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강인수의 문학산책 #79 그 틈 어디쯤/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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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수의 문학산책 #79 그 틈 어디쯤/강인수

기사입력 2025.06.12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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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틈 어디쯤

 

                                강인수 

 

수요일이면

아파트 마당 가장자리에

옆구리에 주소를 문신처럼 달고 나온 상자들,

한 끼를 품은 비닐,

입술 자국 남은 병들이

말없이 묶여 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쓴 사람들,

지난주의 유품을 들고 나와

분리된 푸대 속으로

기억을 밀어 넣는다.

뜯긴 라벨 끝엔

누군가의 이름이 걸려 있고,

주소 한 줄이

바람에 살짝 젖는다.

나는 달빛 내린 화단 옆

나무 의자에 앉아

한 사람씩 남기고 간

저녁의 뒷면을 바라본다.

껍질들은 서로의 숨을 감춘 채

조용히, 이름도 없이

분리되어 나간다.

존재는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처럼

소리 없이 사라지는 밤.

나도 언젠가

무언가의 틈에서

분해되겠지.

내일이면

장바구니에 담긴 새 플라스틱 상품 하나가

현관 앞에 도착하겠지.

수요일은 다시 돌아오고,

빈 깡통들로 쌓인

이 작은 무덤—

그 틈 어디쯤에서

눌러붙은 채,

분리되어 가고 싶지 않다며

한숨처럼

깨지듯 울음 하나

새어나올지도 모른다.

 

분리배출 500.jpg
출처:IBK기업은행 블로그


#시읽기

매주 수요일 쓰레기 분리수거일에 만나는 이웃들의 표정을 살핍니다.

묵묵히 쌓아 놓은 유품같은 쓰레기들을 내 보내며 삶과 소비의 순환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뭉쳐지고 흩어지고 탄생하고 지구는 우리가 내놓은 플라스틱배설물을 자정시킬 능력을 언제까지 지켜내줄지 궁금한 날 이었습니다. 쓰레기의 분리수거, 존재가 해체되어 새로운 것을 탄생 되는 과정을 통해 소비적 사회를 들여다 보는 중입니다.  

 

#강인수 

시인. 한양여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고, 2022년 계간<문장>에 시 ‘부재 중’이 신인상으로 당선됐다. 당선작의 제목에서 오랜 기간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1999년 자카르타로 이주했으며 현재는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과 우리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데일리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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