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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소리와 색깔

기사입력 2012.02.2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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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온 성급한 여름을 맞아 감나무 연두색 잎이 점차 옅은 초록으로 변해 가는 작은 마당이 있다. 꽃이 떨어지고 애기 손톱만한 단감이 매달려서 먹게 될 때까지 커가는 과정을 아침저녁으로 지켜보노라면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어떻게 지나가는지를 잊어버리게 된다

일 년에 한두 차례씩 구청에서 정화조(
淨化槽)를 청소하라는 쪽지가 날라 온다. 며칠을 미루다가 장가든 자식놈을 앞세워서 마당의 흙을 이리저리 제치고 정화조 뚜껑을 열기 쉽게 손질해 놓았더니, 안식구가 나서서 대견스러워 한다. “아들 장가보냈더니, 아버지가 혼자 하시던 집안일을 다 거든다.”, 며느리 불러다가 감나무 밑에서 고기를 구워야겠다고 한다. 그러자 자식놈은 인분 냄새가 물씬 나는 정화조를 옆에 두고 고기를 굽겠다고 하느냐고 투덜거린다. 그렇게 안식구와 자식놈은 잘 다툰다

주인 없는 동네 고양이가 마당에 똥을 싸고 살짝 모래로 덮어 놓는 것이나, 밖으로 쫓아 내려고 소리를 질러도야옹거리며 도전적인 포즈를 취한다고 질색하는 엄마에게 생선이나 닭 뼈다귀를 쓰레기통에 쏟아 넣지 말고 배고픈 고양이들이 뜯어 먹도록 마당 한 귀퉁이에 놓아두면 좋지 않겠느냐고 하는 녀석이다

삼억이가 생각난다. 삼억이는 우리 집 마당에서 일 년 남짓 살다가 가출한 개 이름이다. 벌써 사오년 전에 후배가 줬다며 진돗개와 풍산개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두 달된 강아지를 자식놈이 안고 왔다. 엄마는 당연하게 아연실색했다. 개똥 치우기와 먹이 대기가 힘들고, 쉴 새 없이 털을 날리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삼억 원을 준대도 개 키우기는 싫다고 해서 자식놈이 붙인 이름이 삼억이다. 그런 삼억이는 통 짖지를 않았다. 엄청나게 많이 먹고 빨리 자라서 일 년이 채 되지 않아서 싸움개만큼 커버렸다. 힘도 엄청나게 좋아서 어쩌다가 밖으로 나가면, 끌려 다닐 정도였다

그런데 이 녀석이 어쩌다가 치명적인 심장사상충에 감염되고만 것이다. 곧 식욕을 잃고 잠만 잤다. 우리 식구들은 모이기만 하면, 삼억이가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고민했다. 잘 싸서 고향집 마당가에 묻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식구가 외출을 하기 위해서 마당에서 혼자 놀라며 목 끈을 풀어 놓고 대문을 여는 순간 눈 깜빡할 사이에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후 사흘 동안 대문을 열어 놓고 잠을 설치며 기다렸지만, 삼억이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삼억이의 빨강색 목 끈은 주인을 기다리며 아직도 감나무 가지에 걸려 있다

우리는 개 짖는 소리를멍멍이라고 표현한다. 일본과 중국에서 개는왕왕(
汪汪)’하고 짖는다. 이에 대한 영어권의 의성어(擬聲語)바우와우(bow-wow)’이다. 독일 개는바우바우(wau-wau)’라고 굵게 짖고, 프랑스 개는우아우아(wouaf wouaf)’로 조금 더 섬세하게 짖는다. 유럽에서 개는 대체로 믿음의 상징이다. 개 짖는 소리를왈왈(wal-wal)’이라고 표기하는 크로아티아나아브아브(av-av)’로 듣고 있는 이웃 나라 세르비아는 각각개는 믿음을 논하지 않는다거나개처럼 믿음직스럽다는 속담을 가지고 있다

동부 유럽의 폴란드인들은 개가 아우아우(au-au)하고 짖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루마니아로 가면 개는함함(ham-ham)’하고 짖는다. 동남아에서 개 짖는 소리는 더욱 흥미롭다. 태국에서는 개가 홍홍(hong-hong)하고 짖고, 인도네시아에서는 개 짖는 소리를 공공(gonggong)한다고 표현한다. 그래서개가 짖다는 표현을안징 멍공공(Anjing menggonggong.)’이다. 종족마다 말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먹는 것도 다르고, 사람에 따라서 같은 소리도 다르게 들린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로 영어 연수를 갔던 자식놈이 주말을 맞아 동료들과 함께 반도 북부의 작은 마을을 찾았다. 그 마을은 유독 닭이 많았다고 했다. 닭 우는 소리는 우리나라에서 익히 들어 온 대로꼬끼요가 분명했다. 그런데 현지인들에게 닭 우는 소리를 물었더니꼬떽(kotek)”이라고 표현했다. 함께 여행을 간 한 여학생이 닭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울먹이는 표정을 하여 그 이유를 물었다. 서울에 있는 엄마가 보고 싶은 이 여학생의 귀에는 닭 울은 소리가엄마야로 들렸던 것이다

