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기고문] 국가영웅의 날과 인도네시아 경찰/배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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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국가영웅의 날과 인도네시아 경찰/배동선

기사입력 2022.11.1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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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국가영웅의 날.jpg

  

글: 배동선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저자) 

 

11월 10일(목)은 인도네시아 국가영웅의 날. 우리의 현충일 같은 날이었다. 이 참에 인도네시아 현대사를 조금 살펴보자.

 

1945년 8월 17일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자 인도네시아 독립준비위원회 PPKI는 18일 곧바로 정부 기본조직을 발표한다. 같은 달 29일엔 독립준비위원회가 국가중앙위원회(KNIP)로 명칭을 바꿔 임시의회로서 총선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8월 31일엔 수카르노와 모하마드 하타를 각각 대통령과 부통령으로 하는 인도네시아공화국 정부가 출범했다. 일본 패망 후 불과 보름. 같은 시각 해방 공간의 한국에서는 꿈도 꾸지 못한, 전광석화와 같은 정부수립이었다.

 

미쳐 날뛸 줄 알았던 인도네시아 주둔 일본군들은 대체로 침묵하다가 8월 22일 의외로 순순히 패전을 인정하면서 현지인들로 만든 보조부대 헤이호(兵補)와 총알받이 자경단 PETA 해산을 발표하자, 수카르노가 다음날 발빠르게 라디오방송을 통해 이들을 국민치안단(BKR)으로 규합했다.

 

하지만 국민치안단은 지역 군벌 성격을 띄어 일사분란한 명령체계가 수립되지 않았는데 9월 8일 연합군 선발대로서 영국군 공수부대가 북부 자카르타 끄마요란 상공에 흘뿌려지자 연합군에 맞서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지킬 무력수단이 절실했던 수카르노는 국민치안단을 국민치안군(TKR)으로 승격시키고 우립 수모하르죠 중장이 군권을 잡았다. 그게 1945년 10월 5일. 오늘날 인도네시아 국군의날이다.

 

국가영웅의 날과 수디르만 장군

 

인도네시아공화국은 그로부터 1949년 12월까지 치열한 독립전쟁을 치렀는데 그 수많은 에피소드 중 수라바야 전투와 수디르만 장군의 게릴라전이 가장 상징적이다.

 

수라바야 전투는 10월 27일부터 11월 20일까지 수라바야와 그 일대에서 벌어진 일련의 교전을 말한다. 여기서 인도네시아는 일본군에게서 탈취한 화기와 죽창으로 무장한 정규군 2만 명과 각지에서 몰려든 민병대 12만 명이 셔먼 탱크와 전투기, 함포지원을 받는 영국군 제5 인디아 사단 2만5,000명과 맞붙었다. 네덜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에게 짓밟혔다가 막 해방된 상태여서 아직 군대를 직접 보내지 못한 상태였다. 11월 10일 영국군이 항구와 주요 거점들을 맹폭격하며 본격적으로 짓쳐들어오자 공화국 측은 이후 10일가량 수라바야를 방어하면서 16,000명이 사망하고 전투력과 장비 대부분을 잃는 궤멸적 손실을 입었다. 영국군 전사자는 고작 600명이었다. 여기서 호되게 당한 인도네시아는 이후 독립전쟁 내내 완전히 게릴라 전술로 돌아서게 된다. 수라바야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1945년 11월 10일은 ‘국가영웅의 날’이 되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48년 12월 19일 네덜란드군은 두 번째 휴전협정을 깨고 인도네시아 공화국 임시수도 족자(Yogjakarta)를 기습해 수카르노 대통령을 포함한 인도네시아 정부 요인 대부분을 나포하여 수마트라의 방카(Bangka)섬으로 유배시켰다. 대통령을 잡았으니 전쟁이 끝났어야 하는데 수마트라 부낏띵기(Bukittinggi)에 공화국 비상정부(PDRI)가 세워지고 자바에서는 병력을 보전하여 족자를 탈출한 전군사령관 수디르만이 이후 전국에 흩어진 공화국군 게릴라들을 지휘해 크고작은 작전을 벌이며 끈질기게 네덜란드군을 괴롭혔다. 

 

15일 국가영웅의 날_수디르만.jpg
수디르만 장군 (가운데 경례하는 이)

 

특히 남은 병력을 끌어모아 공화국 임시수도였던 족자를 공격해 여섯 시간동안 점령했다가 물러난 1949년 3월 1일의 족자 총공세는 인도네시아가 아직 저항하고 있음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신호였다. 이에 힘입은 수카르노가 마침내 외교적 반전을 일으켜 네덜란드와 협상에 성공했다.

