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무속과 괴담 사이(49)] 새우인간 이라우랑(I Laurang)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무속과 괴담 사이(49)] 새우인간 이라우랑(I Laurang)

기사입력 2022.10.27 17:0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1무속.png


슈림프맨.jpg
슈림프맨

 

 옛날 옛적 남부 술라웨시의 한 마을에 나이 많은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이미 다들 짐작하셨다시피 다른 동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많은 부부들처럼 이들도 아이가 없어 적적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남부 술라웨시는 동인도네시아로 나가는 관문 마카사르(Makassar)가 있는 곳입니다.


 어느 날 밤 그들은 신에게 이런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아기를 허락해 주세요. 새우처럼 생긴 아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신들은 이런 기도만 귀신같이 들어주는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부인이 곧 임신하여 아기를 출산했는데 새우를 꼭 닮은 남자 아기를 낳은 겁니다. 

 그런데 그게 살아가는 데에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었어요. 아이는 뭍에서도 물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수륙양용 전천후 기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기에게 이름이라도 그럴듯하게 붙여주면 될 것을 부부는 아이에게 이라우랑(I Laurang)이란 담백한 이름을 주었습니다. 곧이곧대로 새우인간이란 뜻이었는데 그나마 ‘슈림프맨’이라고 좀 폼나게 지어줬다면 어땠을까요?


 그러고서도 부인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여보. 우리 아이는 왜 새우 모습으로 태어났을까요?”

 “그건 당연한 일 아니겠소? 우리가 전에 새우를 닮은 애라도 낳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소? 신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신 거지.” 

 “아, 그래요. 그렇게 기도한 것 기억해요.” 

 남편의 말에 아내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부부는 자신들이 기원한 바의 결과를 흔쾌히 받아들일 줄 아는 쿨한 성격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부부는 커다란 물통을 준비해 아이가 틈틈이 물속에서 놀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 정성을 다해 키웠습니다. 부부가 준비한 물통이 비좁아질 정도로 몸이 커진 후엔 이라우랑도 다른 사람들처럼 따로 물에 들어가지 않고 뭍에서만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온몸, 특히 다리가 새우처럼 각질 피부에 덮여 있어 제대로 걸어 다닐 수 없었어요. 물론, 이후에도 물속에 들어가면 물고기처럼 빠르고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었습니다. 


 이라우랑은 그래서 거의 집안에서 지내면서 온갖 책들을 구해 읽었는데 그중에는 철학과 도술에 대한 것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이라우랑의 집을 사랑방처럼 찾아와 떠드는 온갖 수다를 즐겨 들었는데 그 덕에 동네나 이웃 마을, 심지어 왕궁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두 꿰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줌마들로부터 국왕의 일곱 공주들이 모두 선녀처럼 아름답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 후 그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공주들을 이미 머릿속에 그리면서 언젠가는 그들 중 한 명과 혼인하겠다는 행복한 꿈을 꾸었습니다.

“공주들을 만나게 되면 정말 즐겁겠지만 이런 모습의 날 좋아하긴 할까? 하지만 뭐, 미리부터 포기할 필요는 없잖아!” 

이라우랑 역시 부모를 닮아 한없이 쿨한 성격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용기를 내서 부모에게 자기 뜻을 밝혔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저도 이제 다 컸으니 아내를 얻어 가정을 꾸리고 싶습니다.”

 “마음에 둔 처자라도 있느냐?”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저는 왕궁의 공주님과 혼인하고 싶어요.”

 “정말 야무진 꿈을 꾸는구나.” 

 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어머니도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어요

 “네 마음은 알겠지만, 국왕께서 너처럼 특별한 모습을 가진 사위를 원하시겠니?”

 “뭐, 그러시겠죠. 하지만 국왕께는 예쁜 공주가 일곱 명이나 있다고 하잖아요? 혹시 그중 한 명 정도는 저와 혼인하고 싶어 할 공주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이라우랑은 역시 무한긍정의 아이콘이었습니다.


 망설이던 부부는 결국 아들의 고집을 이기지 못해 왕궁으로 가 현명하기로 소문난 국왕을 알현하고 이라우랑의 청혼을 넣었습니다. 

 “폐하, 저희가 비록 미천하고 가난하지만, 감히 제 아들을 위해 공주 중 한 분에게 청혼을 넣고자 합니다.” 

