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무속괴 괴담 사이 (35)] 부녀자 약취 유인의 기원, 자카 따룹(Jaka Tarub)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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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괴 괴담 사이 (35)] 부녀자 약취 유인의 기원, 자카 따룹(Jaka Tarub) 전설

기사입력 2022.04.13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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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과 괴담 사이.png

 

 

인솔교사나 안전요원도 없이 지상의 경치 좋고 호젓한 연못을 찾아 목욕 MT를 내려온 자유분방한 선녀들이 세계 곳곳에서 그들의 영원한 숙적 나무꾼들을 만나 봉변을 당하는 모양인데 자바땅의 역사서(Babad Tanah Jawi)에 실린 민화 중 하나인 자카 따룹(Jaka Tarub)의 전설을 보면 인도네시아에서도 그런 사고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카 따룹은 개인의 이름이라기보다는 ‘따룹 지역의 젊은이’, ‘따룹 지역의 아무개 청년’ 정도의 뜻입니다. 인도네시아 남자들 사이에 흔한 이름인 ‘조코(Joko) 또는 ‘자카’란 결국 미국 슬랭에서 듀드(dude)나 맨(man) 정도의 의미인 거죠. 말하자면 자바어의 조코/자카는 영어의 존 도(John Doe), 라라(Rara)/로로(Roro)는 제인 도(Jane Doe) 정도로 이름이 정확치 않은 남성 또는 여성을 지칭할 때 일반적으로 붙이는 호칭인 셈입니다. 참고로 조코 위도도(Joko Widodo) 대통령의 이름은 ‘건강한 청년’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조코 따룹은 성인이 되어 끼 아긍 따룹(Ki Ageng Tarub)이라 불리게 되는데 이 이름 역시 ‘따룹 지역의 존경받는 남성 지도자’ 정도의 의미여서 이 사람의 실명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애당초 전설, 민화 속 인물이니 본명 자체가 없을 수도 있죠. 하지만 언젠가부터 16세기 말에 세워져 17세기까지 자바를 지배하는 술탄국 마타람 왕조의 선조로 여겨지게 되면서 이례적으로 민화 속 주인공이 실존인물처럼 간주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전설 속 사건이 응아위(Ngawi) 거리(Gerih) 지역의 위도다렌 마을(desa Widodaren)에서 벌어졌다며 구체적인 지역까지 지목됩니다. 그 증거로서 자카 따룹의 무덤이 그 마을에 있다고 하죠. 위도다렌이란 마을 이름 자체도 선녀를 뜻하는 위도다리(widodari)에서 왔다고 하며 그 단어는 현재 철자법에 따라 ‘비다다리(bidadari)’로 표기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 마을에는 자카 따룹이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하는 선녀들 중 한 명의 슬렌당(selendang)을 훔쳤다는 연못도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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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에 걸쳐 몸을 두르는 용도의 천 슬렌당(Selendang)

 


자바땅의 역사서(Babad Tanah Jawi)는 본래 마타람 술탄국의 역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권능왕 스노빠티로부터 시작하는 마타람 술탄국의 역사는 대부분 역사적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지만 스노빠티 이전의 시대, 특히 마자빠힛 왕국 시대에 대해서는 대체로 상상과 전설에 의존하는 경향이 큰 것도 사실입니다.


한편에서는 마타람 왕국이 귀족들이 아니라 농부 가족에 의해 세워졌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래서 왕조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자바 백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마타람 제왕들의 선조를 특별히 신화적 인물로 창조할 필요가 있었겠죠. 그런 측면에서 스노빠티의 족보 맨 위쪽에 있는 본단 끄자웬(Bondan Kejawan)과 결혼한 나왕시(Nawangsih)를 특별한 인물로 묘사하기 위해 자카 따룹의 전설과 연계시켰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표준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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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 따룹이 7선녀를 훔쳐보는 장면 모음

 

 

인도네시아의 고대 전설들이 모두 그렇듯 자카 따룹의 전설 역시 여러 버전이 있는데 자바땅의 역사서에 기록된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자카 따룹은 범상치 않은 도력을 지닌 건장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신령한 산과 정글을 드나들며 사냥으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나무꾼이라고 하면 좀 없어 보여서 그랬을까요? 뭐, 분명 나무도 했을 거라 믿습니다. 


산 속에는 아름답고 호젓한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우연히 거기서 목욕을 하는 일곱 명의 선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에게 마음을 뺏긴 자카 따룹은 그 중 한 명이 벗어 둔 슬렌당을 몰래 훔쳤습니다. 


