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는 도끼다"
조연숙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장
인도네시아는 내가 한국에서 쌓은 생각의 경계를 부수는 도끼였다. 인도네시아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면서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을 받고 그것에 대해 다시 공부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새로운 생각의 촉수를 만들어 왔다고 생각한다.
"인도네시아는 도끼다"라는 문장은 독일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가 처음 말한 것으로 알려진 "책은 도끼다"라는 말을 패러디했음을 먼저 밝힌다. 카프카는 "책은 우리 안에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여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책이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사고를 깨우고, 기존의 생각을 뒤흔들어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강력한 도구임을 강조한 표현이다. 이 표현은 후에 많은 작가와 문학 평론가들에 의해 인용되었다. 한국에서는 저명한 작가이자 평론가인 박웅현이 자신의 저서 『책은 도끼다』에서 이 말을 인용하며 널리 알려졌다. 내 입장에서 '책'을 '인도네시아'로 바꾸면, 한국과 너무나 다른 나라인 인도네시아로의 이주는 지리적인 국경을 넘어서 나의 사고의 틀을 깨고 생활 방식을 바꾸고 새로운 삶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말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 가야 한다고 들었을 때 떠오른 단어는 '열대, 이슬람, 야자수, 독재자 수하르토, 민주투사 메가와티, 저소득국가' 등이었다. 하지만 1999년 7월 수카르노하타국제공항에서 자카르타 시내로 이동하면서 본 도로를 호위하던 초고층빌딩들은 저소득국가가 맞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1990년대 말에는 한국에서도 초고층빌딩이 드물었다. 자카르타 시내 중심가에는 최신형 벤츠부터 낡은 바자이와 목초를 실은 소달구지까지 함께 다녔고, 대로를 벗어나면 저소득국가의 풍경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자연환경이 다르면 생활방식이 바뀐다. 일 년 내내 덥고 습한 열대기후인 인도네시아에서는 여름옷만 있으면 된다. 겨울옷도, 이불도, 가습기도, 난로도 필요없다. 대신 거의 모든 음식을 냉장고에 보관해야 한다. 쌀을 상온에 두면 쌀벌레가 생기거나 곰팡이가 생긴다. 옷장에 제습제를 넣어두어도 옷을 입을 때 눅눅한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현지인들은 아침저녁으로 샤워한다. 한국에서는 피부가 건조해진다고 샤워를 자주 하지 말라고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그렇게 하면 '땀띠'와 '습진' 같은 피부질환이 생길 수 있다. 나는 성경 속에 묘사된 고대 이스라엘의 풍습들이 낯설고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고대 중동 사막에서는 현대 한국과 다른 생활방식과 사고체계가 형성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들었다.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무슬림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1990년대만 해도 한국에서 접하는 이슬람과 무슬림은 서구 언론이 보도하는 내용과 건설 노동자들이 경험한 아랍국가의 이슬람이 대부분이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 지하드 전사, 테러리스트... 돼지고기를 안 먹는 것은 맞았지만,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이 먹는 것은 허용했다. 2000년대 초반에 테러 사건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무슬림은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오히려 테러의 피해자들이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에 처음 이슬람을 전파한 사람들은 인도와 중국 그리고 아랍 무역상들로, 그들은 교역하면서 평화로운 방식으로 이슬람교를 전파했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국가가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이슬람교 신자 즉 무슬림 수가 가장 많은 국가이지만 세속국가이다. 세속국가는 종교국가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대부분 국가는 세속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한국도 세속국가이다. 인도네시아는 정치면에서 민주주의 국가이고 경제면에서는 자본주의국가이다. 종교국가는 아니지만 이슬람교를 포함해 개신교와 가톨릭, 불교와 유교, 힌두교를 인정하고, 이들 종교 축일을 국가공휴일로 기념한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Assalamu’alaikum warahmatullahi wabarakatuh" (이슬람인사), "Shalom" (기독교 인사), "Om Swastiastu" (힌두교 인사), "Namo Buddhaya" (불교 인사), "Salam Kebajikan" (유교 인사)" 등 각 종교의 인사말을 2~3개 섞어서 대중연설을 시작한다.
