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무속과 괴담 사이(37)] 거인들이 멸종한 이유: 바뚜르 호수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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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과 괴담 사이(37)] 거인들이 멸종한 이유: 바뚜르 호수의 전설

기사입력 2022.05.11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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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과 괴담 사이 도입.png


전설_다나우 빠뚜르 .png
발리 낀따마니의 바뚜르 호수

 


옛날옛적 발리섬에 한 부부가 살았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한 후 오래도록 아이를 얻지 못했지만 희망을 놓지 않고 언젠가 아이를 갖게 해 달라고 늘 기원했습니다. 그 기도를 들은 신 상향 위디와사(Sang Hyang Widi Wasa)가 곰곰이 생각한 끝에 부부에게 남자아이를 허락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화에서 그렇듯 신이 허락한 아이들은 어딘가 조금씩 하자가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게 뭔지 뻔히 알 테니 시원하게 들어주면 될 텐데 그 간절함을 볼모로 소원을 살짝 비틀어 비슷하게만 들어주는 신들의 변덕이 늘 문제입니다.


아기는 폭풍성장을 했습니다. 그는 남다른 식욕을 가지고 있어 아직 아기인데도 성인 열 명이 먹을 양을 혼자 먹어 치웠습니다. 아이가 소년이 되자 몸집도 식욕도 더욱 커졌습니다. 몸집도 크고 많이 먹는다고 해서 부모는 이름도 꺼보이와(Kebo Iwa)라고 지어 주었습니다. 대장 물소라는 뜻이었죠.


꺼보이와는 몸집이 더욱 커졌고 그 만큼 식욕도 더 커졌습니다. 이젠 성인 백 명이 먹을 음식을 단번에 동내 버렸으므로 부모는 아이 먹을 것을 대느라 등골이 빠질 지경이었습니다.


더욱이 꺼보이와는 화를 잘 내는 포악한 성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음식이 조금 늦어도, 먹을 게 충분하지 않아도 불같이 화를 내며 주변에 있는 것들을 모두 부수곤 했습니다. 처음엔 세간살이를 부수다가 나중에 몸집이 커지면서 이웃집들을 부수고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쓰는 예배당이나 마을회관 같은 건물들을 무너뜨리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그를 말리던 부모마저 자식 먹을 것을 대느라 정작 자기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꼬챙이처럼 말라 세상을 떠난 후, 꺼보이와는 이제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에겐 성난 꺼보이와를 마주하는 것만큼 무서운 일이 없었습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꺼보이와가 최소한 사람은 잡아먹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그가 기분이 좋을 때엔 마을사람들을 도와 우물을 파거나 집을 옮기거나 언덕을 개간해 논밭을 만들거나, 강에 둑을 쌓거나 쓰러진 큰 나무와 굴러 떨어진 바위들을 옮기는 일을 거들기도 했으므로 유용한 측면도 분명 있었습니다. 수십 명이 달라붙어야 할 수 있는 일을 혼자서 척척 해냈으니 그 못된 성격만 맞춰준다면 마을에서 필요한 큰 사역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일해준 대가로 음식을 배불리 먹게 해 주는 한 꺼보이와와 마을사람들은 아슬아슬한 공생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근이 닥치자 꺼보이와와 함께 사는 것은 재앙이 되어 버렸습니다. 마을사람들 대부분이 농부였으므로 작황이 좋으면 꺼보이와의 힘을 빌려 농사를 더 크게 짓고 그 결과 충분한 음식을 나누어 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꺼보이와는 온갖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기근 속에서 자기 가족들 먹이기도 막막한 판에 꺼보이와의 행패를 막기 위해 그의 배를 먼저 불리는 것이 더욱 급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꺼보이와는 마을사람들이 겪고 있는 기근의 어려움을 이해하거나 동참할 나긋나긋한 성격이 아니었습니다. 배가 부르면 얌전하다가도 배가 고프면 온갖 패악질을 저지르는 그에게 세상살이는 아주 단순한 것이었으므로 마을사람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어떻게 꺼보이와를 없앨지 은밀히 논의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계책을 마련했습니다. 그 첫 단계로 모든 마을사람들이 없는 형편에서도 밥을 굶어가며 꺼보이와가 먹을 음식을 최대한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자신들의 피와 땀이나 다름없는 음식들을 조금씩 모아 마침내 꺼보이와가 한 끼 배불리 먹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또 한 무리의 마을사람들은 대량의 석회암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음식과 석회암이 모두 준비되자 이장은 사람들과 함께 꺼보이와를 만나러 갔습니다.


꺼보이와는 그 사이에 벌써 마을사람들이 기르던 가축들을 몇 마리 잡아먹고 배를 두드리며 빈둥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더니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이 오는 것은 음식이 준비되었다는 뜻이었으니까요. 

“무슨 일이오? 내가 먹을 음식을 준비했소? 난 아직 배가 고프다고!”

“그렇소. 당신이 배불리 먹을 음식을 충분히 준비했소. 당신이 우릴 도와준다면 준비한 음식을 모두 주겠소!” 

