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 대신 '제도 개혁'... 하비비 시대 재조명
조연숙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장
인도네시아 제3대 대통령 바하루딘 유숩 하비비(1936~2019)는 흔히 ‘과도기 대통령’으로 불린다. 그는 1998년 5월 21일부터 1999년 10월 20일까지, 약 1년 5개월, 정확히 517일 동안 재임했다. 수하르토 체제 붕괴 직후의 혼란을 관리하다 물러난 인물로 간단히 정리되곤 하지만, 이 짧은 기간만을 이유로 그의 통치를 축소하는 평가는 인도네시아 민주주의의 출발점인 '개혁시대'를 놓치게 만든다. 하비비의 통치를 관통하는 질문은 분명하다. "안정을 택할 것인가, 제도 개혁을 택할 것인가."
위기 속에서 출발한 517일의 정부
32년 철권 통치자 수하르토가 퇴진한 직후 1998~1999년 인도네시아 사회는 안정이 무엇보다 절실해 보이던 시기였다.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통화 가치는 급락했고, 대규모 시위와 정권 교체가 동시에 진행됐다. 국가 운영의 연속성 자체가 위협받던 상황이었다. 당시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던 한인 교민들에게도 이 시기는 불안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치안과 환율, 제도 공백 속에서 일상과 생업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환경 역시 녹록지 않았다. 하비비는 수하르토의 후계자로 지명됐지만, 구체제의 정당성과 개혁 세력의 요구 사이에서 끊임없이 시험받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강한 통제로 안정을 확보하거나, 혼란을 감수하고 제도를 여는 것 중 하나였다.
언론·정당·선거, 민주화의 최소 조건을 열다
하비비는 통제를 강화해 단기적 안정을 확보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재임 기간 동안 민주화로의 이행, 즉 개혁(Reformasi) 과정에서 핵심적인 제도 개편을 단행했다. 정치범 문제를 공식 의제로 다뤘고, 언론 허가제를 폐지하며 언론 자유화를 추진했다. 이는 수하르토 체제하에서 억눌려 있던 공론장을 다시 여는 조치였다.
또한 정당 설립을 허용해 다당제 정치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골카르(Golkar)당 출신이라는 정치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당 개혁과 정치 경쟁의 틀을 복원하려 했다. 이후 총선과 권력 교체가 가능해진 구조는 이 시기의 결정 위에서 형성됐다.
중앙은행 독립과 인권 문제의 제도화
금융 분야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이전까지 행정부에 크게 종속돼 있던 인도네시아 중앙은행(Bank Indonesia)의 독립성을 강화하며 통화 정책의 제도적 기반을 정비했다. 이는 위기 국면에서 즉각적인 성과를 내기보다는, 시장 신뢰와 제도적 안정성을 회복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인권 문제 역시 외면하지 않았다. 개혁기 과정에서 발생한 개발 명목의 폭력과 인권 침해를 정부 차원에서 인정했고, 특히 1998년 5월 사태 이후 불거진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에 대응해 여성국가위원회(Komnas Perempuan)의 요구를 수용했다. 이는 사회적 상처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의 책임으로 끌어올린 조치였다.
동티모르, 국가 감정을 넘는 선택
하비비 평가에서 가장 논쟁적인 사안은 단연 동티모르 문제다. 그는 1999년 동티모르에서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이는 인도네시아 내부에서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국가 통합은 다수 인도네시아인에게 감정적·역사적 사안이었고, 분리는 곧 상실로 받아들여졌다.
인도네시아 한인사회 역시 이 결정의 파장을 직접 체감했다.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의 흐름에 맞춰 동티모르 독립을 사실상 지지하자, 교민들 사이에서는 불안이 확산됐다. “한국인이 인도네시아 분열을 지지한다는 오해를 받는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가 공유됐고, 일부 교민들은 비난이나 물리적 충돌 가능성까지 걱정했다.
이러한 위기감 속에서 당시 재인도네시아 한인회는 교민 모금을 통해 조선일보에 전면 광고를 게재하며, '동티모르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 인도네시아 거주 교민들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만큼 당시의 혼란은 컸고, 안정은 추상적 가치가 아니라 현실적인 생존의 문제였다.
하비비는 이 같은 사회적 반발을 알면서도 결정을 미루지 않았다. 중국계(화인) 차별 문제와 중국계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정치를 제도와 인권의 문제로 다뤘다. 동티모르 문제 또한 해결되지 않으면 인도네시아의 여정에 ‘가시처럼’ 남을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오늘의 인도네시아 정치에 던지는 질문
하비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되는 지점은, 그가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517일이라는 한정된 시간을 부여받았고, 그 기간 동안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다. 안정의 관점에서 보면 그의 선택은 위험했고, 실제로 사회적 긴장을 키웠다. 그 비용은 인도네시아 사회 전반과 그 안에 살던 한국인 공동체에게까지 전가됐다.
그러나 제도의 관점에서 보면, 하비비는 인도네시아 민주주의의 최소 조건을 마련한 대통령이었다. 언론 자유화, 다당제 도입, 동티모르 독립 투표는 모두 개혁의 핵심 요소였고, 이후 인도네시아 정치가 되돌릴 수 없게 된 기준선이 됐다.
오늘날 인도네시아는 다시 효율, 속도, 강한 리더십을 강조하는 정치 국면에 들어서 있다. 정치적 안정과 국가 전략이 전면에 등장할수록, 제도와 인권, 견제와 균형은 종종 부차적인 문제로 밀린다. 이런 시점에서 하비비 시대를 돌아보는 일은 단순한 역사 평가가 아니다. 안정이 제도를 압도할 때 무엇이 사라지는지를 상기시키는 작업이다.
하비비는 완성형 지도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가장 불안정한 순간에 안정을 미루고 제도를 택한 대통령이었다. 인도네시아 한인사회가 겪었던 불안의 기억까지 포함해 평가할 때, 그의 517일은 인도네시아 민주주의의 '덧붙여진 기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다. 오늘의 인도네시아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그 선택은 다시 읽힐 필요가 있다. [데일리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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