비평가들은 “종교분쟁은 종교가 이유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2000년대 아체에서는 강성 이슬람과 온건 이슬람 주민 간 충돌, 암본에서는 기독교와 이슬람 주민 간 유혈충돌이 간헐적으로 일어났다. ‘기독교와 이슬람은 너무 달라서라지만 이슬람끼리도 온건과 강성으로 나뉘어 충돌한다고?’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여러 언론 기사와 책을 찾아보고 현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선주민(先住民)과 이주민 집단과의 충돌이라는 것. 표면에 드러난 것은 종교지만 실제로 교리 싸움은 아니라고 했다. 인도네시아 중앙정부에서 파견하거나 이주시킨 이슬람 또는 온건 이슬람 성향 주민들과 원주민인 기독교 또는 강성 이슬람 성향 주민들이 정치와 경제적 이익을 두고 경쟁하다가 충돌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모든 나라가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으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 정당은 한국 기준으로 하면 보수 성향에 가깝다. 수하르토 대통령은 집권한 후 정당을 직능 대표자들로 구성한 집권당 골카르당, 이슬람세력을 모은 연합개발당(PPP), 기타 이념과 종교 세력을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모은 민주당(PDI. 현 투쟁민주당 PDIP)로 나눴다. 그래서 이념적으로 진보와 보수가 아닌 종교적으로 이슬람과 비이슬람(민족주의)으로 나뉘는 것. 수하르토 대통령이 물러나고 개혁시대에 접어들면서, 골까르당과 연합개발당은 인물 중심의 여러 정당으로 갈라졌다. 한편 투쟁민주당은 수많은 성향의 집단이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총재를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돈이 있어도 바나나를 마음껏 먹지 못할 수도 있다. 절대적인 공급 부족. 1990년대 말 파푸아는 토양이 척박하고 농사가 막 시작된 상황이어서 바나나와 파파야 같은 열대과일조차 귀했다. 도시처럼 사람들이 많은 지역에서 바나나와 파파야를 먹으려면 재배하거나 타지역에서 재배한 것을 사와야(유통) 한다는 것. 당시에 한국은 농사도 유통도 발달해서 어디서나 비용을 지불하면 사과와 배를 마음껏 살 수 있었으므로, 도시 소비자 눈에는 농사도 유통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국가가 한국과 같은 단계로 발전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는 전국에 유선전화망이 설치되기 전에 무선전화로 이동했다. 자기 집 전화번호를 가져보지 못하고 개개인이 핸드폰번호를 갖게 된 것이다. 인터넷도 유선망이 도시를 중심으로 깔리다가 이동통신으로 넘어갔고, 이제 오지는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가 운용하는 미국의 저궤도 우주인터넷 통신사업인 스타링크 도입을 언급한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통신발달사에는 시티폰은 없었고, 삐삐(무선호출기) 시대는 잠깐 스쳐 지나갔다. 철도와 도로가 전국에 건설되지 못한 상태에서 항공편으로 군도의 섬들을 연결하고 있다. 한국은 농업과 광업 등 1차 산업, 2차 제조업, 3차 서비스 산업, 4차 디지털 산업 등으로 단계별로 산업이 발전했지만, 인도네시아는 1, 2, 3, 4차 산업이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하나의 국가에 살아도 언어와 문화, 종족과 인종이 다를 수 있다. 1990년대 말 한국은 한민족이 한국어를 하며 한반도에 사는 나라였다. 서울에서 외모가 다른 외국인을 보면 쳐다보던 시절이었다. 인도네시아에 오니 인도네시아인이라고 하지만 종족이 다르면 외모도 언어도 달랐다. 심지어 자카르타에는 전세계에 모든 사람들이 오가고, 도로에는 태평양전쟁 시기부터 1990년 최신 모델까지 전 세계에서 생산된 자동차 모델이 모두 달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생활에서는 자바어나 순다어 같은 종족어를 쓰고 공용어는 인도네시아어(Bahasa Indonesia)다. 당시에 저녁 6시에는 모든 채널에서 국영방송국이 제작한 동일한 뉴스를 방송했는데, 각 종족을 대표하는 아나운서 즉 외모가 다른 사람들이 표준 억양과 발음의 인도네시아어로 뉴스를 전했다.
지금도 인도네시아와 인도네시아인들을 보면서 머리를 도끼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도끼로 머리를 맞으면 아프고 상처가 남지만 허물어진 경계를 넘는 새로운 생각의 촉수도 생겨난다. 이를 통해 내 나날의 삶과 사고가 더 풍요로워지기를 바란다. [데일리인도네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