이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식을 충분히 준비했다는 말에 꺼보이와는 냉큼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일을 돕지 않을 이유가 없지. 뭘 도와드리면 되겠소?”

이장은 그간 꺼보이와가 난동을 부릴 때마다 부서지고 무너진 마을사람들 집이 한 두 채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그건 당신들이 음식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게 어떻게 내 잘못이오? 집이 부서진 건 당신들 잘못이오!” 

꺼보이와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장은 그와 말다툼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꺼보이와, 당신도 아는 바와 같이 이 모든 건 올해 수확이 좋지 않기 때문이오. 수확에 실패한 건 물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건기가 길어지면서 물이 다 말라버린 거요. 하지만 사실 땅을 좀 파면 지하수가 얼마든지 나온다오. 농사를 충분히 지을 만한 양이오. 그래서 당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거요. 우리가 농사에 댈 물을 끌어 쓸 수 있도록 큰 우물을 파 주시오. 물이 충분하면 농사가 잘 될 것이고 이번 기근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오. 그렇게 되면 당신이 먹을 음식도 충분히 제공할 수 있을 것이오.”

꺼보이와는 이장의 말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좋소. 좋은 계획이오. 내 당장 당신들을 돕겠소.”


꺼보이와는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그는 이장이 가리키는 곳에 우물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 규모는 보통 우물이 아니라 작은 저수지 크기였습니다. 거기서 꺼보이와는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 해질 정도로 가공할 힘을 발휘합니다. 사람들은 그 사이에 미리 준비해 놓은 석회암들을 꺼보이와가 만든 구멍 가까이로 옮겨왔습니다.


우물 가까이에 쌓인 석회암 더미를 본 꺼보이와는 문득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무얼 하려고 그렇게 많은 석회암들을 모아 온 거요?”

“우물을 다 파고 나면 당신이 살 쾌적하고 큰 집을 지어주려고 하는 거요.” 

이장이 대답하자 꺼보이와는 금세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 그렇군. 내가 살 큰 집을 지으려면 석회암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하겠지!”

꺼보이와는 이장의 말에 기뻐하며 더욱 열심히 우물을 팠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지하수가 터지면서 거대한 우물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장은 꺼보이와에서 좀 더 넓고 깊게 우물을 파달라며 계속 작업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우물이 크면 클수록 더 많은 논에 물을 댈 수 있다면서요. 꺼보이와도 곧 많은 음식을 얻어먹게 되고 큰 집이 생길 거란 기대에 더욱 열심히 땅을 팠습니다. 그래서 우물은 더욱 깊고 넓어졌고 지하수도 점점 더 높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끊임없이 일한 탓에 엄청난 피로와 공복이 몰려왔습니다. 꺼보이와는 좀 쉬겠다면서 먹을 것을 찾았습니다. 

“먹을 걸 달란 말이야!”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는 화를 내며 구덩이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달라고 꽥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마을사람들은 미리 준비해 둔 음식을 꺼보이와 앞에 날라와 쌓았습니다. 산더미 같은 음식을 본 꺼보이와는 그제서야 마음이 푸근해져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집어넣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사람들 전부가 며칠은 먹을 만한 엄청난 양의 음식이 거의 동나기 시작할 무렵 꺼보이와도 마침내 포만감을 느꼈습니다.. 힘겨운 일을 마치고 배가 부르자 졸음이 밀려왔습니다. 그는 꾸벅꾸벅 졸다가 자신이 판 우물 비탈에 몸을 눕혔는데 완전히 잠에 골아 떨어지면서 몇 바퀴 굴러 물이 차오르는 우물 수면에 몸을 걸치게 되었습니다. 

우물은 계속 차올라 꺼보이와의 몸을 덮기 시작했지만 그는 여전히 요란하게 코를 골았습니다. 그는 한번 잠들면 웬만해서는 중간에 일어나는 법이 없었습니다. 물은 이제 엄청난 속도로 불어 어느새 꺼보이와의 몸이 완전히 잠겼습니다.


“지금입니다!” 

이장은 그 순간을 기다렸다가 마을사람들을 시켜 준비해둔 석회암을 구덩이로 밀어 넣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양의 석회암이 꺼보이와 주변에 떨어지자 물과 섞여 풀어지며 꺼보이와의 콧구멍과 귓구멍, 약간 벌린 입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마을사람들은 완전히 잠긴 꺼보이와의 몸 위로 석회암을 바위 째로 굴러 떨어뜨렸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꺼보이와를 우물 속에 수장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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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뚜르 호수 전설 아트 모음

 

꺼보이와가 숨쉬기 어려워 눈을 떴을 때 그는 물 속에서 엄청난 양의 석회암에 짓눌려 있었고 녹은 석회가 코와 입을 막고 있었습니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이미 때가 늦고 말았습니다. 그 와중에도 마을사람들은 아직도 석회암 바위를 꺼보이와의 몸 위로 계속 굴러 떨어뜨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빠져나오지 못한 꺼보이와는 자신이 판 우물 속에서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마을사람들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상향 위디와사(Sang Hyang Widi Wasa)가 자신이 탄생을 허락했던 아이 꺼보이와를 죽인 마을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린 것입니다. 순식간에 우물 아구까지 차오른 지하수는 급기야 넘치기 시작하더니 꺼보이와가 원래 살던 곳은 물론 그 일대의 모든 마을들이 물에 잠겼고 미친 듯이 높은 곳으로 도망치던 마을사람들도 결국 불어 오른 물길이 삼켜버리고 말았습니다.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자기 감정에만 충실할 뿐 인간들과 공감할 줄 모른다는 것이 신과 거인들의 공통점이죠.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상향 위디와사가 꺼보이와의 죽음에는 미친 듯 격분해 모든 사람의 목숨을 뺏은 것입니다. 


