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책이 답하다] 베트남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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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답하다] 베트남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

기사입력 2022.02.13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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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여성.jpg
[연합뉴스 자료사진] 세종시 아름동복합커뮤니티센터에서 열린 2019전국외국인주민 화합한마당에서 강원 대표로 출전한 필리핀 베트남 결혼이주민 여성들이 베트남전통무용을 선보이고 있다. 2019.10.30


글: 조연숙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장 


 

제목: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여성이 이끄는 세계

저자: 조흥국  

출판사: 소나무 

출판일: 2019년 10월 30일 

 

동남아시아 역사와 문화 책표지.jpg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에는 남편은 풍류와 도박을 즐기는 반면, 부인이 집안 살림을 하고 자녀를 키웠다. 더 나아가 제사와 같은 집안 대소사를 관장하고, 장사를 해서 생계를 책임졌다. 영화를 보면서 '베트남에서는 여성이 가장인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한국 농촌에서는 ‘베트남 며느리가 들어오면 마을이 살아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부지런하고 부모 공경 잘하고 집안일뿐만 아니라 동네일까지도 잘 이끌어서 생긴 말이라고 한다. 

 베트남 여성은 어떤 사람들일까? 책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여성이 이끄는 세계>는 여성에 대한 이해가 동남아시아의 문화와 사회를 제대로 알기 위한 기본적인 사항이라고 강조한다. 중동의 이슬람권, 남아시아의 힌두·이슬람권, 동북아시아의 유교권 등 남성 중심적 사회와 비교할 때, 베트남을 포함해 동남아시아는 여성의 지위가 남성의 지위보다 낮지 않았고 여성이 전통적으로 강한 역할을 해 왔다고 기술한다. 무엇보다 베트남을 포함해 동남아 여성의 강한 역할은 결혼, 이혼, 재산권, 유산, 제사, 상속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필자가 베트남 여성에 대해 묻고, 책<동남아시아의 역사와 문화>가 이에 답하는 형식으로 정리해 보았다. 


<책이 답하다>

 

묻다) 베트남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유교 문화권이어서 남존여비가 강하지 않나? 그럼에도 세계적으로 성평등 지수가 높은 것으로 나온다. 실제로 여성의 지위와 역할은 어떠했나?  

답하다) 표면적으로 15세기 레 왕조 출범 이후 19세기 말까지 베트남의 엘리트층에서 가족 내에서 여성의 지위는 유교적 가족 질서에 따라 규정됐다. 태평양전쟁 시기 일본이 베트남을 점령한 후 1943년에 편찬한 『인도지나민속지』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혼인의 주목적은 가문을 존속시키고 조상의 제사를 이어 갈 아들을 얻는데 있었다. 여기서 엿볼 수 있듯이, 20세기 중엽에도 베트남의 가정에서는 가부장적인 유교적 가치관이 중시되고 있었다. 

 하지만 베트남 여성은 가정과 사회 특히 경제 활동에서는 전통적으로 남성에 비해 열등한 위치에 있지 않았으며, 오히려 많은 경우 남성보다 더욱 능동적이고 활발한 역할을 보여주었다.  


묻다) 생활문화에 있어서 베트남은 남과 북, 일반백성과 엘리트층 간 차이는?

답하다) 전근대 시기 베트남 사회에서 남녀 관계는 북부와 남부 그리고 지배층과 피지배층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남부는 북부에 비해 덜 보수적이었고, 일반백성은 좀더 베트남 토착 관습에 따라 생활한 반면 엘리트층은 중국에서 수입된 유교적 가치관과 규범에 더 구속됐다.  

베트남 레 조정이 ‘여조형률’을 제정하는 등 중국 유교문화를 베트남의 친족 제도에 적용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베트남 사회의 반발에 부딪혔다. 농민 등 피지배층은 대부분 전통적인 친족 관계에 따라 생활했으며 지배층도 상당 부분 유교문화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전근대 시기 지배층에서는 아내가 남편에게 종속된 삶을 살았지만, 피지배층에서는 아내가 남편에게 거의 얽매이지 않았다. 이것은 아내의 강한 경제력과 관련이 있다.


