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고해소의 문처럼
김명기
죽은 사람이
들고 나는 장례식장 앞
태국과 인도네시안 노동자들이
어깨에 철근을 메고 나른다
서툰 우리말을
저희 말처럼 주고 받으며
운구차 옆을 비켜
가파른 비계를 오르내린다
입 다물고 아주 떠나는 사람과
서툰 말로 간신히 사는 사람이
떨어지는 이파리 잎맥처럼
말없이 갈라지는 저녁
어두운 고해소의 문을 닫고 나오듯
산 자와 죽은 자 사이
순교를 위해 순정을 다할 것처럼
순교를 위해 순정을 다한 것처럼
붉은 영산홍이 피었다 진다
걷는사람 시인선 056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걷는사람, 2022
“……/어두운 고해소의 문을 닫고 나오듯/산 자와 죽은 자 사이/순교를 위해 순정을 다할 것처럼/순교를 위해 순정을 다한 것처럼/붉은 영산홍이 피었다 진다”
‘순교를 위해 순정을 다한 것처럼/붉은 영산홍이 피었다’ 질 무렵, ‘순교를 위해 순정을 다한 것처럼’ 그가 떠났습니다. 5월 23일은 그가 우리 곁을 떠난 날입니다. 그가 떠난 뒤에도, 다시 열세 번의 봄이 찾아왔습니다.
盧 武 鉉. 당신은 참으로 외로웠을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언론에서도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까지…… 뻔한 얘기지만, 같은 통속끼리 아닌 것처럼 눈속임으로 편을 갈라놓고 잇속을 채우는 하이에나 무리 속에서…… 참 바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지나는 길, 봉하마을 들렀다가 우연히 마주쳐 평상에서 당신과 막걸리 마시는 꿈을 꿉니다. 머지않은 시간이 흐른 뒤면, 내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건네겠지요. 왜 이제 왔냐고…… 그날을 기다립니다.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Billie Holiday의 ‘I'm A Fool to Want You’입니다.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70년대 후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