 아버지는 국왕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청혼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 말을 들은 국왕은 빙긋이 웃으며 이제 흰색이 점점 더 많아지는 턱수염을 쓰다듬었습니다. 새우의 모습으로 태어난 이라우랑의 이야기를 국왕도 모를 리 없었는데 그 이라우랑이 왕실에 청혼을 해올 줄을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는 공손하고 솔직한 신민의 청혼을 무조건 거절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공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심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거절하더라도 그것은 공주들의 선택이어야 했죠.

 “좋다. 내가 일곱 공주 중 이라우랑의 청혼에 응할 사람이 있는지 물어 보겠노라.” 

 국왕은 재상을 시켜 일곱 공주를 즉시 불러 모았습니다. 장녀는 다른 나라의 왕자들로부터도 청혼이 들어오는데 가난한 이라우랑의 청혼을 받을 이유가 없다며 단칼에 거절했고 나머지 공주들도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죠. 하지만 막내 공주만은 조금 다른 대답을 했습니다. 

 “아버님, 저는 이 청혼을 받아들여 이라우랑과 혼인하고 싶습니다.”

 “그래, 막내야. 내가 너의 혼인을 축복하마. 사흘 후 혼인연회를 열겠다.” 

 국왕은 딸의 의사를 존중해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막내 공주는 이라우랑의 어떤 점을 본 것일까요? 아무 생각 없었던 건 아닐까요? 

 사실 막내공주는 이라우랑에 대해 조금 더 들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작은 마을 가난한 집에 사는 새우 소년 이라우랑이 구김 없는 성격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며 많은 지식과 재주로 마을과 이웃을 돕고 마을 사람들이 책을 거의 다 빌려 읽으며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한다는 것을 말이죠. 그런 환경 속에서 크고 밝은 마음을 품고 사는 소년의 이야기에 한참 마음이 팔려있던 차에 공교롭게도 때맞춰 이라우랑의 청혼이 들어왔던 것입니다. 운이 좋았던 것일까요? 아니면 장난기 많은 신이 오래전부터 준비해 놓은 또 다른 안배였을까요?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이라우랑의 부모는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왕궁에서 물러 나와 이라우랑에게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라우랑은 크게 기뻐하더니 탈피를 시작했습니다. 각질로 된 껍질을 벗기 시작한 것입니다. 얼마 후 새우 껍질에서 나온 이라우랑은 잘 생기고 늠름한 청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한 번도 자르지 않은 긴 머리칼을 적당한 길이로 자르자 그의 미모가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이라우랑이 혼인 준비를 위해 어머니와 함께 시장을 다니는 동안 마주치는 사람들은 그를 보고 서로 수군거렸고 그가 이라우랑임을 알고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왕궁에서 결혼식이 진행될 때도 모든 신료는 물론 장녀를 비롯한 여섯 공주가 모두 이라우랑의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새우를 닮은 청년 이라우랑의 이야기를 왕궁의 공주들도 몰랐을 리 없습니다. 공주들이 여러 고상한 이유를 대며 청혼을 거절한 것도 사실은 끔찍한 몰골의 새우인간을 혐오했기 때문인데 그가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미남이 되어 나타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이라우랑은 왕실에 들어가 의외로 치밀한 행정 능력을 발휘해 왕국의 대소사를 처리하는 데에 수완을 보였고 얼마간의 주술과 도술에도 일가견을 보여 국왕의 신임을 얻어냈습니다. 


 이라우랑과 결혼해 행복하게 살게 된 막내 공주는 언니들의 부러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부러움은 곧 질투가 되었고 급기야 막내에게서 이라우랑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는 집착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막내 공주는 언니들의 선의와 우애를 맹목적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눈치챈 이라우랑은 내심 아내의 언니 공주들을 경계하며 아내 곁을 지켰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라우랑이 부마의 자격으로 왕의 명령을 받아 통상사절단을 이끌고 오랫동안 왕국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아내를 혼자 남겨둬야 했던 그는 당부의 말을 남겼습니다. 

“여보, 내가 없는 동안 언니들이 당신을 해치려 할지 모르니 몸조심 하시오. 내가 없는 동안, 당신이 어디에 가든 이 빈랑 열매(pinang)와 달걀을 늘 가지고 다니세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당신 말씀을 꼭 명심할게요.” 

막내 공주도 이라우랑의 손을 맞잡으며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빈랑 열매와 달걀을 내민 것일까요?


