라고라는 닮은 듯 닮지 않아 보였지만 위라고라는 인드라마유와 찌레본 등 서부자바 지역에 연고를 둔 존재라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인드라마유의 위라고라

 인드라마유는 지금도 주술문화가 성행하고 특히 상대방의 마음에 강제로 사랑의 감정을 심는 뻴렛주술(Ilmu Pelet)의 시발지로 여겨지는 곳입니다. 고대에 이 도시가 건설되던 이야기는 ‘위라고라의 전설’ 또는 ‘인드라마유의 부토이조’라는 제목의 산디와라 연극으로도 각색되어 무대에 오릅니다.

 

위라고라의 전설1.jpg
위라고라의 전설

 

  위라고라는 기본적으로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 쩌렁쩌렁한 거인 실루만으로 녹색 피부로 뒤덮힌 부토이조와 비슷한 외관을 하고 있습니다. 전설 속의 위라고라(Wiragora)는 찌마눅 강(sungai Cimanuk) 깊은 숲 속 늪지 어딘가에 펼쳐진 마물들의 왕국 지배자입니다. 그를 알려면 인드라마유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진 영웅 위라로드라(Wiralodra)가 인드라마유의 건설을 막 마치던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원래 버글렌(Begelen) 출신인 위라로드라는 고향에 두고온 부모님이 걱정되어 오랜 원정기간 그의 오른팔이 되어 주었던 심복 끼띵기(Ki Tinggi)에게 도시를 맡기고 귀향길에 올랐습니다. 사건은 늘 영웅이 자리를 비웠을 때 벌어지는 법이죠. 

 

 인드라마유가 건설된 후 정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는데 엔당 다르마 아유(Endang Darma Ayu)라는 아름다운 여인도 종자들을 거느라고 찾아와 그곳 주민으로 받아 달라며 끼띵기에게 허락을 구했습니다. 끼띵기로서는 기품 넘치는 그녀를 인드라마유 주민으로 편입시키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엔당 다르마 아유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무술에 능했고 특히 무술과 도술 사이 어딘가에 자리매김하고 있을 일무 삭티(Ilmu Sakti), 그 중에서도 일무 까누라간(ilmu kanuragan) 같은 범상치 않은 신비로운 체술을 지니고 있어 거친 남자들도 그녀의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소문이 삽시간에 파다하게 퍼지자 많은 이들이 그녀의 제자가 되길 청했는데 특히 십대 소녀들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엔당 다르마유.png
엔당 다르마 아유의 초상

 

 엔당 다르마 아유의 합류로 도시는 아연 활기를 띄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불한당들이나 도적떼가 찾아오기도 했지만 그녀와 제자들이 별 힘들이지 않고 족족 물리치자 그 소문을 듣고 그녀와 겨루어 명성을 높이려는 자들도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엔 빵에란 구루(Pangeran Guru)라는 용사도 있었습니다. 그는 24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멀리 수마트라의 빨렘방으로부터 찾아와 엔당에게 대결을 청했습니다. 처음엔 엔당과 빵에란 구루 두 사람의 대결로 끝날 예정이었지만 선을 넘은 빵에란 구루가 무리한 술법을 펼치다가 엔당 다르마의 일격에 목숨을 잃자 그의 제자들이 칼을 쳐들고 우르르 달려들었고 엔당 다르마의 제자들이 이에 맞서면서 인드라마유에서는 이전에 본 적 없었던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졌고 빵에란 구루의 일행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인드라마유 사람들은 이제 엔당 다르마에게 두려움을 품기 시작했고 분위기가 흉흉해지자 고민이 깊어진 끼띵기는 버글렌의 위라로드라에게 급히 사람을 보냈습니다.

 

 인드라마유 상황을 전해들은 위라로드라는 다른 형제들을 이끌고 인드라마유로 출발했지만 형제 중 위라고라만은 버글렌에 남았습니다. 그는 위라로드라 다음으로 출중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복잡한 일에 개입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인드라마유에 도착한 위라로드라는 끼띵기가 체포해 옥에 가두었던 엔당 다르마를 불러 차근차근 자초지종을 물었고 모든 이야기를 들은 후 빵에란 구루와의 결투가 정당한 일이었음을 인정하고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후 엔당 다르마와 자주 마주치면서 위라로드라는 그녀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청혼을 결심했습니다. 엔당 다르마도 그에게 호감을 느끼면서도 청혼을 간단히 수락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무술로 제압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과 혼인할 자격이 있다는 조건을 세운 것입니다. 