묻다) 과거 베트남에서는 혼인을 할 때 남성이 여성에게 예물을 주었다고 하는데. 

답하다) 신랑 측은 신부 측에 상당한 액수의 예물을 주어야 했으며, 예물이 부족하면 처벌을 받았고, 예물을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신랑은 신부 집에 가서 일정 기간 일을 해야 했다. 1820년대 기록에 따르면, 남성이 결혼할 때 여성 부모에게 줘야 하는 돈의 액수가 가난한 집은 10~20콴(kwan), 부자는 100~200콴, 보통은 40~50콴이었다고 한다. 당시 날품팔이의 한 달 품삯이 6콴이었음을 고려하면 신랑 측의 경제적 부담이 꽤 컸을 것이다. 


묻다) 가정에서 재산권에 관한 아내의 지위는 베트남이 중국보다 높았다고 하는데. 

답하다) 아내는 자신이 상속받은 재산이나 결혼할 때 갖고 온 재산 등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고, 결혼 후 공동 취득한 재산의 반에 대한 권리가 있어 그것을 매매할 때 문서에 부부의 이름이 모두 기입되었다. 


묻다) 이혼 시 재산 분할과 아내의 사망 시 상속은? 

답하다) 이혼할 때 아내는 자신의 재산은 물론 결혼 후 공동 취득한 재산의 반을 갖고 갔다. 아내가 사망하면 그 재산은 자녀에게 상속되었으며, 자녀가 없으면 친정 부모나 형제 등 친가에 넘겨져 아내의 재산이 남편에게 상속되는 법은 없었다. 이는 베트남에서 여성이 결혼해도 남편 집안에 속하거나 흡수되지 않고 친정과 관계가 끝까지 유지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묻다) 유산과 제사의 상속에서 아들과 딸의 차별은?  

답하다) 중국에서 딸은 아들이 받는 몫의 반 정도를 받았지만, 베트남에서는 조상 제사를 위해 장남에게 유산의 20분의 1에 해당하는 향화전을 주고 나머지는 모든 자녀에게 균등하게 배분했다. 제사를 위한 향화전이란 별도의 토지도 만약 장남이 질병이나 불효 등의 이유로 상속받을 수 없으면 차남에게 넘어갔고, 아들이 없으면 딸에게 상속되었다. 여성에게도 제사 상속권이 있었다. 딸의 제사 상속은 아들이 없으면 딸이 대신 제사를 지낸다는 민요가 있을 정도로 전근대 시기 베트남에서 상당히 보편적으로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남부 지방에서는 요즘도 아들이 없으면 딸 특히 막내딸이 부모의 제사를 지낸다. 


묻다) 전근대 시기에 남편이 이혼을 꺼렸던 이유는?

답하다) 우선 신랑 측에 많은 재정 부담이 되는 결혼식을 또다시 치른다는 것이 쉽지 안았고, 이혼 시 아내의 재산은 물론 주택과 가구 등을 포함해 결혼 후 형성된 공동 재산의 반을 아내에게 줘야 했는데, 이것은 또 다른 경제적 손실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이유는 아내가 적극적인 경제 활동으로 살림을 유지시키는 가정 경제의 기둥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묻다) 베트남 여성의 경제활동은 어느 정도였나? 

답하다) 베트남 여성은 벼농사에서 중요한 노동력이었고, 상업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부부가 함께 장사를 해도 실질적인 일은 대부분 아내가 했다.


묻다) 전근대 시기 베트남을 방문했던 유럽인들은 현지 남성을 어떻게 묘사했나?  

답하다) 1778년 영국 동인도회사의 주재원 찰스 채프먼은 부인들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동안 남편들은 한가로이 앉아서 담배를 피우든가, 빈랑을 씹든가. 또는 차를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고 전한다.