 

전쟁 내내 폐결핵으로 투병하면서도 수많은 작전을 지휘하여 끝까지 군사적 승리를 도모했던 수디르만 장군은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로부터 주권을 이양받던 1949년 12월 27일로부터 한 달 후인 1950년 1월 29일에 사망했다. 그는 어떤 면에서 이순신 장군을 많이 닮았다. 국민들은 그와 인도네시아군을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인도네시아 경찰

경찰은 국방부 소속 ‘경찰군’ 이었다가 1998년 수하르토가 하야하고 개혁시대에 들어서면서 내무부 산하로 떨어져 나왔다. 아직도 계급장 디자인을 포함해 경찰조직 곳곳에 남은 군대문화는 그래서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앞서 언급한 족자 총공격 당시 공화국 측에선 350명 넘는 사망자가 나왔는데 그 중 53명이 경찰관이었다. 자카르타 시내 뜨루노조요 거리의 경찰청 박물관에는 1962년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령 파푸아(지금의 서파푸아 지역)를 침공할 당시 암본 일대에서 조직된 경찰군 기동타격대 전투단이 팍팍 해안으로 침투해 내륙에서 사보타지 파괴공작을 수행했다는 자료와 사진들이 자랑스럽게 진열되어 있다. 경찰이 군과 함께 인도네시아 독립전쟁과 반란군 진압작전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며 많은 피를 흘린 당사자였음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물론 긴 세월이 흐르고 권위주의시대를 거치면서 군과 경찰의 이미지도 많이 변했다. 예전에 한국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경찰이 권한을 남용하고 민간인들의 돈을 뜯는 일도 수없이 벌어졌다. 특히 경찰과 군이 기싸움을 하며 자주 충돌했는데 그 패싸움이 심심찮게 총격전으로 비화해 사상자를 낳거나 사회적 물의를 빚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래도 그들로 인해 치안이 유지된다는 믿음 속에서 경찰은 국민들의 신뢰와 사랑을 모두 잃지는 않았다. 

 

15일 국가영웅의 날_조형물.jpg
경찰청 박물관에 있는 뜨리꼬라 작전 참전 조형물

 

하지만 그 모든 게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22년 7월이었다. 인도네시아 경찰 역사상 가장 추악한 스캔들, 이른바 ‘J순경 계획살인사건’이 벌어졌다. 별 둘을 단 경찰청 내무국장이 관저에서 휘하 순경 한 명을 마음대로 처형하고서 총격전이 있었던 것처럼 현장과 부하들 증언을 조작해 정당방위 사건으로 꾸몄고 유력한 경찰 고위직들과 초동수사에 동원된 요원들을 움직여 진실은폐를 시도한 사건이다. 하지만 오히려 국민적 의혹이 커지며 대통령까지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자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것은 물론, 예의 내무국장이 전국 단위의 온라인 도박조직을 관리했다는 사실도 불거졌고 그의 자택 지하에서 9천억 루피아(약 791억 원)의 현금이 발견되었다는 루머도 나돌았다. 경찰 고위 간부가 경찰 내 파벌을 움직여 스스로 대형 범죄를 조직하고 있었던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얼마 후 말랑 깐주루한 경기장에서 130명 넘는 관중이 압사당하는 참사가 벌어지자 책임을 지고 좌천된 동부자바 지방경찰청장 후임으로 내정된 또 다른 투스타 치안감이 부임 며칠 전 전격 체포되었다. 증거품으로 압수한 마약을 경찰들이 유통시켰는데 그 배후에 예의 치안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10월 14일에는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전국 장성급 경찰 고위간부 백 수십 명을 동시에 소환해 그간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대해 질타하기도 했다.

 

별들의 전쟁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근엔 동부 깔리만탄 지역에서 현직 경찰신분으로 불법 채굴한 석탄을 수집해 판매했던 한 인사가 본청 쓰리스타 치안정감에게 60억 루피아(약 5억2,700만 원)를 상납했다는 증언을 내놓았다가 번복하는 동영상이 소셜미디어를 달구면서 경찰은 이제 도박과 마약에 이어 불법광산사업에까지 손을 대고 있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놀라는 사람도 별로 없다. 경찰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쳤기 때문이다.

 

마흐푸드 MD 정치사법치안조정장관은 이 문제에 대해 경찰 고위직들이 서로 손에 든 패를 폭로하는 ‘별들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현재 리스티요 시깃 쁘라보워 경찰청장이 경찰 신뢰회복을 위해 연일 새로운 쇄신책과 대민정책을 내놓는 와중에 경찰 내부에서는 조직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 상대파벌 등을 칼로 찌르는 치열한 세력다툼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그것은 현재 인도네시아 경찰이 가진 문제가 매우 음습하면서도 잘 고쳐지기 어려운 고질적이고도 조직적인 것임을 뜻한다.

 

국가영웅의 날에 즈음하여 과거 수많은 ‘국가영웅’을 배출했던 조직의 초라한 오늘을 바라보는 인도네시아인들의 실망스러운 마음을 잠시 헤아려 본다. (끝)

 

15일 국가영웅의 날_경찰.jpg
마약유통 혐의로 체포된 테디 미나하사 전 서부 수마트라 지방경찰청장(왼쪽)과 J 순경 살해사건 주범 페르디 삼보 치안감 전 경찰청 내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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