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이 숲에 들어
박남준
강에 나가 저녁을 기다렸네
푸른빛이 눈부신 은빛이
전율처럼 노을을 펼쳐 파문의 수를 놓고 있네
이럴 때면 눈물이라도 찍어 내고 싶은데
황금빛 능라의 베틀을 걸어
수만 수천 굽이 노래하는 물결들
단숨에 물들이는 시간 말이야
누군가는 저 강에 들어
생의 마침표를 찍고 싶다 하였네
사람도 숲에 들면 고요해지듯이
내리꽂고 솟구치며 세상의 낮은 곳으로 노래하다
분노하여 범람하고 길이 막혀 신음하던 강물도
반짝이는 모래톱과 화엄의 바다 가까이 가닿을 거야
거기 갈대의 숲
안식에 든 숨결들을 생각하며
자장자장 찰랑이다 잦아들겠지
저녁 강은 바다에 이를 것이네
숲에 들 수 있겠지 그곳에서는
비상하던 새의 허공도
낡고 고단했을 발자국도
적막에 안길 것이네
걷는사람 시인선 41 『어린 왕자로부터 새드 무비』 걷는사람, 2021
“강에 나가 저녁을 기다렸네/푸른빛이 눈부신 은빛이/전율처럼 노을을 펼쳐 파문의 수를 놓고 있네/이럴 때면 눈물이라도 찍어 내고 싶은데/황금빛 능라의 베틀을 걸어/수만 수천 굽이 노래하는 물결들/단숨에 물들이는 시간 말이야//……”
태풍이 지나가고 오랜만에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입니다. 추석은 눈앞에 와있는데, 태풍 피해를 본 분들은 망연자실하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이번 태풍도 바닷물의 온도가 3도 정도 높은 것이 태풍의 위력을 키우게 된 원인이라고 합니다. 지구 온난화, 인간의 무분별한 탐욕이 초래한 결과이자 자업자득이 아닐까 합니다.
논과 밭에서 고된 시간을 보낸 끝에 거둬들인 수확물을 놓고 보름달 아래 온 가족이 모여 하늘(자연)과 조상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즐겼던 한가위. 이제부터라도 땀과 노력의 결과를 귀하게 여기던, 한가위를 맞는 마음가짐을 되새겨 볼 때입니다.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Eleni Karaindrou의 ‘Desire Under the Elms’입니다.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70년대 후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