빈랑나무와 그 열매.jpg
빈랑 나무와 빈랑 열매

 

 이라우랑이 사절로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섯 언니들이 해변에 그네를 타러 가지고 막내 공주를 불러냈습니다. 막내 공주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 초대에 응했습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해변이 내려다 보이는 절벽 위에서 차례로 그네를 타다가 이제 막내 공주의 차례가 되자 언니들이 모두 달려들어 그네를 세게 밀기 시작했습니다. 

 “언니들! 왜 그러세요? 어지러워요. 멈춰요!” 

 막내공주가 겁에 질려 그렇게 소리질렀지만, 언니들은 더욱더 세게 그네를 밀어 결국 벼랑 밖으로 튕겨 나간 막내 공주는 곧바로 바다에 떨어져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바닷가 그네 타기.jpg
바닷가 그네타기

 

 여섯 언니는 막내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왕궁으로 돌아가서는 짐짓 눈물을 흘리는 연기를 하며 막내 공주가 해변에서 물놀이하다가 상어에게 잡아먹혔다고 국왕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라우랑의 아내가 물고기밥에 되었다는 소문이 곧 왕국 전체에 퍼졌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물에 빠진 막내 공주는 신의 도움을 받아 바다 밑바닥까지 가라앉고서도 죽지 않았습니다. 신기하게도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새우인간 이라우랑과 혼인하겠다고 마음먹던 그 순간 그녀를 대견하게 여긴 신이 공주에게 허락한 능력이었습니다. 참 뜬금없고 장난스럽죠? 공주는 남편이 사절로 떠나면서 맡긴 빈랑열매를 바다 밑바닥에 심고 달걀을 깨뜨렸습니다. 그러자 깨뜨린 달걀껍데기가 점점 커지더니 마치 소라 집처럼 막내 공주가 들어가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나자 공주가 바다 밑바닥에 심은 빈랑 열매에 싹이 나고 자라나 그 가지와 잎사귀가 수면 위로 올라왔고 달걀 껍데기 속에서 보호받던 막내 공주는 한 마리 암탉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렇게 바다 위 빈랑나무 가지 위에 앉아 배들이 지나갈 때마다 그 암탉은 닭 우는 소리를 냈는데 그 소리가 이렇게 들렸습니다. 

 “꼭, 꼭꼬꼬꼭, 내 남편 이라우랑은 어디 있나요? 꼭꼭! 남편이 탄 배 이름은 ‘흰 꽃’이랍니다!” 

 지나는 배에 탄 어부와 선원들은 그 모습을 기이하게 여겼습니다. 


 어느 날 또 다른 배가 그 닭이 있는 바다 위 빈랑나무 가지 근처를 지나는데 이번에도 그 암탉이 다가와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꼭꼬꼬꼭, 내 남편 이라우랑은 어디 있나요?”

 그러나 배에서 급히 얼굴을 내민 사람은 다름 아닌 이라우랑이었습니다. 한 해가 넘도록 여러 나라를 돌며 마침내 통상사절단의 임무를 마치고 귀국하던 차에 바다 한 가운데 자라난 빈랑나무와 그 위에서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는 암탉의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온 것입니다.

 이라우랑이 배를 가까이에 대라고 명하자 닭이 훌쩍 날아 배 위로 올라왔습니다.

 “여보! 난 당신의 아내, 막내 공주에요!” 

 암탉이 그렇게 울었습니다. 세상 어딘가에 진짜로 말하는 닭이 있다 해도 그 닭이 내가 당신 부인이라 말하면 누구도 곧이곧대로 믿을 리 없겠지만 새우로 태어나 마침내 껍질을 벗고 천하제일 미남이 된 이라우랑이라면 믿지 않을 리 없었습니다. 


 이라우랑이 암탉을 안아 들고 모종의 주문을 외자 암탉은 곧 막내 공주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그런 도술도 새우 모습을 하고 있던 시절 읽었던 그 많은 책 속 어딘가에서 익혔던 것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껴안고 펑펑 울었습니다. 그런 후 막내 공주는 자신이 언니들에게 당한 사건부터 시작해 바다 밑과 빈랑나무 위에서 벌어진 일들까지 모두 남편에게 고했습니다.

