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조연숙/책이 답하다 12] 인도를 넘어선 자바인의 고대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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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숙/책이 답하다 12] 인도를 넘어선 자바인의 고대문명

기사입력 2022.04.2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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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숙/책이 답하다 12] "인도를 넘어선 자바인의 고대문명"


‘책이 답하다’는 인도네시아를 포함해 동남아시아에 대해 가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책에서 찾아보는 코너입니다. [편집자 주]

 

책 

제목: 아시아 건축기행 

유토피아를 디자인하다

저자: 강영환   

출판사: 한길사 

출판일: 2019년 2월 20일

 

아시아건축.jpg


 자바 왕들은 왕궁 라뚜 보꼬(Ratu Boko)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불교사원 보로부두르(Borobudur)는 인도 문화를 뛰어넘는 인도네시아 고대문화라고 하는데 무엇을 보고 하는 평가일까? 쁘람바난(Prambanan)은 무너진 돌들을 다 쌓으면 어떤 모습이 될까? 한국의 절과 다른 짠디(Candi)는 어떤 건축일까? 칠이 벗겨진 담장으로 둘러싸인 따만 사리(Taman Sari)는 무엇을 보고 아름다운 물의 정원이라고 부르는 걸까? 어떻게 불교사원과 힌두사원이 공존할까? 보로부두르와 쁘람바난이 수백 년 간 사라졌다가 나타난 이유는? 

 

책 <아시아 건축기행>에서 이런 답을 찾을 수 있다. 저자는 그 시대를 지배한 종교에 대해, 종교이기에 앞서 한 지역의 역사이자 문화이며 총체적인 생활양식의 토대라고 정의한다. 이 책은 지난 40여년간 저자 강영환이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 부지런한 두 발로 직접 만났던 낯선 나라와 도시, 건축에 대한 견문기다. 현재까지 50여 개국을 여행했고, 그 가운데 인도ㆍ스리랑카ㆍ인도네시아ㆍ캄보디아ㆍ미얀마ㆍ타이ㆍ라오스ㆍ네팔ㆍ부탄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장소 32곳을 선정했다. 책에 담긴 114장의 사진은 모두 저자가 직접 찍은 것이다. 전문가가 찍은 사진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고 멋진 사진들이다.

 

이 책은 건축전문가에서부터 학생이나 이제 막 건축에 관심을 가진 초심자 특히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아시아 문명에 관심을 가진 모든 독자가 쉽고 재미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인도네시아 부분만 발췌했지만, 전체를 읽으면 인도네시아 건축의 모태인 인도 건축과 인도네시아 건축이 앙코르 와트 등 인도차이나반도에 미친 영향도 알 수 있다. 

 


[책이 답하다]


묻다) 인도네시아 문명과 인도 문명은 같을까? 다를까?  

답하다) 저자는 인도네시아 문명과 인도 문명을 동일시하는 것은 우리의 삼국시대 한반도 문명이 중국과 동일하다고 보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고 비유했다. 저자에 따르면, 7세기 이전까지는 인도네시아 고대문명이 인도에서 직수입되었지만 700년경부터는 인도 문명을 기반으로 이미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보로부두르, 쁘람바난, 라뚜보꼬와 같은 신비스럽고 거대한 유적들이다. 


라뿌보꼬.jpg
라뚜보꼬 왕궁 [아시아 건축기행 캡처]

 

묻다) 라뚜보꼬에 대해 

답하다) 중부자바 끄두(kedu) 평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언덕 위에 자리한 왕궁 유적이다. 저자는 라뚜 보꼬를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비유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묘사했다. 유적에서 발굴된 금석문은 8세기경 스리위자야의 왕이 건설했다고 전한다. 왕은 불교에 귀의하여 왕좌에서 물러난 후 조용히 수도할 목적으로 승원을 세웠고, 이후 성벽을 쌓아 요새로 구축한 것은 9세기경의 일이다. 


묻다) 일반인들이 볼 때 라뚜 보꼬는 무너진 왕궁의 폐허이다. 그렇다면 원형을 복원해야 하지 않을까? 

답하다) 저자는 어쭙잖은 복원은 오히려 원형에 대한 신비로움을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복원된 익산 미륵사지 동탑과 무너진 채 있는 서탑을 비교하며, 라뚜보꼬를 정교하고 세심하게 복원할 수 없다면 폐허로 두는 편이 낫다는 의견을 밝혔다. 


보로부두르.jpg
보로부두르 불교사원 [아시아 건축기행 캡처]

 

묻다) 보로부두르 사원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답하다) 저자는 “돌로 쌓아 만든 거대한 산, 그것이 하나의 사원이라니! 이집트에 피라미드, 멕시코에 테오티우아칸이 있다면 아시아에서는 단연 보로부두르를 꼽겠다”고 썼다.  