꺼보이와가 우물을 파면서 파낸 흙더미들은 바뚜르 산(Gunung Batur)이 되었고 그때 모든 것을 삼켜버린 산 속의 호수가 오늘날 바뚜르 호수(Danau Batur)가 되었습니다. 그 호수의 퇴적물 속에는 그곳에 수장되어 버린 옛날 마을과 거인 꺼보이와의 흔적이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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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 속 꺼보이와와 마을사람들의 갈등은 어쩌면 오래 전 지상에 살았던 거인들과 현생 인류의 갈등과 충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과거 신장 4미터 이상의 거인들이 살았다는 것은 고고학적으로 대략 증명이 되고 있고 거인들에 대한 전설들이 세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잘 찾아보면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은 자료들도 있습니다. 바뚜르 호수의 전설도 그런 거인 전설 중 하나입니다. 인도네시아에는 발리의 꺼보이와 외에도 아쩨의 뚜안 따파(Tuan Tapa)같은 다른 거인들의 이야기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뚜안 따빠은 남부 아쩨 따빡뚜안(Tapaktuan) 지역 해변 바위 위에 거대한 발자국을 찍어 놓은 거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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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빡뚜안 해변의 거인 발자국

 


인류가 다른 종을 공격하여 멸종시키는 것은 대개 그 종이 인류를 공격하거나 위협할 경우, 그 종이인류와 같은 먹이를 놓고 쟁탈전을 벌이는 경우, 마지막으로 그 종을 잡아먹으면 건강에 좋다고 소문날 경우입니다. 

인류를 위협하는 종들은 결국 살아남지 못합니다. 산군이라 불리며 두려움의 대상이던 호랑이들이 한반도와 만주에서 완전히 멸종된 것처럼요. 인간은 자기들에게 조금이라도 위협이 되는 존재를 절대 가만 두지 않습니다. 미국이 파나마, 리비아, 이란, 아프가니스탄을 가만 두지 않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인간과 먹이쟁탈전을 벌이지 않는 소나 말, 초식동물들과 달리 인간과 비슷한 식성을 가져 먹이쟁탈전을 벌이는 동물들은 유해조수로 분류되어 퇴치대상이 됩니다. 논밭을 훼손하는 멧돼지, 참새들처럼 말이죠. 비슷한 식성을 가진 돼지는 그 자체로 인류의 먹이가 될 수 있기에 철저히 사육되어 식용으로 전락했습니다. 

한 때 몸에 좋다고 소문났던 개구리나 도룡뇽이 한국땅에서 거의 씨가 말랐던 일이 있어요.


꺼보이와의 전설은 저 위의 경우 중 두 번째, 즉 물량이 한정된 같은 먹이를 두고 두 종이 다투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세상에 존재했던 거인들이 인간을 잡아먹었다는 전설들도 있지만 그것이 사실은 같은 음식을 인간보다 훨씬 많이 소비하는 거인들을 멸절시키기 위해 인간들이 만들어낸 도시괴담 같은 것이었겠죠. 


그들과의 협력이 인류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거인이 더 많은 음식을 소비하는 상황에서 모든 물자가 그러하듯 음식도 그 총량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였겠죠. 그래서 인류역사의 한 시점에서 서로에게 큰 위협이 된 두 종이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거인들의 멸종으로 귀결되고 말았습니다. 왜 현생인류가 아니라 더 강대한 거인들이 멸종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공룡들의 멸종과 같은 맥락이었을까요?


인류와 거인들의 투쟁이 얼마나 지난한 싸움이었는지는 꺼보이와의 전설에서도 조금 엿보입니다. 성서에서조차 네피림 거인들을 천사와 인간들의 혼종으로 묘사한 점에서 그들이 인간들에게 얼마나 위협적이고 강력한 존재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뭐, 어쨌든 다 지나간 일이니 뒤늦게나마 멸종된 거인들의 명복을 빌어 봅니다. [데일리인도네시아]


전설_거인 유골.png

거인 유골 발굴 현장

 


참조: 

https://dongengceritarakyat.com/cerita-anak-rakyat-bali-legenda-asal-mula-danau-batur/

 

♣배동선 작가는 인도네시아의 동포 향토작가. 현지 역사, 문화에 주목하며 저서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와 번역서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공동번역서 <막스 하벨라르>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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