그간 엔당 다르마가 수많은 고수들을 물리치고 심지어 빵에란 구루 일행을 도륙한 것을 목도한 인드라마유 사람들은 또 한 번 피바람이 불까 두려워했지만 위라로드라는 그 조건을 흔쾌히 받아들여 엔당 다르마에게 결투를 신청했습니다. 언제나처럼 엔당 다르마의 공격을 맹렬했지만 위라로드라는 줄곧 여유있게 우위를 지키며 모든 공격을 흘리거나 막아냈고 마침내 그녀의 무릎을 꿇렸습니다. 엔당 다르마가 생전 처음 패배를 경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위라로드라는 그녀를 정중히 일으켜 세우며 다시 한번 청혼했고 엔당 다르마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청혼을 수락했습니다.


 그들의 성대한 혼인식에 맞춰 버글렌에 남았던 위라고라도 인드라마유에 합류했는데 그는 형수 엔당 다르마의 아름다움을 보고 단번에 마음을 뺏기고 말았습니다. 그는 당연히 자제해야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형수에 대해 커져가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동생이 그런 흑심을 품었음을 꿈에도 몰랐던 위라로드라는 다른 형제들과 함께 며칠 간 도시 밖으로 사냥을 나갔고 이번에도 혼자 남은 위라고라는 때는 이때다 싶어 엔당 다르마가 잠든 틈을 타 침실에 스며들어 그녀를 범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엔당 다르마는 보통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완강히 저항했고 위라고라가 완력을 사용하려 하자 곧 치열한 결투로 번졌습니다. 위라고라는 형제들이 모두 자리를 비웠을 때 혼자서 버글렌을 지켜냈을 정도로 무술과 도술에 능통한 대단한 용사였지만 여자라고 얕보았던 형수의 발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압도적인 엔당 다르마에게 만신창이가 되도록 당하고 만 것입니다. 그는 한밤중에 벌어진 그 사건을 목도한 인드라마유 사람들 앞에서 더 이상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위라로드라와 다른 형들이 돌아온다면 목숨을 보전하기도 힘들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엄격한 위라로드라가 형제라고 봐줄 리 없었으니까요.

 

 위라고라는 그날 밤 인드라마유를 떠나 찌마눅 강을 따라 정처없이 걷다가 그곳 마물들의 나라에 들어섰습니다. 인간을 발견하고 달려드는 모든 마물들을 때려눕힌 위라고라는 그곳 마물들의 왕이 되어 사람들에게 훗날 부따 위라고라(Buta Wiragora)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비록 엔당 다르마의 상대가 되지 못했지만 찌마눅 강의 모든 마물들 정도는 간단히 무릎 꿇릴 만큼 위라고라도 만만찮은 도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위라고라가 이번엔 찌레본에 출현합니다.


찌레본 왕국 공주 구출작전

 인드라마유가 세워진지 백 년쯤 후 찌레본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찌레본 왕국.png
찌레본 왕국

 

 

 찌레본 왕국 데위 아룸 사리(Dewi Arum Sari) 공주의 아름다움은 이웃나라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어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는 왕자들의 발길로 왕국 문턱이 닳아 없어질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주는 그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몰래 궁을 나와 잠행에 나섰다가 강도를 당할 뻔했을 때 도와주었던 어떤 남자를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경황이 없어 그가 누구인지 어디 사는지도 묻지 못했습니다. 공주는 늘 그를 떠올리며 마음을 태우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찌레본 국왕은 공주의 마음을 헤아려 혼사를 서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취한 거인 위라고라가 그녀를 납치해 간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이 위라고라가 저 위 인드라마유의 위라고라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안상착의가 대체로 일치합니다. 


