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무속과 괴담 사이(46)] 사람 제물을 공양받는 괴물 독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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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과 괴담 사이(46)] 사람 제물을 공양받는 괴물 독수리

기사입력 2022.09.15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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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괴조.jpg
괴조

 


남부 술라웨시 왕국이 한 흑마술사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흑마술사의 악독한 저주로 왕국의 모든 작물들이 말라 죽어 왕국은 몇 년째 기아에 처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흑마술사는 저주를 풀어주는 대가로 왕국의 일곱 공주 중 한 명을 자신과 혼인시켜 자신을 왕국의 부마로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국왕이 이를 거부하자 흑마술사는 더욱 참혹한 저주를 더 했습니다. 그것은 괴물 독수리들을 불러들여 왕국의 어린이들을 잡아가 뜯어먹게 만든 것입니다. 수많은 어린이가 희생되는  것을 보자 일곱 공주가 나섰습니다. 갑옷을 갖춰 입은 그들 중 가장 나이 어린 네 명이 들판에 나서 병사들과 함께 칼과 활로 괴물 독수리와 맞섰고 나머지 큰 공주 세 명은 샛길을 타고 산속으로 들어가 흑마술사의 처소를 습격했습니다.


습격을 예상하지 못했던 흑마술사는 공주들의 칼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 최후의 순간에 흑마술사는 마지막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마지막 괴물 독수리가 너희 공주들이 일곱 명이 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야!”


흑마술사가 산속 그의 처소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 들판에서는 네 명의 공주들은 승기를 잡으며 공중에서 달려들던 괴물 독수리들을 활과 창으로 거의 다 떨궜지만, 그 중 한 마리가 그들 중 가장 장성한 공주 즉 넷째 공주를 날카로운 발톱으로 틀어쥐고 단숨에 머리를 쪼아 부스러뜨리며 공중으로 날아올랐습니다.


“오늘이 또다시 찾아올 때마다 너의 공주들이 일곱이 되는 일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야.” 그것은 왕국의 역사상 대참사로 남게 될 그 사건의 흑마술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습니다. 들판의 공주들은 넷째 공주의 처참한 죽음을 목도하고 멀어져 가는 괴물 독수리의 모습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했습니다.


하필 그날은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였습니다. 흑마술사의 반란을 겪은 왕국은 결국 그 모든 혼란에서 회복했지만 그로부터 왕자가 몹시 귀해져 근근이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흑마술사의 저주를 기억했다면 공주의 출산을 자제해야 했지만, 왕자를 낳으려고 계속 아기를 낳다 보면 어느새 공주들은 일곱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그 해 하지가 되면 괴물 독수리 한 마리가 왕국에 날아들었습니다. 그 옛날 넷째 공주를 뜯어먹은 바로 그 괴물 독수리였습니다.

몇 해 후 또다시 왕자를 낳으려다 공주가 태어나며 어김없이 또다시 괴물 독수리가 그 해 하지에 찾아와 또 다른 공주의 희생을 요구했습니다.


공주를 내놓지 않으며 괴물 독수리는 하지 기간 내내 때를 가리지 않고 날아들어 왕국 백성들을 공격하고 어린아이들을 잡아가 먹이로 삼았습니다. 사람보다 몇 배나 큰 독수리는 커다란 부리와 갈고리 같은 발톱 말고도 칼날 같은 깃털에 뒤덮여 있어 창칼이 좀처럼 들지 않았고 독수리를 잡으려는 용사들은 오히려 독수리가 날갯짓을 할 때 그 깃털에 맞아 사지가 잘리거나 목이 떨어지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공주들 숫자가 줄어들면 거짓말처럼 재앙이 끝났고 독수리는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 재앙은 예외 없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왕실은 공주가 일곱 명이 되지 않도록 조심했지만, 왕자가 귀한 왕실에서는 대를 잇기 위해 모험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구 공주들 숫자가 많아지면서 괴물 독수리는 하지 때마다 찾아와 왕국 공주를 한 명씩 뜯어먹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일곱 번째 공주를 갖게 된 국왕은 그 공주가 태어나던 날부터 초조하고 무거운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왕자가 귀하다고 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공주들이 사랑스럽지 않을 리 없었습니다. 그 해 하지가 다가오면서 어떻게 하면 일곱 공주를 모두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지 그는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골몰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흑마술사와 전쟁을 벌인 지도 벌써 200년. 이젠 괴물 독수리도 예전 같지 않을 거야. 독수리 잡기 대회를 열어보면 어떨까? 내 백성 중 높은 무술 실력과 도력으로 저 괴물 독수리를 물리칠 사람이 한 명쯤은 있지 않을까? 독수리도 이젠 늙어 죽을 날이 가까워지지 않았을까?”

