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틈 어디쯤
강인수
수요일이면
아파트 마당 가장자리에
옆구리에 주소를 문신처럼 달고 나온 상자들,
한 끼를 품은 비닐,
입술 자국 남은 병들이
말없이 묶여 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쓴 사람들,
지난주의 유품을 들고 나와
분리된 푸대 속으로
기억을 밀어 넣는다.
뜯긴 라벨 끝엔
누군가의 이름이 걸려 있고,
주소 한 줄이
바람에 살짝 젖는다.
나는 달빛 내린 화단 옆
나무 의자에 앉아
한 사람씩 남기고 간
저녁의 뒷면을 바라본다.
껍질들은 서로의 숨을 감춘 채
조용히, 이름도 없이
분리되어 나간다.
존재는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처럼
소리 없이 사라지는 밤.
나도 언젠가
무언가의 틈에서
분해되겠지.
내일이면
장바구니에 담긴 새 플라스틱 상품 하나가
현관 앞에 도착하겠지.
수요일은 다시 돌아오고,
빈 깡통들로 쌓인
이 작은 무덤—
그 틈 어디쯤에서
눌러붙은 채,
분리되어 가고 싶지 않다며
한숨처럼
깨지듯 울음 하나
새어나올지도 모른다.
#시읽기
매주 수요일 쓰레기 분리수거일에 만나는 이웃들의 표정을 살핍니다.
묵묵히 쌓아 놓은 유품같은 쓰레기들을 내 보내며 삶과 소비의 순환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뭉쳐지고 흩어지고 탄생하고 지구는 우리가 내놓은 플라스틱배설물을 자정시킬 능력을 언제까지 지켜내줄지 궁금한 날 이었습니다. 쓰레기의 분리수거, 존재가 해체되어 새로운 것을 탄생 되는 과정을 통해 소비적 사회를 들여다 보는 중입니다.
#강인수
시인.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됐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데일리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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