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무속과 괴담 사이 (44)] 알루에 나가(Alue Naga) 용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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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과 괴담 사이 (44)] 알루에 나가(Alue Naga) 용의 눈물

기사입력 2022.08.1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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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과 괴담 사이 도입.png


따빡뚜안.png
아쩨 북단의 알루에 나가와 남부 아쩨의 따빡뚜안

 


알루에(Alue)란 북부 수마트라 아쩨 방언으로 강의 지류나 늪을 말합니다. 나가(Naga)란 용(龍)을 뜻하므로 알루에 나가(Alue Naga)란 나가 ‘용의 늪’, ‘용의 습지’ 또는 ‘큰 뱀의 지류’ 등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수마트라 북단 반다아쩨에 실제 그런 지명을 가진 곳이 있습니다. 지난 편에 등장한 거인 뚜안따파와 용 부부가 살았던 남아쩨의 따빡뚜안으로부터 거리가 꽤 멀지만 이번 알루에 나가 전설에도 뚜안따파가 까메오로 출연합니다.


전에 설명한 것처럼 인도네시아 전설 속 용들은 서양의 날개 달린 사악한 드래곤이나 한국 또는 중국에서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뿔과 수염이 근사한 산신령급 용이 아니라 대개 큰 뱀을 뜻합니다. 그래서 여기 나오는 ‘녹색용’이라 부르는 생물도 거대한 뱀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그런 전제를 깔고 이제 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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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술탄 므라(Sultan Meurah)는 꾸타라자(Kuta Raja) 인근 마을 주민들이 오랫동안 불안에 떨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꾸따라자는 오늘날 반다 아쩨의 해안지역입니다. 도성으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어서 술탄 므라가 직접 방문해 그곳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라묭(Lamyong)산 산자락에 방목하던 가축들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지진과 산사태도 심심찮게 발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일은 선대 술탄, 즉 술탄 알람(Sultan Alam)이 승하하기 전부터도 있었는데 최근에 부쩍 심해졌다는 겁니다.


술탄은 궁에 돌아오자마자 친척이자 절친인 렝갈리(Renggali)를 불러들였습니다. 그는 라자 링에의 후계자 라자 링에 무데(Raja Linge Mude)의 동생이었어요. ‘링에(Linge)’는 지역 이름이니 라자 링에는 ‘링에 지방의 영주’라는 호칭입니다. ‘젊다’는 의미의 무데(Mude)가 붙은 후계자 장남은 당연히 ‘링에의 젊은 영주’라는 뜻이고요. 라자 링에는 술탄 알람의 동생이었으므로 라자 링에의 차남 렝갈리는 술탄 므라의 사촌이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전부터 라묭산이 좀 수상했어. 그곳 능선 자락이 언젠가부터 늪지대가 되어 항상 물이 차 있게 되었다는데 어디서 샘이라도 터진 걸까? 그렇다고 물이 흘러 넘쳐 강이나 호수가 될 정도는 아닌 모양이더군.”

술탄 므라의 말에 렝갈리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형님한테 들은 얘기인데 그 산 능선 모양이 어느 날 갑자기 바뀌었다고 해요. 옛날에 제 아버님이 실종되었을 때 형님이 천지로 찾으러 다녔는데 꾸타라자에 들렀을 때 그렇지 않아도 그 산이 수상쩍어 보이더랍니다. 자신을 부르는 것 같은 소리도 들었다는 거에요. 산이 말을 걸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요.” 

렝갈리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습니다.

“네가 가서 그 산능선을 좀 조사해 주겠니?”

“맡겨 주세요.”


렝갈리는 술탄에게 그렇게 대답한 후 즉시 라묭산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는 바다와 맞닿은 북쪽부터 남쪽 경사면까지를 둘러보면서 뭔가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가파른 경사를 타고 산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갑자기 발 밑에서 따뜻한 물이 솟아나오는 것을 느끼고 급히 몇 발자국 물러섰어요. 그러자 주변 늪지의 수위가 갑자기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깜짝 놀란 렝갈리가 급히 좀 더 높은 곳으로 움직이자 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라자 링에의 아들이여, 날 용서하시오!” 

깜짝 놀란 렝갈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습니다. 

“거기 누구요?” 

높은 곳으로 옮겼는데도 따뜻한 물이 벌써 허벅지까지 잠기도록 올라왔습니다. 

“난 녹색용이오. 당신 아버지의 친구.”