 “알았소. 일단 궁으로 돌아갑시다.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언니들도 우릴 기다리고 있을 것이요.” 이라우랑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언니들은 어쩌죠? 언니들은 내가 살아 있는 걸 알면 어떤 짓을 할지 몰라요”

 “여보, 걱정하지 마세요. 언니들이 다시는 나쁜 짓을 못 하게 할 겁니다.” 

 “어떻게요?”

 “그들 스스로 자기 운명을 결정하게 할 거예요. 당신은 일단 이 상자 속에 숨어요. 내가 큰 바늘을 줄 테니 만약 누가 상자를 옮기려 하면 그 사람 어깨를 찌르세요.”

 “알았어요.” 

 아내는 남편의 계획을 전부 다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배가 마침내 왕국의 항구에 닿자 신료들이 마중 나와 있었고 여섯 언니 공주들도 그곳에 나와 있었습니다. 그들은 막내 공주가 없어진 지금 이라우랑이 자기들 중 누구를 새로운 부인으로 선택할지 기대에 가득 차 서로 경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이라우랑의 이목을 끌기 위해 갖은 교태를 부렸으므로 이라우랑은 욕지기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았습니다. 그는 공주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 중 저 상자를 궁전까지 가져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내 아내로 삼겠소.” 

 그는 막내공주가 숨어 있는 상자를 가리켰습니다.


 이라우랑의 말을 들은 공주들이 그 나무 상자에 달려들어 서로 지고 가겠다고 난장판을 벌였습니다. 그러다가 장녀 공주가 먼저 상자를 번쩍 들어 어깨에 짊어졌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해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어깨에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기 때문인데 그것은 상자 안의 막내 공주가 바늘로 찔렀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공주는 물론 여섯 번째 공주까지 모두 상자를 들려고 있지만 모두 어깨를 찔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들이 내 아내가 될 일은 영영 없겠습니다.” 

 이라우랑은 씩 웃으며 그렇게 말한 후 그 상자를 호위병 여럿이 함께 들고 궁전까지 옮기게 시켰습니다. 경비원들은 상자를 묶고 긴 막대로 받쳐 들고서 조심스럽게 다루며 궁전까지 갔습니다. 사실 여섯 번을 떨어뜨렸으니 그 안의 막내 공주도 무사했을 리 없어야 하지만 이 이야기 속 막내 공주는 무려 물속에서 몇 개월을 견딘 생존능력을 가진 인물이어서 떨어진 상자 속에서 몇 번 뒹구는 정도로는 코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는 설정입니다. 


 궁전에 도착한 이라우랑이 국왕과 왕비 앞에서 상자를 열자 그 안에서 모두 죽은 줄로만 알았던 막내 공주가 단정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으므로 왕과 왕비를 비롯한 궁전 안의 모든 사람이 탄식을 내지르며 놀랐습니다. 여섯 공주 역시 벌어진 입을 닫지 못했습니다. 모두 막내 공주의 죽음을 두 눈으로 보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막내 공주가 여섯 명의 언니 공주들은 서늘한 눈빛으로 지긋이 바라보자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백일하에 드러났다는 생각에 뿔뿔이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장녀는 연회장의 문을 향해 내달렸고 둘째와 셋째는 부엌으로, 넷째와 다섯째는 곧장 성 밖으로 나갔고 여섯째는 우물 쪽으로 달렸습니다. 


 결국 막내 공주가 부왕의 뒤를 이어 국왕의 자리에 올랐고 다른 여섯 공주는 그 신하가 되었습니다. 문으로 달려갔던 장녀 공주는 연회장의 문을 여닫는 시녀가 되었고 부엌으로 달려간 둘째와 셋째는 요리사가 되었으며 성 밖으로 달아난 넷째와 다섯째는 수확한 벼를 창고로 옮기는 일을 하게 되었고 우물로 도망간 여섯째는 빨래를 도맡게 되었습니다. 

 

이라우랑 아트 모음.jpg
이라우랑 아트 모음

 

 뭐라 덧붙일 말이 필요 없이 딱 떨어지는 멋진 결말입니다.

 그런데 왜 인도네시아 민화 속 왕국의 공주들은 늘 일곱 명일까요? (끝)

 

 ♣배동선 작가는 인도네시아의 동포 향토작가. 현지 역사, 문화에 주목하며 저서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와 번역서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공동번역서 <막스 하벨라르>를 출간했다.

 

<저작권자ⓒ데일리인도네시아 & dailyindonesia.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