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훔쳤던 날들
강인수
인도네시아에 살다 보면 마음이 불편하고, 쉽지 않은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에서 우리가 현지인보다 우위에 있는 입장이다 보니, 절도 사건이 발생할 때면 인간에 대한 배신감과 물건을 잃은 상실감이 겹쳐 큰 괴로움을 느끼곤 한다. 이방인인 내가 이 땅에 정착해 살아가며 무언가를 잃는다는 건 단순히 물건 하나를 잃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 그것을 가져갔다는 생각이 들면, 그들에게 베풀었던 정情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듯한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내가 막 결혼해 새댁으로 자카르타에 처음 왔던, 이십 대 후반의 일이다. 옆집 아주머니가 도우미를 구해달라며 부탁해 와서, 우리 집에서 일하던 애니라는 도우미의 동생을 소개해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주머니가 나를 불러 결혼 예물로 받은 오메가 시계가 없어졌다며 말했다. 그리고는 우리 집 도우미와 그 동생을 함께 불러, 물건을 훔쳤을 가능성이 있다며 추궁하라고 요구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져갔다는 증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시계를 어디에 두셨는지 기억나시나요?” 아주머니는 “화장대 위에 둔 것 같기도 하고, 서랍에 넣었을지도…” 하며 말을 흐렸다.
결국, 두 자매는 없어졌다는 시계에 대해 억울함을 느끼고 감정이 상한 채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아무 문제 없이 우리 집에서 일하던 애니도 졸지에 일을 그만두게 되어, 나 역시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사실, 아무도 진실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시계가 나중에 어디선가 불쑥 나왔을 수도 있고, 아주머니 집에서 일하던 애니의 동생이 정말 그 시계를 탐내 슬쩍했을 수도 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작은 물건이라도 없어지면 ‘혹시 저 뒷방에서 일하는 그녀가?’ 하는 의심이 마음속에 피어올랐다. 하지만 엉뚱한 곳에서 물건이 나올 때면, 괜한 의심을 했던 내 마음이 부끄럽고 괴로웠다. 나 스스로를 몰래 용서하는 일은 어쩌면 너무도 쉬운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각자의 민낯을 마주할 때, 그 안에서 드러나는 부끄러움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의심과 신뢰가 복잡하게 얽힌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곳의 우리들이여, 나를 용서하고 타인을 용서할 수 있는 용기가 우리 안에 피어났으면 좋겠다—지금의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그래서 오늘, 나는 박형권 시인의 시를 읽으며 오늘의 나를 반성하고 있다.
자전거 도둑
박형권
중랑천에 꽃 피었다는데
꽃구경이나 갈까
대문 앞이 허전하여 치어다보고 내려다보고
어디가 비어 있나 샅샅이 뒤지고서야
아, 자전거가 보이지 않는다
도둑맞았구나
아내의 장바구니를 실어나르고
딸의 심부름을 실어나르고
내 새벽 둔치 길을 실어나른 식구 같은 자전거가 사라지고 없다
아내도 나오고
주인집에서도 나오고
이층 열 식구가 다 나오고
한골목 사람들 모두 나와서 추리하기 시작했다
용의자는 떠오르지 않고
내 속에 잠겨 있던 의심만 떠올랐다
이 골목의 새벽을 뒤지고 다니는 사람은 두말할 필요 없이 분리수거 할머니!
옆집 목련꽃이 속 보여주는 것마저 의심하며 고물상으로 달렸다
가다가 멈칫!
ㅡ 아빠, 어디 가세요?
학교 갔다 오는 딸처럼
<우리 슈퍼> 좌판 앞에서 자전거가 나를 부른다
ㅡ 새벽에 담배 사고 세워놓고 가더니 이제 찾으러 오는 거야?
목련꽃 보기 부끄러워 돌아올 수 없었는데
자전거가 나를 살살 달래가며 집 앞까지 끌어다놓았다
내가 나를 훔쳐갔다
나한테 용서받는 것이 제일 어렵다
#강인수
시인.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됐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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