언덕은 이번에도 천둥 같은 목소리로, 그러나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깜짝 놀란 렝갈리가 자세히 보니 덤불과 수목들이 잔뜩 자라난 눈 앞의 언덕이 큰 뱀의 머리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길다란 산능성 자체가 그 뱀의 몸통이었던 것입니다.

“아, 내가 당신 머리를 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럼 내 아버지는 어디에 있소?”

그렇게 말하는 중에도 따뜻한 물이 계속 올라와 렝갈리의 엉덩이까지 잠겼습니다. 

“술탄 알람을 불러오시오. 그럼 내가 모두 설명하겠소.” 언덕이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렝갈리가 궁전으로 돌아온 것은 이미 날이 저문 후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일을 술탄에게 보고했습니다. 

“그 능선이 사실은 삼촌과 함께 사라진 그 녹색용이란 말이야? 그런데 그 용이 왜 부왕을 만나려는 거지? 부왕이 이미 승하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술탄 므라가 미간을 찌푸리며 궁금증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용이 산에 동화되어 몸 위에 풀과 나무가 자라날 정도로 그곳에 꼼짝 않고 수십 년 간 웅크리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곳 주민들이 불안해하던 지진과 산사태의 이유는 알 것 같았습니다. 용이 몸을 뒤척일 때마다 산이 흔들렸던 것입니다. 가축들이 없어진 것은 용이 자기 입 앞을 지나는 물소나 양들을 삼킨 것이고요.

“그런데 그곳에 물이 차오르는 이유가 뭐지?”

“그게……, 용이 울 때마다 물이 차오르는 걸 보면, 아마 용의 눈물인 것 같습니다.”

 


라자링에의 집.png
라자 링에의 집이라고 알려진 곳

 


두 사람은 다음날 아침 일찍 함께 궁전을 출발해 다시 라묭산에 다다랐습니다. 그러자 산 전체가 갑자기 부르르 떨었습니다. 

“왜 술탄 알람은 오지 않은 것이오?” 

용이 물었습니다. 

“난 술탄 므라, 부왕 술탄 알람의 아들이다. 부왕께서는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다. 녹색용! 그대는 어째서 이런 모습이 된 것인가? 우린 그대가 이미 그대의 땅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함께 길을 떠났던 라자 링에(Raja Linge)는 어디 있는가?” 


술탄 므라가 그렇게 묻자 용은 땅이 꺼지듯 깊은 탄식을 흘렸습니다. 용이 거대한 머리를 조금 들어올리자 산 전체가 요동치며 인근 산자락에 산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모두 내 탓입니다. 내가 그를 배신했어요. 그래서 이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뚜안따파가 술탄 알람에게 선물로 준 성스러운 흰 물소들을 내가 가로채 먹어 치우고 라자 링에도 내 손으로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 말에 렝갈리가 눈을 치켜 뜨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내 아버지 라자 링에는 그대의 절친이었다고 들었소. 왜 그를 죽인 것이오?” 렝갈리가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애써 갈무리하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다시피 난 술탄 알람을 섬겼습니다. 어느날 술탄 알람께서 나를 불러 특별한 영력이 깃든 성유물 검들을 그의 친구들에게 선물로 가져다주라 했습니다. 그래서 난 왕국 곳곳을 다니며 검을 전달했어요. 라자 링에와 뚜안따파(Tuan Tapa)에게 줄 두 자루의 검만 남았을 때 난 라자 링에를 먼저 찾아간 다음 뚜안따파를 제일 마지막으로 방문할 생각이었습니다. 어차피 뚜안따파가 있는 곳이 가장 멀었으니까요. 그런데 라자 링에에게 검을 전달할 때 마침 그도 아픈 부인을 위해 뚜안따파에게 약을 부탁하겠다며 동행을 요청했어요. 라자 링에가 나와 함께 길을 떠나게 된 건 그래서였죠. 우린 그렇게 먼 길을 함께 여행해 결국 뚜안따파가 명상을 하던 남쪽 동굴에 도달했습니다.”


뚜안따파는 전편의 에피소드에서 소개한 바 있는, 남아쩨 따빡뚜안(Tapaktuan) 지역 해변 암석 위에 거대한 발자국을 남긴 은둔 거인이자 명상으로 우주의 진리를 깨우친 도인입니다. 그는 나중에 아스라라노카 왕국 전 국왕의 편에 서서 용들과 대대적인 전투를 벌이지만 지금 이 사건은 그 일이 벌어지기 오래 전, 아직 인간과 용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던 시대의 일입니다.

