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프리 샴수딘(Sjafrie Sjamsoeddin) 국방장관은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과 인도네시아 군사관학교(당시: Akabri) 졸업동기로 50년지기 친구이자, 현 정부의 실세로 알려져 있다. 인도네시아 내각에서 국방장관은 외교장관, 내무장관과 함께 ‘3대 핵심 장관’으로 간주된다. 이 세 장관은 대통령과 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국가 운영을 대신할 권한을 가지기 때문이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샴수딘 장관이 유능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국가와 국민에 대한 그의 충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중부자바주 마글랑의 사관학교 생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사람은 1974년에 함께 졸업했으며, 샴수딘은 이때 수석 졸업한 우등생이다.
샴수딘 장관은 1952년 10월 30일 남부술라웨시 마까사르에서 태어났다. 그는 2025년 10월 17일 74번째 생일을 맞은 프라보워 대통령보다 한 살 어리다. 사관학교 졸업 후, 샴수딘과 프라보워는 임관 후 인도네시아 육군 특수부대 코파수스(Kopassus)에 입대했다. 두 사람은 코파수스 소속으로 동티모르 등 여러 주요 작전에 함께 참여했다.
샴수딘은 동티모르, 아체, 이리안자야(파푸아) 등지의 반군 진압 경력을 갖고 있다. 그는 대통령 경호부대 빠스빰쁘레스(Paspampres) 사령관도 지냈으며, 1995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전 중 수하르토 대통령의 순방을 수행하며 안전을 책임졌다.
수하르토 대통령의 지근 거리에서 여러 해 근무한 뒤에도 샴수딘은 군 내에서 승승장구했다. △1995~1996년 수르야 끈짜나 군사지역 사령관 △1996년 수도영구주둔군 사령부 참모장 △1996년 자야 지역군(Kodam Jaya) 참모장 △1997년 자야 지역군 사령관(수티요소 사령관 후임), 이는 프라보워가 코파수스 사령관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샴수딘은 1998년 수하르토 대통령 퇴진 1년 전, 대규모 시위·폭동·약탈이 전국적으로 발생하던 시기 자카르타 지역사령관이었다.
여러 책과 증언에 따르면 그는 당시 혼란 속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불안을 억제해 낸 군 지휘관으로 묘사된다. 그는 자카르타 전역에 병력을 배치해 치안을 유지하고, 취약 지역에 병력을 집중 배치했다. 심지어 직접 부하들과 함께 순찰에 나서 도시의 안전을 점검하기도 했다.
수하르토가 1998년 5월 21일 사임한 뒤에도 그는 다음과 같은 요직을 거쳤다. △인도네시아군(TNI) 총참모장의 영토 담당 보좌관
△TNI 사령관 특별보좌관 △TNI 사령관 특별보좌관 조정관 △TNI 정보국장, 2005년부터 2010년 군에서 퇴역할 때까지 그는 국방부 사무총장을 맡았다.
국방성은 2008년 11월 6일 국방부(Kementerian Pertahanan)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퇴역 직후인 2010년, 제6대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은 그를 국방부 차관으로 임명했고, 그는 2014년까지 차관을 맡았다. 2019~2024년 동안 그는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프라보워를 보좌하는 국방관리 보좌관으로 근무했다.
프라보워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그는 2023년 국방대학교(Defense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인도네시아 국방정책 관리에서 민군 협력 모델 개발”이며, 이 논문에서 그는 국가방위위원회 설립을 제안했다. 샴수딘은 국방 관련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고, 학문적 기반도 탄탄하다. [데일리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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