 걱정에 휩싸인 부왕은 누구든 딸을 되찾아 오는 사람이 여자라면 딸을 삼고, 남자라면 데위 아룸 사리와 결혼시켜 사위를 삼겠다고 공표했습니다. 그러자 찌레본의 귀족들은 물론 다른 나라의 왕자들까지 앞다퉈 그녀를 구출하려고 경쟁이 벌였는데 그중엔 라덴 위라 산티카(Raden Wira Santika)라는 대단한 무술 고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숲 속에서 수색을 시작하면서 경쟁자들을 하나씩 함정에 빠뜨리거나 더 이상 경쟁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이제 공주 구출작전을 독주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공주를 납치한 위라고라는 숲 속에서 라덴 따루린땅(Raden tarulintang)과 우연히 조우하고 있었습니다. 라덴 따루린땅은 끼 따빡 자갓(Ki Tapak Jagat)이라는 도사의 제자로 숲 속에 살고 있었는데 우연히 마주친 위라고라의 손아귀에 잡힌 데위 아룸 사리를 보고 화들짝 놀라 그녀를 구해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타격도 먹히지 않는 위라고라는 라덴 따루린땅의 무술과 도력을 아득히 넘어서는 상대였습니다. 그는 오히려 치명상을 입고 바닥에 피를 뿌렸습니다. 위라고라는 쓰러진 그에게 콧방귀를 뀌며 이내 공주를 깊은 숲속 자기 거처로 끌고갔고 라덴 따루린땅이 숨이 넘어가기 직전 다행히 스승 끼 따빡 자갓이 나타나 그를 살려냈습니다.

 

 라덴 따루린땅은 곧 회복했지만 잡혀가던 공주의 모습을 기억하며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습니다.  예전에 마을 어귀에서 공주를 강도들에게서 구한 사람도 바로 그였습니다. 그후 그는 그녀를 단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었어요. 그는 공주를 구할 일념으로 위라고라와 맞설 수 있는 술법을 가르쳐 달라고 스승에게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위라고라의 처소를 먼저 찾아낸 것은 라덴 위라 산티카였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위라고라는 그에게 경의를 표하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사실 도술로 위라고라를 부려 데위 공주를 납치한 것은 바로 라덴 위라 산티카였던 것입니다. 그는 예전에 한번 데위 공주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것에 앙심을 품고 이번엔 강제로 굴복시키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공주를 구원하면 사위를 삼겠다는 국왕의 포고를 듣고 합법적으로 그녀를 취하기로 급히 선회했습니다. 데위 공주를 얻으면서 덤으로 찌레본 왕국을 물려받을 후계자가 되는 셈이었으니 크게 남는 장사가 될 터였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데위 공주는 위라고라가 위라 산티카의 충복이란 사실을 알아차리고 완강히 저항했습니다. 위라 산티카가 그녀를 회유했으나 저항을 꺽지 못하자 이번엔 위라고라의 힘을 이용해 강제로 그녀의 마음을 훔쳤습니다. 위라고라는 사람을 홀리는 능력이 있었는데 그것은 강제로 연모하는 마음을 심는 뻴렛주술이었습니다. 그 주술은 시전자인 자신조차도 풀지 못하는 강력한 것이었고 그 주술에 걸린 여인은 평소 혐오해 마지않던 상대방에게조차 밑도 끝도 없이 사랑에 빠져 그가 보이지 않으면 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몸과 마음이 피폐해 가는 악랄한 효능을 보였습니다. 데위 공주도 결국 그 주술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녀와 위라 산티카의 혼인을 막을 수 없을 듯 보였습니다. 부왕의 왕궁에서는 혼례식이 준비되고 있었고 이제 위라 산티카가 데위 공주를 말에 태워 왕국으로 금의환향하면 그 환영식이 곧 혼인식으로 치러질 터였습니다.

 

 한편 속성으로 수련을 마치고 천신만고 끝에 위라고라를 찾아낸 라덴 따루린땅은 치열한 대결 끝에 위라고라를 무릎 꿇리지만 한 발 늦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곧바로 그녀를 쫓아 왕국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위라고라는 공주가 자신의 뻴렛주술에서 절대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라며 비아냥거렸습니다. 주술을 깨기 위해서는 무스티카 울라르(Mustika Ular)라는 보석이 필요하지만 그건 구누도 구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라덴 따루린땅은 위라고라의 면상을 한 번 더 후려 갈긴 후 무스티카 울라르를 찾아 나섰습니다. 