묻다) 전근대 시기에 베트남을 방문했던 유럽인들은 현지 여성을 어떻게 묘사했나? 

답하다) 베트남 여성을 상당히 유능하고 끈질긴 상인으로 묘사했다. 베트남 여성은 종종 시장의 물가를 조작해 이윤을 추구했고, 이와 관련해 17세기 말 베트남을 여행한 영국인 항해가 윌리엄 댐피어는 베트남 여성의 상술이 런던의 증권 중개인들만큼이나 교활하다고 말했다.

19세기 초 베트남을 여행한 존 크로퍼드는 여행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코친차이나의 여인들은 쟁기질하고 써레질하고, 수확하고 무거운 짐을 나르며, 가게 주인이고 중개인이고 환전상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남성보다 더욱 노련하고 영리한 것으로 간주되며, 특이하게도 그들의 일이 대개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 여기서는 남성과 여성의 노동이 (임금) 액수에서 차이가 없다. 그러한 것은 내가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묻다) 베트남어 단어에서도 여성의 지위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하는데. 

답하다) 한자로 ‘부부(夫婦)’란 단어에서는 남편을 가리키는 ‘부(夫)’가 앞에 오지만, 베트남어로 부부를 뜻하는 ‘보-쫑(vo chong)’은 아내를 가리키는 ‘보’가 ‘장부(장부)’를 가리키는 ‘쫑’ 앞에 온다. 베트남에서는 아내를 종종 ‘노이쯔엉(noi chung 內將)’ 즉 ‘가정의 대장’이라 부른다. 


묻다) 여성의 지위를 나타내는 베트남어 속담은?  

답하다) “첫째는 아내요, 둘째는 하늘이다.” “남자의 명령은 여자의 징만 못하다.” “깊은 논과 암소는 첫째 딸만 못하다.” “한 무리의 남자들은 3전의 가치밖에 없다. 우리에 가두어 개미의 밥이 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여인은 300전의 가치가 있다. 그녀가 앉은 곳엔 꽃방석을 깔아야 한다.” 


묻다) 베트남에서는 결혼을 한 후 신랑이 처가집으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답하다) 전근대시기 중국의 영향이 강한 북부에서는 부거제가 일반적이었다. 즉 신부가 신랑 마을에 가서 결혼식을 올리고 신랑 집에 들어가 그 가족의 일원이 됐다. 하지만 남부에서는 신랑이 신부 마을에 가서 결혼식을 올리고 신부 집에 들어가 그 가족의 일원이 되는 처거제 풍습을 따르는 경우가 보편적이었고, 요즘도 일부 지역에서 유지되고 있다.   


묻다) 베트남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이 약화한 원인. 

답하다) 인접한 중국 유교 문화의 영향, 유럽 및 중국상인의 유입 그리고 산업화 등으로 인해 여성의 지위와 역할은 약화되고 남성의 지위와 역할이 강화된다. 

 15세기 레 왕조 출범 이후 유교 특히 송나라 주자학을 국가의 이념으로 수용했고, 특히 엘리트층 가정에서 여성의 지위가 유교적 가족 질서에 따라 규정되면서 남성의 지위가 강조됐다.  

 16세기 이후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유럽 상인과 화상의 활동이 증가하면서 해외무역과 도매업 분야에서 토착민 여성의 상업 활동이 위축되었고, 여성의 상업 활동은 주로 소매업에 국한되게 된다. 

 특히 여성의 경제적 역할을 약화한 것은 20세기 중엽 이후 산업화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자국 경제 성장을 추구한 정부들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산업을 발달시키기 위해 외국인 투자를 가능한 한 많이 유치하려 했으며, 이를 위해 저렴한 노동력을 확보하고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산업 정책에 따라 많은 여성이 도시 및 공단 지역에서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는 근로자로 일했으며, 이로써 그들의 가정과 마을에서의 전통적인 역할이 약화하거나 심지어 상실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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