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
육근상
시오리 벚꽃길이다
저 꽃길 걸어 들어간 할머니는
벼룻길* 활짝 피려 했던 것인데
아버지 손잡고 얼마나 멀리 갔을까
훌훌 버리고 얼마나 낯선 길 들어섰을까
걸어간 자리마다
벗어놓은 흰 옷들 가지런하다
할머니 들어간 자리
아버지 들어가 뿌리 내리고
꽃가지 마다 아이들 내어
달빛달빛 흔들리고 있다
* 아래가 강가나 바닷가로 통하는 벼랑길
솔시선 21 『滿開만개』 솔출판사, 2016
“……걸어간 자리마다/벗어놓은 흰 옷들 가지런하다//할머니 들어간 자리/아버지 들어가 뿌리 내리고/꽃가지 마다 아이들 내어/달빛달빛 흔들리고 있다”
뉴스를 보지 않고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마음속 아릿한 쓰라림을 잊으려 춘 사월 꽃들을 만나러 길을 나섭니다. 꽃들은 어떻게 시기를 알고 때맞춰 피어나는지 정말 경이롭습니다. 다음 생을 위한 한바탕의 춤사위가 끝나면 모두 ‘걸어간 자리마다’ 흔적들을 남길 테지요. 화양연화花樣年華, 곧 잊혀질.
“웃음을 갈망하고 봄바람을 기대했는데/그대가 마침 스쳐 지나가네/불현듯 서로의 눈길이 교차하고 눈빛은 뜨겁게 빛나/몹시 어지러운 심정을 가누기가 점점 힘들어지네//나는 귀신에 홀린 것 같으니 그대 기꺼이 받아들이세요/피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말아요/아마 누군가의 뒷모습이 마음을 괴롭힐 거예요//그대를 몹시 생각나게 하고/그대의 무정함도 나를 웃게 하니/한 번의 욕망조차도 회피하기가 아까워요//그대를 몹시 생각나게 하고/이 순간을 잠시 멈추게 하니/꽃다운 이 시절이 너무 자극적인 탓이에요”(아래 노래 자막의 번역을 옮김)
모두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조속히 극복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양조위(梁朝偉)•오은기(吳恩琪)가 노래하는 ‘화양연화’입니다.
(이 노래는 영화 화양연화의 OST가 아니고, 양조위가 2000년 11월에 발표한 앨범 《梁朝伟眼中的花样年华(양조위 눈 속의 화양연화)》의 타이틀 곡입니다.)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70년대 후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