목욕을 마친 선녀들이 몸치장을 하고 하늘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그 중 나왕울란(Nawangwulan)이란 이름의 선녀는 자기 슬렌당을 찾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슬렌당 없이는 중력을 거슬러 하늘로 올라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으므로 다른 선녀들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놔두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어두워지는 숲 속에 홀로 남아 곤경에 빠진 나왕울란 앞에 자카 따룹이 시치미를 떼고 나타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고 선녀는 선택의 여지없이 자카 따룹을 따라 그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여차여차하여 결국 혼인을 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벌어진 부녀자 약취, 유인, 회유, 가스라이팅, 강제 결혼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요즘 같으면 반드시 쇠고랑을 찰 중대한 범죄행위였지만 자카 따룹은 천연덕스럽게 나왕울란을 완전히 속여 넘기고 오히려 은인 행세를 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게 틀림없을 자카 따룹과 가슴 속 깊은 슬픔을 애써 갈무리하던 나왕울란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그나마 어머니의 상실감을 달래 주었습니다. 나왕울란은 아기를 품에 안고 나왕시(Nawangsih)란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나왕울란은 그녀가 어떤 비밀스러운 행동을 하더라도 절대 묻지도 알려고도 하지 말라고 혼인 전부터 신신당부했고 자카 따룹은 흔쾌히 그러기로 약조했습니다. 선녀가 품은 비밀이 자카 따룹이 숨긴 파렴치한 범죄사실보다 더 치명적일 리 없었으니까요. 더욱이 그녀의 비밀이란 단 한 톨의 쌀로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밥을 짓는다는 매우 바람직하고도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나왕울란은 자카 따룹에게 밥을 짓는 동안 절대로 솥뚜껑을 열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전설에서 그렇듯 그런 당부와 약조는 깨지기 위한 것들입니다. 어느 날 자카 따룹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그 기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려고 밥 짓는 솥뚜껑을 살짝 열어보았어요. 그 순간 나왕울란의 그 특별한 능력이 사라졌고 이후 그녀는 보통 여자들처럼 밥을 지어야만 했습니다.

 

 

전설_떠나는 나왕울란.jpg
나왕울란은 떠나보내며 망연자실한 자카 따룹

 


그 결과 곳간의 쌀이 빨리 떨어지게 되었지만 이젠 후회에도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나왕울란 자신의 불행을 차치한다면 그녀의 슬렌당을 훔친 것이 자카 따룹의 평생 한 일 중 가장 잘 한 일이었지만 그는 그 외엔 뭘 해도 가족과 생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이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생계를 위해 더욱 분투하던 나왕울란은 자카 따룹이 몰래 숨겨두었던 자신의 슬렌당을 오래된 옷꾸러미 속에서 발견하고 지금까지 남편이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으면서 오랫동안 참아왔던 상실감과 슬픔이 한꺼번에 분노로 변해 터져 나왔습니다. 현타가 온 겁니다.


그녀는 이제 슬렌당을 몸에 두르고 하늘로 돌아갈 차비를 마쳤고 후회막급한 남편이 아무리 만류한들 아무 소용없었습니다. 하지만 같이 데려갈 수 없는 나왕시가 눈에 밟혔습니다. 비행용 슬렌당의 탑승정원이 한 명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매일 지상에 돌아와 나왕시에게 젖을 물리겠다는 약조를 남기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 후 자카 따룹은 하루에 한번 벌판에서 볏단에 불을 붙이고 나왕시를 그 곁에 놓아둔 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 있으면 나왕울란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자장가도 불러주었지만 자카 따룹에게는 두 번 다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마음 속 분노와 회한이 깊었던 거겠죠.


실제 전설은 여기까지인 것 같지만 2부가 꾸역꾸역 이어집니다. 인도네시아에는 이런 식으로 속편이 이어지는 민화들이 적지 않지만 정말 이어지는 이야기인지, 후세에 억지로 짜집기 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나왕시의 혼인

 

자카 따룹은 나중에 그 지역 지도자가 되어 끼 아긍 따룹(Ki Ageng Tarub)이라 불리게 되고 마자빠힛의 국왕 브라위자야와 절친한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선녀 슬렌당이나 훔치던 인내심 없는 파렴치한의 사뭇 뜬금없는 출세인데 원문에서는 그 배경에 대해 별다른 설명이 없습니다.


