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바오로 6세 시작으로 '교황 필수직무'…종교 화합·기후위기 대응 등 메시지
가톨릭 신자 3분의 2가 '비서구' 현실적 이유도…3만2천㎞ 강행군 교황 "쉽지 않아"
2013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베네딕토 16세의 자진 사임 배경 중 하나는 해외 사목 방문이다.
그는 직전 해인 2012년 3월 부활절을 맞아 멕시코와 쿠바를 다녀온 뒤 체력적 한계를 절감했다. 시차 적응도 큰 문제였다.
주치의와 이 문제를 논의한 그는 2013년 7월 브라질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WYD)에 참가할 체력이 도저히 안 된다고 판단해 2013년 2월 교황직을 내려놓았다.
가톨릭 역사상 598년 만에 생전 퇴위한 교황인 그가 2016년 이탈리아 일간지 라레푸블리카와 인터뷰에서 스스로 밝힌 내용이다.
교황에게 해외 사목 방문이 얼마나 큰 무게감으로 다가오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직 교황이 바티칸 밖을 벗어나 이탈리아가 아닌 다른 나라를 찾아간 것은 바오로 6세(재위 1963∼1978) 때부터다.
그는 교황으로 선출된 다음 해인 1964년 1월 요르단과 이스라엘을 방문하며 교황 해외 사목 방문 시대를 열었다.
교황이 비행기를 타고 움직인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교황으로서 최초로 6대륙을 횡단한 그를 두고 사람들은 '순례자 교황'이라고 불렀다.
그 뒤를 이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재위 1978∼2005)은 27년의 재위 기간에 104번에 걸쳐 129개국을 방문하며 선교와 외교 면에서 교황의 지평을 더욱 확대했다.
하지만 후임자인 베네딕토 16세는 활동적이었던 전임자 요한 바오로 2세와 달리 조용한 학자 스타일이었다.
그는 교황 선출 직후 최측근에게 자신은 요한 바오로 2세와 같은 성향이 아니라서 해외를 많이 방문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도 재위 8년 동안 총 24번, 연평균 3차례 해외 사목 방문을 다녀왔다. 요한 바오로 2세(연평균 3.85회)와 큰 차이는 없었다.
2013년 3월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도 여행을 즐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베네딕토 16세와 비슷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잘 아는 친구들은 그가 여행을 많이 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그는 11년간의 재위 기간에 요한 바오로 2세보다 더 많은 매년 4.09회씩 총 45차례 해외 사목 방문에 나섰다.
최근 몇 년간 건강 이상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무릎과 허리 통증으로 보행이 불편한 상황에서도 87세 교황의 행보는 쉼 없이 이어졌다.
지난 2∼13일에는 인도네시아, 파푸아뉴기니, 동티모르, 싱가포르 등 두 대륙에 걸쳐 4개국 순방을 다녀왔다.
12일간에 걸친 이번 해외 사목 방문은 교황 재위 중 역대 최장이다. 역대 교황 중에서는 요한 바오로 2세가 1984년 캐나다를 13일간 방문한 것이 가장 길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시아·오세아니아 4개국을 비행기로 3만2천㎞ 이상 횡단했다.
해외 사목 방문은 이제는 교황의 필수적인 직무가 됐다.
특히 교황의 해외 사목 방문은 그 자체로 메시지다. 가톨릭 신자가 소수인 국가에서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가 된다.
또한 교황의 핵심 가치를 강조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순방을 통해 종교 간 화합, 기후 위기에 대한 인류의 공동 대응을 강조했다.
교황의 메시지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화해왔다. 때로는 종교와 정치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류사에 중대한 전환점을 만들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요한 바오로 2세의 1979년 고국 폴란드 방문이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봉헌된 주례 미사는 그 자체로 공산 정권에 대한 소리 없는 도전이었다.
교황의 방문 이후 폴란드에는 민주화 바람이 불었고,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의 신호탄이 됐다.
전임 교황들보다 더 잦아진 프란치스코 교황의 해외 사목 방문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오늘날 전 세계 가톨릭 신자 13억명 가운데 3분의 2가 서구 이외의 지역에 살고 있으며, 그 비율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현재 나이지리아에서만 서유럽 전체보다 더 많은 가톨릭 신자가 주일 미사에 참석한다.
유럽의 가톨릭 신자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현대의 교황은 좋든 싫든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전 세계를 구석구석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3일 싱가포르에서 마지막 일정을 마친 뒤 신자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당부한 뒤 "이 일은 쉽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