▲ 자카르타의 황혼



색깔은 어떨까. 색깔은 인간에게 소리 보다 더 변화무쌍하다. 이 세상에는 인간이 구별할 수 있는 약 500만 가지의 색상(
色相)이 존재한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또한 색깔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두뇌(頭腦)로 본다는 것이다. 같은 사물이라도 포식(飽食)한 사람과 며칠씩 굶은 사람이 보는 것이 같지 않음도 이 때문이다

우리가 늘 보고 느끼는 우리나라의 자연경관은 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아름답게 바뀐다. 색깔도 유화(
油畵)처럼 강하지 않고, 수채화(水彩畵)처럼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그러나 상하(常夏)의 나라 인도네시아의 경우에는 모든 색깔이 매우 진하고 강열함을 알 수 있다. 우선 모든 수목(樹木)이 진한 초록색이다. 석양(夕陽)은 핏빛처럼 선홍색이고, 식생활과 가장 밀접한 야자 속살은 눈처럼 하얀색이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를 비롯하여 열대지역에서는 음료수 색깔은 모두 원색(
原色)에 가깝다. 망고 주스처럼 진한 노랑색이 있는가 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탄산음료 중의 하나인 환타(Fanta)가 인도네시아에서는 빨강색이나 진한 보라색이 많다.  

뇌로 보는 색깔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태양 광선이다. 이 태양 광선은 굴절(
屈折) 각도에 따라 다양한 색깔을 나타낸다. ‘빨주노초파남보로 초등학교 시절에 배운 무지개 색깔이 그것이며, 이를 이용한 광학기구가 다양한 형태의 프리즘(prism)이다. 프리즘은 정삼각형 형태(삼각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직각형도 있고, 정오각형도 있고, 지붕 모양의 프리즘도 있다. 그래서 지구의 위도(緯度)에 따라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보고 느끼는 색깔이 다르게 된다

적도의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며칠을 지내다 보면, 여명(
黎明)이 짧고 저녁에 어둠이 갑자기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곳의 저녁노을이 핏빛에 가까운 진홍색이고 석양(夕陽)을 가리는 구름 또한 진한 검정색이어서 처음 보는 이들을 공포스럽게 한다. 지난 1980 4월 강원도 사북 탄광촌에서 광부들의 총파업 사태가 일어났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당시 현지 르포기사를 쓴 한 신문은 사북의 아이들은 시냇물을 검정색으로 칠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러므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선홍색의 석양 하늘을 장식하는 검은 구름을 아름답게 볼 것이 분명하다. 색깔은 향기이며 삶의 전부이며, 그리고 신비(神秘)함 그 자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인도의 카스트제도(the Caste System)는 사성제도(
四姓制度)를 바탕으로 하는 극단적인 세습적 신분제도이다. 인도에서는 이를 바르나(Varna)라 칭하는데, 바르나는 다름 아닌색깔이라는 뜻이다. 바르나의 최상위 계급은 브라만 (Brahman: 婆羅門)이라 칭하는 승려 계층이다. 아직 신분제도가 단순하고 직업이 다양화되기 이전인 고대 바르나 사회에서 이들 승려 계층은 희생(犧牲)을 상징하는 오렌지 색깔의 옷을 입었다. 이것이 오늘날 남방불교문화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황색(黃色) 승복(僧服)의 기원이다. 브라만 다음으로 왕족이나 무인(武人)들이 크사트리야 (Ksatriya: 刹帝利)라는 계층을 형성하였으며, 그 아래 평민 계층인 바이샤 (Vaisya: 吠舍)와 노예 계층인 수드라 (Sudra: 首陀羅)가 있어서 고대 사회에서 모두 다른 색깔의 옷을 입게 하였다