어느 날 브라위자야 왕은 자신의 신령한 성유물 끄리스 단검 끼야이 마헤사 눌라르(Kyai Mahesa Nular)를 끼 아긍 따룹에게 보내 수리를 맡겼습니다. 성유물의 수리 유지보수는 일반 대장장이가 아니라 원래 도력이 높은 사람이 맡는 법인데 이는 자카 따룹이 늘 사냥만 하고 다닌 게 아니라 끄리스를 벼리는 기술도 가졌음을 시사하는 대목이죠.


그 끄리스 단검을 가지고 온 왕궁의 사절은 끼 부윳 마사하르(Ki Buyut Masahar)와 그의 수양아들인 본단 끄자웬(Bondan Kejawan)이란 사람이었는데 끼 아긍 따룹은 본단 끄자웬이 사실은 브라위자야 왕의 친아들이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본단을 부추겨 그 지역에 함께 살게 하고 나중엔 수양아들로 삼아 아름도 럼부 뻐뗑(Lembu Peteng)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나왕시는 어른이 된 후 럼부 뻐뗑과 혼인하게 되죠. 끼 아긍 따룹은 선녀에게도 써먹었던 비전의 기술인 약취, 유인, 회유, 설득 등 일련의 가스라이팅과 강제결혼 기법을 이번엔 사위에게 시전한 것입니다.


자카 따룹이 죽은 후 럼부 뻐뗑은 장인의 지위를 이었고 나왕시의 아들은 장성한 후 끼 그따스 빤다와(Ki Getas Pandawa)라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그는 후에 끼 아긍 셀라(Ki Ageng Sela)를 낳는데 여기서부터 낯익은 이름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끼 아긍 셀라는 나중에 마타람 술탄국을 세우는 권능왕 스노빠티의 조부가 되는 인물로 앞선 연재의 일무삭티(Ilmu) 편은 물론 수타위자야가 빠장 왕국과 겨루며 마타람 왕국을 건국하는 과정에 잠깐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족보를 따져보면 자카 따룹은 권능왕 스노빠티의 5대조 할아버지가 됩니다.


선녀들의 연못(Telaga Bidadari)

 

쌍둥이처럼 자카 따룹과 똑 같은 구도로 전개되는 선녀와 나무꾼 전설이 남부 깔리만탄에도 전해져 내려옵니다. 주인공들 이름은 다르지만 스토리 자체는 거의 표절 수준의 싱크로율을 보입니다.


옛날옛적에 아왕 수크마(Awang Sukma)라는 잘생긴 남자가 세상을 주유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정글에 들어선 그는 숲속 많은 생물들의 조화로운 삶을 즐겼고 결국 그 숲이 마음에 든 그는 그곳에 집을 짓고 살게 되었습니다. 숲 속에서의 삶은 평화로웠습니다. 


그곳에서 오래 살다 보니 그 지역의 우두머리인 다뚜(Datu)로 임명되기도 했습니다. 숲 속에 혼자 사는 사람에게 이장 감투를 줬다니 뭔가 좀 이상하긴 하지만 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죠. 아무튼 그래서 그는 한달에 한 번 자신이 관리해야 하는 지역을 돌아보아야 했는데 그러다가 맑은 물이 흘러드는 아름다운 숲속 연못을 발견하게 됩니다. 연못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은 나무 그늘 밑에 놓여 있었고 많은 새들과 곤충들이 그곳에 모이거나 살고 있었습니다. 다뚜 아왕 수크마는 그곳 절경에 넋을 빼앗겼습니다.


그는 근처 나무 밑에 몸을 눕히고 유유자적하고 있다가 연못 쪽에서 들려오는 사람들 기척을 들었습니다. 누가 오는 기색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그가 바위 사이로 연못 쪽을 바라보니 그곳엔 일곱 명의 젊은 여인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이었어요. 일곱 선녀는 자신들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날개옷, 즉 날 때에 쓰는 슬렌당을 아무렇게나 연못 주변에 놓아두고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다뚜 아왕 수크마의 손이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놓여 있어 그는 그 슬렌당을 훔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의 인기척에 놀란 여인들은 급히 슬렌당을 걸치고 날아올랐지만 그 중 한 명은 슬렌당을 찾지 못해 지상에 남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일곱 선녀들 중 막내였는데 언니들은 숲 속에서 다뚜 아왕 수크마가 걸어나오는 모습을 보자 허겁지겁 하늘로 돌아갔고 막내 선녀는 풀숲 사이로 몸을 숨기려 했습니다.