묻다) 보로부두르를 “인도를 넘어선 자바인의 고대문명의 징표”이라고 부른 이유

답하다) 기단 면을 부조로 장식하는 방식은 인도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이야기를 연속적으로 풀어나가는 방식은 자바인들의 독특한 방식이라고 분석한다. 또한 인도의 석조건축이 장식적이고 직설적인 반면 자바의 석조건축은 은유적이고 상징화된 건축 표현으로 발전했다고 서술했다. 저자는 보로부두르가 규모만 경이로운 것이 아니라 이보다 더 기술적·예술적으로 탁월한 콘텐츠를 가진 건축은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묻다) 보로부두르 기단 부조 그림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들 

답하다) 수천 면에 달하는 부조 그림에는 불교 교리와 더불어 일상생활의 다양한 장면이 담겨 있다. 그림 속 직조와 공예품 관련 장면, 농사 장면, 국제교역 장면 등을 통해 당시 농업과 산업, 국제무역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논농사가 발달해 잉여 생산이 이루어졌고 인구도 집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강력한 왕권 국가를 형성하기 위한 조건들이고, 이런 배경 위에 왕권을 과시할 수 있는 종교 기념물들을 축조할 수 있었다. 


묻다) 사일렌드라 왕조가 보로부두르를 건설한 이유 

답하다) 일반적으로 거대한 종교건축을 세우는 것은 신앙의 발전일 뿐만 아니라 국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사일렌드라(Sailendra) 왕조는 인도네시아 중국에 이르는 해상실크로드의 거점을 장악하여 강대한 해상제국으로 성장했고, 인도 불교를 아시아 여러 나라에 전파하는 거점이 되었다. 


묻다) 보로부두르가 잊힌 이유 

답하다) 보로부두르 사원 인근에 있는 머라삐 화산이 대폭발을 일으킨 뒤 왕국은 수도를 동부자바로 옮긴다. 또한 15세기에는 이 지역에 이슬람 세력이 불교 왕조를 대체하면서 이슬람 개종을 주도했다. 저자는 신자가 없는 종교시설은 사람이 살지 않는 집과 다를 것이 없다고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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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람바난 힌두사원 [아시아 건축기행 캡처]

 

묻다) 쁘람바난을 짠디라고 부른다. 짠디는 무엇인가?  

답하다) 쁘람바난(Prambanan)같은 탑형 사원 즉 탑 모양의 사원을 짠디(candi)라고 부르며, 인도의 힌두 탑인 시카라(Sikhara)에서 유래했다. 짠디는 신전과 왕의 묘지와 기념관 등으로 구성되며, 신전은 대개 왕실의 선조들을 모시고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다. 탑의 받침에 해당하는 기단에는 주로 힌두교와 불교의 경전의 내용을 설명하는 그림이 새겨져 있는데, 이들 그림은 문자 해독이 자유롭지 않았던 서민들에게 필요한 신앙적 교과서 기능을 했다. 또한 종교적인 그림 사이에 왕의 업적을 슬며시 끼워 넣어 왕을 신격화하는 시도도 한다. 기단에는 계단을 두고 기단 위에 탑을 쌓고 동굴 모양의 감실에 신상이나 신을 상징하는 조각 또는 왕족의 유골을 둔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어두운 감실 속에 슬며시 나타나는 신상은 경외심을 고조시키는 연출법이다.   


묻다) 쁘람바난, 로로종그랑, 세우 사원의 관계는 

답하다) 쁘람바란은 하나의 사원이 아니라 여러 개의 사원이 군집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사원 군이다. 쁘람바난 사원 군 중에서 대표적인 사원 군이 로로 종그랑(Loro Jonggrang)과 세우(Sewu) 사원으로 각각 200여 개의 탑들로 구성된다. 이들 가운데는 힌두교 사원도 있고 불교 사원도 있다. 이것들은 거의 동시대에 건설된 것이다. 저자는 8~9세기에는 이런 종교적 병존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오늘날 천주교 성당 옆에 개신교회가 세워져 있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묻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힌두사원이라는 쁘람바난 사원을 만든 이유 

답하다) 저자는 밀림의 평원 위에서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거대한 탑을 승리한 왕의 기념비로 보았다. 신화로 포장된 이야기는 종교적 배경이 다른 두 왕가가 중부자바의 지배권을 놓고 각축을 벌였음을 보여준다며, 누가 이기든 사회적 융합을 위한 종교적 화해와 승자를 위한 기념비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거대한 탑의 높이를 군림의 표상이자 인간 욕망의 산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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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만 사리 [아시아 건축기행 캡처]

 

묻다) 따만사리의 가치  

답하다) 이슬람 왕조의 화려한 삶을 생생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은밀하고 신비스러운 정원과 건축적 장치를 체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유적이다. 쁘람바난이 힌두 문명을, 보로부두르가 불교문명을 대표한다면 따만사리는 이슬람 문명의 유산으로서 또 다른 색상의 인도네시아 문명을 반영한다.    


묻다) 현재 우리가 보는 따만사리는 외장이 벗겨져 속살이 드러난 건물에 문짝도 없는 입구를 가진 폐허 같은 유적인데, 과거에는 어떤 모습이었나?   

답하다) 따만사리는 왕궁의 후원으로 ‘물의 궁전’이라 부를 만큼 아름다운 정원이었다고 한다. 거대한 인공호수를 중심으로 네 개의 구역을 나누어 섬과 수조, 조경으로 만든 정원과 정자 18개소가 있었고, 이슬람교 사원과 기도실, 욕탕을 포함한 건물 58개소가 있었으며, 이 모든 구역은 지하도로 연결되어 터널 끝에 원통형 공간을 통해 비밀스러운 방으로 이어지게 설계되었다고 한다. [데일리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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