왕은 모든 백성을 왕궁 앞에 모이게 했습니다.

“백성들은 듣거라. 괴물 독수리를 잡는 대회를 열겠노라. 누구든 저 독수리를 잡으면 남자는 공주와 혼인시켜 내 사위로 삼을 것이고 여자라면 왕실의 가족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는 이렇게 백성들에게 공표했습니다.

“전하! 그 대회는 언제 하는 겁니까?”

백성 중 한 사람이 들뜬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괴물 독수리가 찾아올 하지는 이제 일주일 남았다. 그러니 독수리잡이 대회에 참가하려는 자들은 지금부터 수련에 정진해 힘과 무술을 가다듬도록 하라!”


그 말을 들은 모든 남녀 백성들은 이 회에 입신양명하여 왕의 사위가 되거나 공주 중 한 명이 되기 위해 각자 창고 속에 모셔서 두었던 비장의 무기들을 꺼내 들고 괴물 독수리가 오기 전까지 무술을 갈고닦았습니다


한편 왕실 경비병들은 궁전에서 좀 떨어진 곳에 바루가(Baruga)라는 임시 오두막을 만들었습니다. 그 바루가는 독수리에게 바쳐질 공주가 머물 곳입니다. 즉 공주가 죽게 될 곳이었죠. 하지만 이번만은 독수리를 유인할 함정이 될 터였습니다. 그 바루가 안에는 여자아이를 닮은 인형, 과자 등 먹을 것, 소꼬(sokko-찹쌀로 만든 밥), 독수리가 먹을 음료를 담은 항아리 등이 준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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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루가(baruga)

 

 

그렇게 모두 준비로 분주한 사이 일주일이 금방 지나고 독수리가 날아들 하지가 되었습니다. 공주 중 미끼가 되어 줄 넷째 공주가 경비원들에 의해 바루가로 안내되었고 많은 백성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그토록 많은 준비를 했지만, 괴물 독수리를 잡지 못할 경우 결국 독수리 밥이 되고 말 넷째 공주의 운명을 사람들은 걱정했습니다.


“날 용서하거라, 공주야. 이 나라가 이런 참혹한 저주를 아직 떨치지 못한 것이 한스럽구나. 하지만 이번엔 우리 병사들과 백성 중 저 괴물 독수리를 물리칠 용사가 반드시 나올 것이다. 마음 굳게 먹거라.”

국왕은 이렇게 말하며 공주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 주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장담하면서도 국왕 역시 같은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선대로부터 지금까지 그 누구도 괴물 독수리를 대적해 물리친 이가 없었는데 이번엔 그 독수리를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해가 중천에 떠올라 독수리가 올 시간이 가까워지자 왕과 가족들은 먼저 궁으로 돌아갔고 넷째 공주 혼자 바루가에 남았습니다. 경비병들도 독수리 잡기 대회에 참가한 백성들과 함께 숲속에 몸을 숨기고 독수리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칼과 창 같은 날카로운 병장기나 죽창을 들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독무를 피워 올릴 장비와 독수리의 목을 걸 밧줄을 가져온 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바루가 앞을 아무 생각 없이 지나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루가 안에 앉은 아름다운 처녀를 보고 냉큼 오두막에 올라왔습니다.

“예쁜 아가씨! 왜 여기서 혼자 슬픈 얼굴을 하고 있어요?”

그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는데 이미 일주일째 왕국을 발칵 뒤집어 놓고 있는 독수리 잡기 대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으로 보아 이 나라 사람이 아닌 것이 분명했습니다.

“난 죽음을 기다리고 있어요.”

공주는 침울한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뭐라고요?”

청년은 깜짝 놀라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공주는 한숨을 내쉬더니 왕국의 관례와 괴물 독수리의 저주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만약 그 괴물 독수리를 해치울 용사가 나타난다면 난 기꺼이 그분의 신부가 될 거예요.”

“공주님을 몰라뵈었네요. 죄송합니다. 그럼 제가 오늘 공주님 곁을 지켜 드릴게요.”

청년의 말에 공주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지 마세요. 내 곁에 있다가는 함께 독수리 밥이 될 거예요.”

“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공주님. 제가 새를 좀 다룰 줄 알아요.”