 

초록뱀.png

 

 

“검을 받은 뚜안따파는 그 답례로 술탄 알람에게 전해달라며 성스러운 흰 물소 여섯 마리를 맡겼습니다. 크고 살이 잔뜩 오른 놈들이었어요. 함께 갔던 라자 링에는 그에게서 부인을 위한 약을 얻어 고마운 마음에 나를 도와 꾸따라자까지 흰 물소들을 함께 몰고 가주겠다고 자원했죠. 그래서 우린 라자 링에의 집을 먼저 들러 부인에게 약을 전한 후 술탄 알람의 도성을 향했습니다. 하지만 길을 가는 내내 난 살찐 흰 물소들을 보고 군침을 흘렸습니다. 그런 물소들은 원래 엄청나게 맛있거든요. 그래서 난 마침내 두 마리를 몰래 잡아먹고 말았어요. 물소가 없어져 난리가 나 전전긍긍하던 라자 링에에게 호랑이 왕인 꿀레(Kule)가 물어갔을 거라고 거짓말로 둘러댔는데 라자 링에는 정말로 호랑이 왕 꿀레의 산 속 본거지로 뛰어들어가 호랑이 떼를 모조리 베고 꿀레도 죽여 버렸습니다. 당시 라자 링에의 고강한 무예는 왕국에서 인간이나 용, 심지어 마물들까지 모두 통틀어 아무도 대적할 수 없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내내 렝갈리는 이를 악물었고 술탄 므라는 아무 말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녹색용은 말을 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다시 꾸따라자를 향해 가던 도중 쁘상안 강변에서 잠시 쉬었는데 앞서 먹었던 흰 물소의 환상적인 맛이 자꾸 떠올라 난 정말 참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다시 두 마리를 더 잡아먹었는데 물소가 없어진 것을 안 라자 링에가 격분하기에 난 또 악어들의 왕 부야(Buya)가 흰 물소들을 물고 갔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그러자 라자 링에가 곧바로 악어굴로 쳐들어가 부야를 죽여버렸죠. 그 과정에서 악어굴이 있던 호수 수면이 셀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악어들 시체로 가득 차버렸어요.”


라자 링에는 흰 물소들을 몰고 오는 과정에서 놀라운 무위를 보이며 그 일대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무서운 마물들을 속속 제거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악명을 떨치던 꿀레나 부야라도 감히 내 앞에서 물소들을 채어 갈 엄두를 낼 리 없었지만 라자 링에는 내 말에 한 점 의혹을 품지 않았습니다. 나를 신뢰해 마지않던 라자 링에에게 너무나 미안했고 한편으로는 호랑이굴과 악어굴 속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들어가, 달려드는 호랑이, 악어들을 수백 마리씩 물리치고 백년도 넘게 그 지역을 벌벌 떨게 하던 꿀레, 부야 같은 만만찮은 마물들을 단칼에 베어 버리는 그의 무예와 도력에 등골이 오싹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래 동안 도를 닦은 나조차 이성을 잃게 할 만큼 식욕을 일으키는 먹음직스러운 물소들을 맡긴 뚜안따파가 내심 야속하기까지 했습니다.”

“아, 꿀레의 호랑이굴과 부야의 악어굴이 사라진 게 삼촌이 한 일이었구나!” 술탄 므라도 처음 듣게 된 라자 링에의 무용담에 감탄했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녹색용은 이내 말을 이었습니다. 


“그런 후 마침내 꾸따라자의 관문인 이곳 라묭산에 도착하자 라자 링에는 도성에 들어가기 앞서 인근 강가에서 목욕재계하고 의관을 정제했어요. 난 그 사이 다시 찾아온 식욕을 참지 못하고 나머지 흰 물소 두 마리를 마저 먹어치웠어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어떤 변명도 둘러댈 수 없었습니다. 의관을 정제하고 돌아오던 라자 링에에게 내가 흰 물소들을 삼키는 장면을 들키고 만 겁니다. 라자 링에는 내가 그동안 거짓말했음을 알고 불같이 화를 냈고 결국 우리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어요. 그런데 여러 번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머뭇거리며 차마 날 죽이지 못했고 오히려 내가 그 기회를 틈타 그를 먼저 죽이고 말았어요.” 

용은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날 벌해 주세요. 죽음으로 죄를 씻겠습니다.”.


술탄 므라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왜 여기 붙박혀 있지?”

