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숙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장
2001년 인도네시아에서 첫 한국 드라마가 방송된 이래, K-POP, 한국음식, 예능 등 한류 콘텐츠가 20년 이상 인기를 지속하고 있다. 처음에는 한국 드라마를 보고 주인공이 사용한 물건들을 구입하거나 K-POP 댄스를 따라 하던 일방적인 수용이었다. 최근에 인도네시아인들은 한국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자카르타 롯데몰에서는 주말이면 K-POP 팬들이 모여서 K-POP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추고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화장품을 구입한다. 자카르타 딴중바랏 지역에 위치한 이온몰(Aeon Mall)에 있는 K-POP 댄스 스튜디오에서는 시간당 강습료 8만 루피아 정도를 내고 K-POP 댄스 중 한두 동작을 1시간가량 배우고 짧은 동영상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쇼핑몰에서 놀이기구를 타거나 영화를 보듯이 잠시 K-POP 댄스를 배울 수 있게 상품화한 것.
2024년 대선에서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정치 왕조를 만들려 한다는 비판에 대해 '정치는 이데올로기 경쟁인데 감정싸움으로 생각한다며 K-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그렇다’며 K-드라마를 언급했다. 간자르 후보는 본인의 인기가 K-POP 스타만큼 되지 않느냐고 물었고, 아니스 바스웨단 후보의 지지자들은 '아니스 버블'(아니스@aniesbubble)이라는 엑스(구 트위터) 팬 계정을 중심으로 아니스를 홍보하는 트위터와 틱톡 게시물과 라이브 방송 그리고 커피트럭 같은 한류 팬덤 문화를 적극 활용했다. 대선 후보들조차 한류를 언급해야 할 만큼 한류 현상이 인도네시아 사람의 생활에 스며들었다는 생각과 함께, 한편으로는 인도네시아 사람이 한류 콘텐츠를 주도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네시아에서 한류는 고속 성장 단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의 최경희 연구교수는 '인도네시아 한류의 수용과 수행에 나타난 문화 경제적 상호작용 연구'라는 논문에서 인도네시아에서 한류가 대중적 인기를 끌면서 고속 성장 단계에 있다고 보았다. 한류현황지수와 한류심리지수로 구성된 한류지수가 인도네시아인을 대상으로 2015년 이래 계속 조사되었는데, 인도네시아는 글로벌 평균 이상의 높은 점수를 계속 보이면서, 한류의 대중적 인기와 함께 고속 성장의 단계를 보여 주고 있다.
2016년 이후 단 6년 만에 문화콘텐츠를 접촉하는 미디어 수단이 전통적인 TV에서 온라인과 소셜미디어(SNS)로 바뀌었다. 이를 통해 인도네시아인이 스스로 콘텐츠를 선택할 수 있는 수용자로서의 주도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한류가 인기를 지속하고 성장하는 이유
최 박사는 한류 콘텐츠 자체의 우수성과 한국 측의 확산 노력과 함께 인도네시아가 내적인 변화의 단계라는 점을 주목했다. 인도네시아는 1999년부터 국가체제가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개혁 시대를 맞이했다. 더 자유롭고 더 민주적인 사회로의 개혁을 원하는 열망은 새로운 것을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또 민영 방송사가 증가하면서 '검증된 해외콘텐츠'를 수입해 방영했는데, 2001년 한국 드라마의 첫 방송이 기대 이상의 결과를 냈다. 또 IMF 이후 매우 어려운 인도네시아 경제 상황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에 진출하고, 대회 기간 내내 거리응원을 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면서, 한국이 인도네시아인에게 매우 매력적인 나라로 다가왔다. 2006년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전략적동반자관계를 수립하면서, 인도네시아 정부도 한류 수용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인도네시아 ‘창조경제’ 정책은 가장 뚜렷한 한류 수용 전략
인도네시아는 창조경제 전략을 새로운 성장동력이자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경제 전략으로 선택하고, 문화적으로 지속가능한 도시를 구축하기 위해 ‘창조경제’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이에 인도네시아 정부는 디지털 전환과 맞물려 디지털 콘텐츠 산업뿐만 아니라 관광산업, 공연예술 분야 증진을 위해 한국과 협력하고 있으며, 이것이 인도네시아에서 한류 콘텐츠가 지속해서 확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바탕이 됐다. 이를 위해 인도네시아는 2013년 한국과 ‘창조산업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다양한 창조경제 분야에서 협업, 교류와 투자 등을 통해 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MZ세대와 무슬림과 한류가 만나서 이루는 상호작용
인도네시아 MZ세대와 Post-Z세대와 한류가 글로벌 문화현상으로 주목을 받고 변모하는 시점에서 글로벌화와 민주화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로, 한류를 통해 ‘자기개성’을 발견하고 ‘자기개발의 수단으로서의 한류’를 체험한다. 최경희 박사는 이러한 경험이 새로운 인도네시아 청년 무슬림 세대의 시대성을 구축하는 데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았다.
한편 무슬림 여성들은 종교와 취미, 종교와 엔터테인먼트를 구별하여 인식하는 태도를 보인다. K-POP 커버댄스에 참여하는 무슬림 여성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종교성’과 연관 짓지 않고, 오히려 세속화가 아닌 ‘자아실현’과 ‘더 나은 가치’에 대한 욕구이며, 그 ‘세계성’에 참여하는 통로로 K-POP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했다.
한류, 다양성과 이슬람 가치 사이에서
인도네시아는 건국 이래로 문화다양성을 추구하지만 실제로는 이슬람 문화가 지배적인 특성이 있다. 인도네시아 무슬림들은 한국과 인도네시아, 한류와 이슬람적 가치가 상호작용해 만들어지는 문화적 혼종성을 발전시키는 요소로는 한국인과 인도네시아인이 모두 공감하는 “아시아라는 정체성”, “다양한 종족(민족)성을 인정하는 인식들” 그리고 “한류 콘텐츠를 소비하는 지역소비자들의 주도성” 등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에 비해, “종교와 종족에 대한 폄하 인식 또는 차별적인 인식” 등은 문화적 혼종성을 생성하는 데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인식했다.
최 박사는 도네시아에서의 한류는 현재 문화다양성을 지향하는 가치와 이슬람 가치 사이에 존재한다며, 인도네시아가 문화다양성 사회로 유지 확대되는 데 한류가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다만 이것조차 한류를 수용하는 인도네시아인들의 선택과 실천의 결과일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최 박사는 이러한 과정에서 한류 콘텐츠가 인종과 젠더, 지역과 계층 문제에 대해서 풍부하고 성숙한 인식이 장착된 콘텐츠로 성장하고 문화다양성을 수용하는 글로벌 문화환경을 만들어 가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했다. [끝] (한인뉴스 2024년 4월호에 게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