그들은 그렇게 함께 독수리를 기다렸습니다. 건장한 청년이 곁에 있어 준다고 하니 공주로서도 적잖이 마음의 의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도 독수리가 나타나지 않자 졸기 시작한 청년은 아예 공주의 발밑에 누워 코를 골기 시작했습니다. 공주는 이 배짱 좋은 청년에게 관심이 생겼고 그가 정말 자신을 구해줄 수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 하늘로 질 때 하늘에서 큰 소리가 나며 광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괴물 독수리가 나타난 것입니다. 거대한 독수리가 상공을 빙빙 돌더니 곧바로 바루가를 향해 돌진해 내려왔습니다. 공주는 자고 있던 청년을 급히 깨웠습니다.

“일어나세요. 독수리가 왔어요.”

공주의 떨리는 목소리에 잠이 깬 청년은 곧바로 품에서 성유물 무기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에겐 자신만만해할 믿을 구석이 있었던 겁니다. 그 무기는 스스로 목표를 찾아가 찌르는 외날 단검 바딕(badik)과 저절로 목표물을 옭아매는 마법의 밧줄이었습니다.


청년이 앞으로 나서고 공주는 그의 등 뒤에 숨어 눈을 꼭 감았습니다. 바루가에 뛰어든 괴물 독수리는 먼저 거기 준비되어 있던 과자와 소꼬 찹쌀떡을 먹고 항아리의 물부터 마셨습니다. 그런 다음 이제 공주를 뜯어먹기 위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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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badik) 외날 단검과 닷줄

 

 

숲에 숨어 독수리를 기다리던 다른 사람들은 독수리의 엄청난 크기와 속도에 압도되어 감히 덤벼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청년이 먼저 손을 썼습니다. 그는 주문을 외워 밧줄이 독수리를 옭아매도록 했습니다. 그의 품에서 번개같이 튀어 나간 밧줄이 독수리의 몸통을 휘감아 조이기 시작하자 독수리는 버둥거리며 날개를 움직여 줄을 풀려고 했습니다. 그 엄청난 힘에 줄이 느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주인님! 더 이상 독수리를 묶어 둘 수 없어요. 어서 도와주세요.”

밧줄이 소리를 내며 청년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청년은 이번엔 바딕 단검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바딕아! 저 독수리를 찔러!”

쏜살같이 날아간 바딕 단검이 독수리를 찌르기 시작했습니다. 독수리가 세차게 움직이며 날아드는 단검을 부리로 받아 치려 했지만 단검은 강철 같은 깃털을 피해 독수리의 몸통을 여지없이 찌르고 또 찔렀습니다. 마침내 독수리가 쓰러지며 바루가 바깥으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이 모든 일이 공주가 눈을 감고 있는 사이에 벌어졌습니다. 공주는 청년이 누군가와 얘기하거나 소리치는 것을 들었지만 아까까지만 해도 주변엔 아무도 없었으므로 청년이 누구와 얘기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주변에 숨어있던 백성들이 그제야 뛰어나와 독수리가 죽은 것을 보고 혹시나 몰라 가지고 온 병장기들로 독수리를 때리고 찔러 도륙을 냈습니다. 그런 다음 그 거대한 독수리를 순식간에 제압한 청년의 실력에 모두 혀를 내두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독수리의 몸통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 나누었습니다.


한편 독수리를 해치운 청년은 공주에게 인사를 하고 가던 길을 재촉하려 했습니다. 공주를 괴물 독수리로부터 구하는 것은 원래 그의 예정에 없었던 것이어서 이미 약속에 늦었던 것입니다. 공주는 청년에게 감사하며 그 증표로 자신의 슬렌당을 벗어 주었습니다.

“목숨을 구해주어 감사합니다. 감사의 표시로 이 슬렌당을 드릴게요.”

청년은 공주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습니다. 그 옛날 흑마술사가 남긴 마지막 저주를 완전히 없애준 그 청년에게 공주가 왕궁으로 함께 가자고 청했지만, 그는 더 이상 다른 곳의 선약을 늦출 수 없다며 출발을 서둘렀습니다. 그의 뒷모습이 길 저편으로 완전히 사리진 후에야 공주는 자신이 그 청년의 이름도 묻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공주는 독수리 잡이 대회에 참가했던 백성들과 함께 궁전으로 돌아왔습니다. 청년이 사라지자 독수리의 몸통을 잘라 나누어 가지고 온 백성들은 마치 자신들이 독수리를 때려잡은 것처럼 무용담을 부풀리며 심지어 서로 공을 다투어 말다툼까지 벌였습니다. 국왕은 독수리의 나머지 몸통도 마저 잘라 대회에 참가한 모든 백성들에게 한 조각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집에 독수리 몸통 조각을 박제해 전시해 놓고 부풀린 무용담을 후손들에게 자랑하게 될 터였습니다.


