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조연숙] 김치의 인도네시아 진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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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숙] 김치의 인도네시아 진출기

기사입력 2024.07.0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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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의 인도네시아 진출기

조연숙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장 

 

1990년대 후반 자카르타 중심가에 위치한 하얏트 호텔 뷔페 식당에서 배추김치와 오이김치를 보았다. 좀 놀라웠다. 한국인이 담가서 호텔에 납품한다고 했다. 당시 엘지와 삼성 같은 대기업을 필두로 한국 기업들이 진출하면서 한국인 출장자가 큰 고객이 됐고, 그들을 위해 하얏트, 샹그릴라, 쉐라톤 등 주요 호텔에서 김치를 제공한 것이다. 그날 같이 저녁을 먹은 지인은 인도네시아인 직원들이 한국인 식당으로 김치를 얻으러 온다고 했다. 큰 회사의 경우 한국인 직원을 위한 한국인 직원식당과 인도네시아인 직원을 위한 인도네시아인 직원식당을 따로 운영하는데, 인도네시아인 직원이 한국인 직원식당에 와서 "라면에는 김치를 먹어야 한다"며 너스레를 떤 것. 이 직원은 기술연수를 위해 한국에 갔다가 김치에 맛을 들였다고 했다. 

 

한국인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것은 1960년대 말이다. 한국인 직원이 많은 회사에서는 한국에서 한식 조리사를 데려갔고 고추가루 등 식재료를 한국에서 가져가서 한식을 제공했다. 이런 규모가 안 되는 경우는 가정에서 김치를 담아서 먹었다. 배추는 현지 시장이나 일본 슈퍼마켓에서 구입할 수 있었지만 포기가 작고 잎이 얇고 힘이 없었고, 무는 쓰고 심이 든 것이 많아서 조리법을 약간 변형해서 조리했다. 예를 들면, 배추는 살짝만 절이고, 무는 소금과 설탕으로 절여서 씻은 후 사용하거나, 아예 덜 익어서 과육이 단단한 파파야를 무 대신 쓰기도 했다. 젓갈도 현지에서 새우와 오징어를 사서 직접 만들기도 했고, 현지에서 판매하는 피시소스(fish sauce)를 사용하는 등 창의력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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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인이 담근 김치 2024.1.24 [사진: 조연숙]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서 봉제와 신발, 전자 등과 같은 노동집약산업들이 진출하면서 한인 수가 급증함에 따라 한국 마트가 여러 군데 생기고 한국식품 공급이 늘었다. 1990년대부터는 자카르타 근교에서 한국 종자로 재배한 배추들이 판매되기 시작했다. 지금도 이유는 모르지만 이틀씩 절여도 숨이 죽지 않는 배추도 있었다. 이 시기에는 한국인에게 배운 인도네시아인들이 한국음식을 만들고 김치를 담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김치를 한국에서 가져가는 사람이 늘었다. 항공물류가 발달하면서 물건을 가져가는 것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2010년대에는 한국산 배추와 무 이어서 절임배추, 한국산 김치, 김치냉장고까지 수입됐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 김치를 담가서 파는 사람도 생겼다. 현지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늘면서 배추와 무, 고추가루 등을 현지에서 직접 구입할 수 있게 됐다. 어느 순간 한국 슈퍼마켓만이 아니라 일본 슈퍼마켓과 인도네시아 슈퍼마켓에서도 현지에서 생산한 김치와 한국에서 수입한 김치를 모두 구입할 수 있게 됐다. 

 

한국 기업과 한국인의 활동과 현지 한식당은 김치와 한식을 인도네시아인에게 소개하는 계기가 됐고, '대장금'을 비롯한 한국 드라마의 영향과 한국 정부의 한류 콘텐츠 홍보, 사스(SARS) 사태 당시 김치가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보도 등으로 김치는 더욱 확산된다. 김치는 이제 소수지만 인도네시아인에게도 사랑받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인도네시아에서 김치는 한국인이 시작했지만 이제는 인도네시아인과 다른 외국인들에게 스며들고 있다. 

 

김치는 한국인이 가는 모든 곳에서 여러 형태로 현지화를 한다. 인도네시아에서 김치는 비건(Vegan. 채식주의) 식품이자 할랄(무슬림에게 허용되는 음식) 식품으로 발전했다. 인도네시아 고급 슈퍼마켓 비건 또는 오가닉 식품 코너와 발리 비건식품점에 가면 예쁜 병에 든 김치를 볼 수 있다. 김치를 담그는 사람도 한국인에서 인도네시아인을 포함한 외국인으로 넓어졌다. 

 

앞으로 인도네시아에서 현지인들이 직접 만드는 김치가 더 많아질 것이다. 재료도 방법도 무한대로 확장할 가능성이 있는 음식이 김치이다. 우리가 가족이나 공동체에서 생활하며 축적한 김치에 대한 스토리를 인도네시아인들은 드라마 같은 한류 콘텐츠로 축적한다. 배추, 무, 오이, 청경채, 채심 등 김치의 재료가 다양해지는 만큼 김치를 만들고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다양해질 것이다. 김치는 한국인과 함께 인도네시아에 와서 한국인이 현지화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인도네시아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인도네시아인이 현지에서 재배한 배추로 만든 '비건 할랄 김치'가 한국으로 수출되는 날도 올 것이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김치가 새로운 모습으로 한국에 진출하는 날을 상상해 본다. [데일리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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