고대 인도에서 신분을 구분하던 바르나(varna)가 동남아의 인도 문화권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그리고 남부 필리핀에서는 단순한 색깔을 의미하는 단어인 와르나(warna)로 정착되었다. 고유명사가 보통명사화 한 것인데, 이런 예는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문화(
文化) 전이(轉移)의 선봉에는 언제나 문화어휘(cultural vocabulary)가 있었다. 색깔로 사회계급을 구분하던 인도의 카스트제도가 동남아로 소개되면서, 제도는 적응을 하지 못하였으나 제도를 뜻하는 어휘는 남게 된 것이다

이처럼 색깔은 상징성을 지닌다. 인류 역사를 장식한 수많은 종교문화는 색깔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불교에서 빨강색은 탄생을 의미한다. 실용적인 북방불교의 번영지인 중국대륙에서 중국인들이 빨간 색깔을 선호하는 까닭은 탄생에서 번영으로, 다시 정열과 행운을 상징하는 의미로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 한국을 방문한 나이 많은 중국관광객들은 거리를 메운붉은 악마의 거대한 함성에 깜짝 놀랐다. 이들은 지난 1960년대 후반 중국대륙을 휩쓴 문화대혁명의 전위세력이었던 홍위병(
紅衛兵)의 붉은 파도는 붉은 악마에 비하면잔잔한 물결이었다고 표현했다

초록색은 알라(Allah)의 상징이자 이슬람의 상징이다. 중동의 척박한 사막지대에서 발흥(
發興)한 이슬람국가들이 염원하는 것은 진한 초록색의 오아시스가 분명하다. 리비아의 지도자 카다피(Muammar al-Qaddafi)는 지난 1984년 총 공사비 400억 달러를 투입하여 2013년까지 30년에 걸쳐 5,524km에 달하는 대수로(大水路)공사를 착수하면서, 이를녹색혁명(Green Revolution)’이라는 국책사업 명칭을 부여하였다. 원유가 고갈되기 이전에 전국토의 90%에 달하는 사막지대를 초록색의 옥토(沃土)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초록색은 알라와 이슬람세계의 상징 일뿐 아니라 유럽이나 중국에서도 성장(成長)을 상징한다. 가장 짧은 시간에 확인할 수 있는 성장은 녹색식물이 아닌가

기독교의 색깔은 하늘의 색깔인 푸른색이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는 항상 푸른색 옷을 입고 있다. 11세기 말부터 13세기 후반에 걸쳐 200년 동안 유럽의 기독교도들이 예루살렘(Jerusalem)을 회복하기 위해서 이슬람교도를 상대로 여덟 차례에 걸쳐 대회전(
大會戰)을 치렀다. 이 때 기독교도 종군자들은 푸른색의 십자가 기장(記章)을 가슴에 달아 후세가 십자군전쟁(Crusade: 1095-1270)으로 명명하게 된 것이다. 이 푸른색은 보라색으로 발전하여  ()의 색깔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기독교 문화권에서 각종 종교적 의식(儀式)을 행할 때 일반 백성들과는 차별적으로 국왕이나 고위 성직자들은 보라색 유니폼을 입고 있다

우리는 백의민족(
白衣民族)이라 하여 순수함을 상징하는 흰색 옷을 즐겨 입었으며, 고대 이집트에서 검정색을 신적인 존재와 연관 시켜 재생(再生)과 부활(復活)의 의미를 담았다.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도 가장 흔한 색깔은 당연하게 초록색이다. 이슬람계 정당들이 선거 캠페인을 하는 날이면 거리는 온통 초록색 깃발로 뒤덮인다. 이때가 되면 거리의 냄새까지도 초록색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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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국내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있는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이 있다. 15권으로 된 이 책은 시오노 나나미(
鹽野七生)라는 일본 여류작가(1937년생)가 쓴 것으로 세계적인 명저(名著) 반열에도 올랐다고 한다. 로마인 이야기의 주제는왜 로마인들만이 민족과 종교를 넘어서 거대한 보편적(普遍的)인 제국(帝國)을 건설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로마제국(Roman Empire) BC753년에 건설되어 AD565년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황제가 사망할 때까지 1300년이나 존속한 대제국이었다.


로마인 이야기의 압권(
壓卷)은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BC100-BC44)가 등장하는 제4권이라고 한다. 카이사르는 BC49년 루비콘(Rubicon)()을 건너 군권(軍權)을 쥔 채 로마로 진격하면서 부하들에게주사위는 던져졌다(Alea jacta est)’고 외친 일화로 유명하다. 로마인 이야기에서 카이사르는사람들은 세상을 다 보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말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거대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지 않은 것까지도 볼 수 있는 지혜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힘 주어 말하고 있다.                          

글: 양승윤 교수 (한국외대 동남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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