어쨌든 괴물 독수리를 물리쳤으므로 왕국은 축제 분위기에 빠졌습니다. 왕은 자기가 공을 세웠다고 주장하는 백성 중 정말 독수리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공주에게 물었습니다.

“아버님, 독수리를 죽인 청년은 낯선 외지인이었어요. 행색이 우리나라 사람은 아닌 것 같았어요.”

“그래? 그럼 그 청년이 어떻게 독수리를 잡았는지는 보았느냐?”

국왕은 더욱 호기심이 생겨 구체적으로 물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넷째 공주가 그때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는 겁니다.

“죄송해요. 무서워서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잘 보지 못했어요. 단지 그 청년이 말하는 소리만 들었을 뿐이에요.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저 독수리를 묶어!’, ‘이제 독수리를 찔러!’ 눈을 떠보니 독수리는 이미 죽어 있었어요.”

“그렇구나. 혹시 그 청년을 다시 만난다면 알아볼 수 있겠느냐?”

“네, 아버님. 그 청년의 얼굴을 기억해요. 그리고 그가 떠날 때 내 슬렌당을 주었으니 그것으로도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

그제야 왕은 독수리를 잡은 사람이 자기 백성 중 한 명이 아니라 다른 나라 청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왕궁 앞에 모인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충성스러운 백성들이여! 오늘 너희들의 수고가 컸다. 공주에게 들어보니 오늘 독수리를 죽인 용사는 외국 청년이라고 한다. 그래서 오늘 우린 비록 독수리를 잡았지만, 그 청년이 갈 길을 갔다고 하니 이 자리엔 당장 내 딸을 데려갈 용사가 없겠구나. 하지만 모두 나서 다 함께 힘을 합쳐 왕국의 저주를 씻었으니 용감한 백성들을 위해 큰 잔치를 베풀겠다. 수고했다!”


그로부터 성대한 잔치가 열려 왕국은 크게 흥청거렸습니다. 다양한 음식과 음료들이 백성들에게 제공되었고 연극공연도 열렸습니다. 가장 큰 유흥거리는 그다음 날에 열린 세빡따끄로(sepak takraw) 경기였습니다. 모든 백성이 경기에 열광했고 왕과 일곱 공주도 궁전 베란다에서 경기장을 내려다보며 응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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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동남아에서 유행하는 세빡따끄로(Speak Takraw) 경기

 


그런데 경기가 한창 진행되던 중 또 다른 도전자 팀이 경기장에 들어왔습니다. 그 팀의 한 남자가 대단한 기량을 선보이며 상대를 압도했는데 그의 팔목에 묶은 슬렌당이 춤추듯 나부꼈습니다.


“아버님, 저 사람이에요. 저 청년이 독수리를 잡은 사람이에요.”

예의 넷째 공주가 그 청년을 가리키며 소리쳤습니다. 그의 팔목에서 나부끼는 슬렌당이 바로 자신이 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왕은 놀라운 경기 기량을 보이는 젊은 청년이 사실은 괴물 독수리를 잡은 높은 도력의 인물이란 사실에 크게 감탄했습니다. 경기를 모두 마치고 승리자가 되어 경기장에서 나가는 청년을 왕이 불러들였습니다.

“폐하! 저한테 볼일이 있으신가요?” 청년이 물었습니다.

“그대가 독수리를 잡은 그 청년인가?”

왕이 곧바로 직진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폐하.” 청년도 굳이 부인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답했습니다.

“어떻게 독수리를 잡은 것인가?”

왕의 질문에 청년은 품속에서 두 개의 성유물을 꺼내 앞에 놓았습니다.

“폐하, 이것들은 무엇이든 찌를 수 있는 바딕 외날 단검과 무엇이든 묶을 수 있는 마법의 밧줄입니다. 저는 이것들을 이용해 독수리를 잡았습니다.”


청년의 설명을 들은 왕과 백성들은 그 청년이 정말 그 독수리를 잡은 영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은 그 청년과 독수리로부터 구원받은 넷째 공주를 혼인시켰고 그들은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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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잡이 아트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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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도 아닌데 말하는 검, 말하는 밧줄을 사용해 검술을 떨치는 이야기가 술라웨시에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민화들 속에서는 주로 용들과 호랑이들이 재앙을 몰고 오지만 이번 에피소드같이 괴물 독수리가 그 재앙의 중심에 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엔 도대체 어느 정도 위력과 크기의 독수리가 있었길래 용과 호랑이를 대신해 등장했는지 호기심을 누를 길이 없습니다. (끝)



 

♣배동선 작가는 인도네시아의 동포 향토작가. 현지 역사, 문화에 주목하며 저서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와 번역서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공동번역서 <막스 하벨라르>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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