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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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127

기사입력 2022.03.23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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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푸레나무


                                                김태정



          물푸레나무는

          물에 담근 가지가

          그 물, 파르스름하게 물들인다고 해서

          물푸레나무라지요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는 건지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는 건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어스름

          어쩌면 물푸레나무는 저 푸른 어스름을

          닮았을지 몰라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부끄럽게도 아직 한번도 본 적 없는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은 어디서 오는 건지

          물 속에서 물이 오른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

          물푸레나무빛이 스며든 물

          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빛깔일 것만 같고

          또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갖지 못할 빛깔일 것만 같아

          어쩌면 나에겐

          아주 슬픈 빛깔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며 잔잔히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며 찬찬히

          가난한 연인들이

          서로에게 밥을 덜어주듯 다정히

          체하지 않게 등도 다독거려주면서

          묵언정진하듯 물빛에 스며든 물푸레나무

          그들의 사랑이 부럽습니다


 


창비시선 237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창비, 2004


 


식물원카페.jpg


 

  “……/이 세상에서 내가 갖지 못할 빛깔일 것만 같아/어쩌면 나에겐/아주 슬픈 빛깔일지도 모르겠지만/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며 잔잔히/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며 찬찬히/……/묵언정진하듯 물빛에 스며든 물푸레나무/그들의 사랑이 부럽습니다”

  나뭇가지 끝에서 아직은 유약하지만, 연록의 기미가 깃들고 있는 봄밤입니다. 경북·강원의 산불 그리고 한 차례의 비와 폭설, 꽃샘추위가 다녀간 뒤에도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은 매화, 생강나무꽃, 산수유꽃, 목련꽃을 차례로 피워 올립니다. 어리석게도 인간은 눈앞의 이익을 탐하여 자연의 이법理法을 거르스려 하지만, 이미 맹자는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사람은 살아남겠지만, 이치를 거스르는 경우에는 파멸하게 된다.(順天者存, 逆天者亡)"고 일러준 바 있습니다. 수명을 넘긴 핵발전소 재가동 및 착공, 4대강 보 유지로 인한 녹조와 생태계 파괴는 역천자逆天者의 길이 분명합니다. 올해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되는 밤입니다.


  모두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조속히 극복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손열음이 연주하는 Debussy의 ‘Clair de lune(달빛)’입니다.




김상균 시인.jpg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70년대 후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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