 보석처럼 생긴 무스티카 울라르는 주인의 몸을 도검불침으로 만들어 철저히 방어하는 기능도 가진 강력한 신물(神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구하러 나선 사람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영원히 타오르는 불붙은 산 동굴 속에서 거대한 뱀이 무스티카 울라르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 데위 공주와 위라 산티카는 궁전에 도착했습니다. 모든 이들이 그녀의 귀환을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왕은 위라 산티카가 본국에서 힘없는 백성들을 얼마나 잔인하게 대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만약 위라 산티카가 찌레본 왕국의 왕위를 물려받는다면 찌레본 백성들은 더없는 고통을 받게 될 것이 뻔했습니다. 하지만 국왕은 딸의 구원자를 사위로 삼겠다고 한 약속을 취소할 명분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주술에 걸린 데위 공주는 이제 위라 산티카에 대한 사랑에 눈이 멀어 그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결혼식은 사흘 후였어요

 

무스티카 울라르를 지키는 뱀.jpg
무스티카 울라르를 지키는 뱀

 

 한편 무스티카 울라르를 찾아나선 라덴 따루린땅은 세상의 끝자락 불길한 화산에서 거대한 뱀과 마주쳤습니다. 무스티카 울라르는 그 뱀의 머리에 박혀있는 보석이었어요. 문제는 그 보석이 부적으로서의 힘을 발휘해 뱀의 몸이 거의 완벽한 도검불침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칼을 내리쳐도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었습니다. 구석으로 몰린 라덴 따루린땅은 꼼짝없이 잡아 먹힐 위기로 뱀의 아가리 속으로 밀려 들어갔습니다. 맹렬한 독을 내뿜는 독니 사이에서 위태롭게 칼을 휘두른 끝에 라덴 따루린땅은 입 안에서 바깥으로 칼을 돌려 뱀의 목을 잘라내고 무스티카 울라르를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부적의 효과로 금강석처럼 단단해진 바깥쪽 피부와 달리 입 안쪽은 부드럽기 이를 데 없었던 겁니다. 


 이제 라덴 따루인땅은 몸을 추스릴 틈도 없이 다시 말에 올라 왕국을 향해 내달렸습니다. 하지만 불 뿜는 산의 뱀동굴은 왕국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진 곳이었고 라덴 따루린땅과 말은 둘 다 지칠 데로 지친 상태였습니다.

 

 사흘은 금방 지나갔습니다. 위라 산티카와 데위 아룸 사리 공주의 결혼식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국왕은 위라 산티카의 안하무인격 행동이 거슬렸지만 약속을 폐기하면서 신의를 저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사이 데위 아룸 사리가 뻴렛주술에서 깨어날 수 있도록 온갖 방법을 은밀히 동원했지만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막 결혼식이 시작할 때 무스티카 울라르를 가진 라덴 따루린땅이 궁전에 들어섰습니다. 그러자 데위 아룸 사리를 옭매고 있던 주술이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저 자가 마물 위라고라를 시켜 저를 납치했어요. 범인은 위라 산티카였어요”

 제 정신을 차린 공주가 이렇게 소리치자 어떤 소동이 벌어졌을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음모가 백일하에 드러나자 격분한 위라 산티카가 라덴 따루린땅에게 달려들어 치열한 결투가 벌어졌지만 이런 스토리의 결말이 늘 그렇듯 라덴 따루린땅은 마침내 위라 산티카를 철저히 격파해 무릎을 꿇렸습니다. 그를 알아본 데위 공주는 기쁨에 겨웠고 늠름한 영웅의 출현을 크게 환영한 국왕은 그 자리에서 신랑을 바꾸어 라덴 따루린땅과 데위 공주 두 사람의 혼례를 거행했습니다. 국왕의 사위가 된 라덴 따루린땅은 훗날 총리의 지위에 올라 디빠티 아리야 꾸스마(Dipati Arya Kusumah)라는 칭호도 받게 됩니다.

 

 그 후 둘이 행복하게 살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인드라마유에서 위라로드라와 엔당 다르마에게 쫒겨난 위라고라가 엉뚱하게도 마물이 되어 찌레본 전설에도 얼굴을 나타내는 모습이 흥미로웠습니다. 두 전설 속의 위라고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지만 모두 여자 때문에 패가망신했다는 면에서 같은 놈이란 심증이 더욱 강해집니다. [데일리인도네시아]

 

♣배동선 작가는 인도네시아의 동포 향토작가. 현지 역사, 문화에 주목하며 저서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와 공동번역서 <막스 하벨라르>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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