“라자 링에가 죽기 직전 찌른 칼이 급소에 박혀 온몸이 마비되었기 때문입니다. 간신히 라자 링에를 죽이고 나서 나도 정신을 잃었는데 다시 깨어났을 땐 겨우 눈만 꿈뻑거릴 수 있을 뿐 사지를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 조금 뒤척거릴 수 있게 된 것도 겨우 얼마 전의 일입니다. 오랫동안 후회하며 눈물만 흘리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습니다. 그나마 목숨을 부지한 것은 라자 링에가 최후의 순간까지도 내게 아량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후 수십 년 동안 여기 이렇게 붙박힌 채 날 죽일 자격을 가진 용사가 와주길 기다렸습니다. 여긴 내 친구 라자 링에가 그의 생명을 다한 곳. 이제 라자 링에의 아들과 술탄 알람의 아들이 왔으니 여기서 내 목숨을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술탄 므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턱수염을 문지르며 한동안 생각하더니 렝갈리에게 고개를 돌렸습니다.

“렝갈리, 라자 링에 삼촌은 네 아버지이니 녹색용의 말대로 넌 그를 벌할 권리가 있어. 그대에게 처형의 결정을 맡기지.” 

하지만 렝갈리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내 아버님도 저 녹색용을 죽이려 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아버님의 유지를 받들어야 할 내가 그를 죽일 수 없습니다. 나는 오히려 그를 자유롭게 놓아주겠습니다. 아버지도 그러길 원하실 겁니다.” 

녹색용은 극구 자신이 죽어 마땅하다며 처형을 요구했지만 술탄 므라 역시 그를 보내자는 사촌의 말에 동의했습니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어렵사리 용의 거대한 몸을 조금 들어 올리자 그의 몸 아래쪽 깊은 곳에 라자 링에의 검이 박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렝갈리가 용의 배 밑으로 기어들어가 간신히 검을 뽑았지만 녹색용은 다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고서도 여전히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술탄 므라가 말했습니다. 

“그대는 이미 오랫동안 라자 링에로부터 벌을 받은 셈이고 그의 아들도 용서했으니 이제 누구도 그대를 더 이상 책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삼촌을 죽인 자를 내 왕국에 둘 수 없고 두 번 다시 그대 소식도 듣고 싶지 않으니 이제 그대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그제서야 용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서서히 몸을 움직여 바다로 향했습니다. 용이 아까 술탄 므라와 렝갈리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부터 흘린 눈물로 산기슭까지 물이 차올라 있었습니다. 용은 자기 눈물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였고 그가 진행한 흔적을 따라 물길이 만들어지며 강이 생겼습니다. 꾸따라자 인근에 만들어진 이 물길을 훗날 사람들이 알루에 나가(Alue Naga), 즉 ‘용의 지류’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곳 습지에는 당시 녹색용이 흘린 눈물의 농도가 아직도 진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녹색용이 돌아간 ‘그들의 나라’는 과연 어디일까요? 뚜안따파와 싸움을 벌였던 그 두 마리의 용이 아기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쫓겨났던 바로 ‘그곳’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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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루에 나가 해변.png
알루에 나가의 해변

 


눈물 흘리는 용의 전설은 그리 흔치 않습니다.


술탄 알람의 검을 받고 녹색용에게 흰 물소들을 답례로 전달해 달라 부탁할 만큼 이 전설 속의 뚜안따파는 꽤 사교적이고 용에게도 호의적입니다. 그래서 그후 어떤 시점에 명상을 방해받았다는 이유로 따빡뚜안 앞바다 상공으로 날아올라 용들이 키운 아스라라노카 왕국의 공주 뿌뜨리 나가를 두고 용들과 막무가내로 싸워 한 마리를 죽이고 다른 한 마리는 쫓아낸 그의 행동이 더욱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삼라만상의 진리를 꿰뚫었다는 뚜안따파가 녹색용의 식탐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는데 그가 입맛을 다실 게 뻔한 흰색 물소 여섯 마리를 술탄 알람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 시점에 이미 라자 링에의 칼로 녹색용을 차도살인 하려는 고도의 계산이 숨어있었던 건 아닐까요? 그렇다면 뚜안따파는 오래 전부터 용들을 혐오했던 것이니 어쩌면 그게 훗날 따빡뚜안의 뿌뜨리 나가 전설로 이어지게 되는 복선의 시작일 수도 있습니다.


아쩨의 전설 속 용들은 다른 지역 전설과 민화에 등장하는 용들에 비해 사뭇 살갑고 호의적이지만 결국 인간들에게 등을 돌리고 마는 존재로 묘사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끝) 

 

♣배동선 작가는 인도네시아의 동포 향토작가. 현지 역사, 문화에 주목하며 저서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와 번역서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공동번역서 <막스 하벨라르>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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