아왕 수크마는 오갈 데 없게 된 막내 선녀에게 자신과 함께 살게 해주겠다고 제안했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막내 선녀는 그가 자신이 슬렌당을 훔쳤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그의 도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뚜 아왕 수크마는 이미 막내 선녀의 아름다움에 푹 빠진 상태였습니다. 문헌에 따르면 막내 선녀 역시 아왕 수크마에게 반했다고 되어 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그녀로서는 아왕 수크마의 호의를 거절하지 못했을 것이고 아왕 수크마는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그린라이트라고 간주했겠죠. 남자들은 뭐든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무튼 그들은 그렇게 혼인하여 일 년 후 예쁜 딸을 낳아 꾸말라사리(Kumalasari)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동화 속 내레이션은 그들이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지만 언니들과 생이별하고 어쩔 수 없는 사고로 인해 지상의 인간과 살게 된 막내 선녀는 정말 행복했을까요? 


 

전설_꾸말라사리.jpg

 

 

그러던 어느 날 검정색 닭 한 마리가 헛간에 쌓아 둔 볏짚 위에 올라가 발로 볏짚을 파헤치는 것을 막내 선녀가 보고 그 닭을 쫒아내려 했습니다. 그러다가 검은 닭이 파헤친 볏짚 안에 대나무 통이 숨겨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여긴 그녀가 그 통을 열자 그 안에는 오래 전 잃어버렸던 비행용 슬렌당이 들어 있었습니다. 반가움과 즐거움의 탄성을 내질렀지만 그 탄성은 곧 쓰디쓴 배신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슬렌당을 꽁꽁 줄로 묶어 대나무 통에 넣어 숨긴 사람이 다름 아닌 자기 남편이란 사실이 너무나 자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후회와 배신감으로 치를 떨었지만 원문에 따르면 그녀는 남편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럴 리 없지 않을까요?


결국 막내 선녀는 하늘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녀는 슬렌당을 허리에 두른 후 아기를 품에 안았습니다. 이 모습을 본 다뚜 아왕 수크마가 급히 달려와 자신이 슬렌당을 훔쳐 감춘 부끄러운 행동을 사과했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막내 선녀는 한참동안 다뚜 아왕 수크마를 응시하다가 그에게 아기를 안겨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기를 잘 키워 주세요. 엄마가 보고 싶을 땐 끄미리(Kemiri) 콩 일곱 톨을 가져와 바꿀(bakul-밥 넣는 통)에 넣고 흔들어 소리를 내면서 풀피리를 불면 내가 만나러 내려올 거라고 말해 주세요.”


전설_끄미리콩과 바꿀.jpg
끄미리 콩과 바쿨(밥통)

 

 

막내 선녀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슬렌당을 펼치고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다뚜 아왕 수크마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슬퍼하면서 자신에게 재앙과 같은 이 상황을 불러오게 만든 검은 닭을 키우는 것을 후손들에게 금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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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뚜 아왕 수크마는 막내선녀의 인생을 파괴한 것을 회개하기는커녕 그 사실을 들킨 것에 대해 검은 닭에게 책임을 돌리는 마지막 장면에 헛웃음이 나옵니다. 최악의 잘못은 나무꾼이 저질러 놓고서 마치 선녀가 가족을 버리고 떠나는 나쁜 사람처럼 비치게 하고 아무 잘못 없는 닭을 보스몹이나 최종 빌런으로 만드는 건 도덕적 사고가 마비된 이런 이야기의 전형적인 결말입니다.


특히 이 전설이 인도네시아 사회에 끼친 가장 큰 해악은 부녀자를 약취, 유인하고서도 가해자인 나무꾼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남편을 쫓아내야 마땅한 상황에서 오히려 피해자 여인이 집을 떠나도록 스토리를 전개하면서 성착취범들, 가스라이팅 사범들의 솜방망이 처벌을 국룰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사회에서는 일부다처제가 당연시되고(물론 종교 때문이기도 하지만) 얼마 전 반둥의 한 쁘산트렌(이슬람 기숙학교)에서는 수많은 여학생들을 성폭행하고 그중 여럿에게 아기까지 낳게 만든 뻔뻔스러운 우스탓(Ustad: 종교선생)이 나오게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모두 자카 따룹과 아왕 수크마의 후손들인 것이죠.


전설이나 동화는 원래 오랜 세월 구전되어 내려오면서 각 시대상을 반영해 첨삭되는 것일 진데 이제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도 현대적인 가치관을 반영해 나무꾼이 지은 죄에 대한 응분의 벌을 받아 선녀궁에 끌려가 평생 종살이를 하는 걸로 내용이 좀 더 진화해야 하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끝)


 

♣배동선 작가는 인도네시아의 동포 향토작가. 현지 역사, 문화에 주목하며 저서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와 번역서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공동번역서 <막스 하벨라르>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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