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와르뜩과 루마마깐 미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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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르뜩과 루마마깐 미낭

기사입력 2012.04.2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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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음식문화는 종족적 특성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미낭(Minang)으로 약칭하는 수마트라의 미낭까바우 족과 쟈바 소수 종족의 하나인 뜨갈(Tegal) 사람들은 각각 루마마깐 미낭(rumah makan Minang)과 와르뜩(warteg)이라는 독특한 음식점을 인도네시아 전역에 열고 있다. 루마마깐은 음식점이라는 뜻이고, 와르뜩은 뜨갈(Tegal) 사람들의 와룽(warung/가게)이라는 뜻이다.

미낭 사람들은 중서부 수마트라에 집중적으로 군거(群居)해 왔다. 이들은 지리적으로 수마트라 동부의 말라카 해협과 쟈바의 북부에 위치한 쟈바 해(Sea of Jawa)가 중심인 인도네시아 역사의 변방에 위치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지리적인 악조건을 딛고 모계사회(母系社會)를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았다. 쟈바의 대왕국인 마쟈빠힛(Majapahit) 왕국이 한 때 이곳의 중심지인 오늘날의 주도(州都) 빠당(Padang)을 석권했을 때, 전통적인 소(牛)싸움에서 언제나 미낭까바우의 작은 물소가 점령자들과 함께 들어온 쟈바의 큰 물소를 이겼다고 했다.

이에 따라, 미낭(Minang) 까바우(kabau)라는 종족명을 붙이게 되었는데, ‘미낭’은 ‘므낭’(menang: 승리하다)에서, ‘까바우’는 ‘끄르바우’(kerbau: 물소)에서 진화(進化)한 단어이다. 모계사회의 남자들은 모두 전투와 사냥에 동원되고, 집안 경제와 육아는 전적으로 여자들의 몫이다. 이들의 음식문화도 이런 틈새에서 나왔다. 요즘도 미낭까바우의 전통 마을에서는 집안에는 여자들과 어린 아이들뿐이고, 성인 남자들은 수라우(surau)나 마드라사(madrasah) 같은 이슬람 사원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이에 비해서, 뜨갈은 중부 쟈바의 북부 해안 도시로 스마랑(Semarang)과 찌르본(Cirebon)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해안을 잇는 철도가 이곳을 경유하며, 인근에 해발표고 3,418미터의 슬라멧(Slamet) 화산이 있다. 뜨갈 사람들은 예로부터 어부(漁夫)이거나 소규모 무역상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곳은 과거 식민지 시대에 주석(朱錫) 수출항으로 손꼽혔지만, 바타비아(Batavia)가 개항(開港)하면서 뜨갈 항구의 기능이 크게 위축되었다. 바타비아는 오늘날의 수도 쟈카르타(Jakarta)인데, 네덜란드가 식민통치의 거점으로 건설하고 육성하였다. 오늘날 뜨갈 항에서는 수공예품과 코프라(copra) 같은 농작물을 수출하고 있다. 카부빠뗀(kabupaten)이라하여 우리나라의 군청(郡廳) 소재지인 뜨갈은 여타의 쟈바 북부 해안 도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도시와 경제규모에 비해서 인구가 많이 집중되어 있다. 일찍부터 먹고 사는 문제가 당면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루마마깐 미낭은 우선 식사 분위기가 산뜻하고 음식이 정갈하며 맛있다. 다양한 반찬을 주문하지 않아도 식탁 위에 죽 늘어놓는다. 반찬 접시가 많다보니, 더러는 접시와 접시 사이에 포개 놓기도 한다. 모두 다 맛있으니, 마음대로 골라 드시라는 뜻이다. 대개는 두 조각씩인데 한 조각만 먹으면, 반값만 내면 된다. 국물을 찍어서 맛을 보는데, 쟈바에서는 새끼손가락을 쓰지 않고 검지를 쓴다. 이곳 사람들은 새끼손가락을 사용하면, 가난해진다는 속설(俗說)을 믿고 있다.

▲ 자료사진: 빠당음식점 전경



죡쟈카르타 같은 대학 도시에서 돈 없는 대학생 녀석들은 데이트를 할 때, 한두 가지 반찬만 선택하고 다른 접시에 담긴 반찬의 액체(국물)를 수저로 떠다가 밥을 먹기도 한다. 루마마깐 미낭은 좋은 쌀로 밥을 짓는 것이 또 다른 특징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당연하게 밥값이 비싸다. 작은 대나무 소쿠리에 바나나 잎을 깔고 밥을 퍼 담아 내온다. 와르뜩의 가장 큰 특징은 싸다는 점이다. 우선 값싼 쌀로 지은 밥을 손님 마음대로 접시에 퍼 담을 수 있다. 반찬이라야 서너 가지로 가정식 백반 수준이다. 그러나 일인당 6천~7천 루피아면, 가난한 이들의 허기진 배를 가득 채울 수 있다.

루마마깐 미낭과 와르뜩의 공통된 점은 모두 장사가 잘된다는 점이다. 루마마깐 미낭은 중산층 이상의 손님이 찾아오고, 와르뜩은 하류층이 주요 고객이다. 먹고 난 후, 종업원이 빈 접시를 세어 가며 밥값을 계산하는 미낭 음식점은 대상 손님과 시간대에 따라 가격이 조금씩 다르다. 이를 테면, 성인 남자끼리 손님이 뜸한 시간대에 식사를 하면 계산이 적게 나온다. 그러나 연인끼리 데이트 중이거나 주말을 맞아 가족 전체가 함께 식사를 하면 식사비용이 조금 다르게 나온다. 반찬값을 시비할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 더 붙이는 것이다.

정갈한 미낭 음식점에 비해서 와르뜩은 깨끗하지만 허름하다. 반찬 진열대 앞에 식탁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의자를 이동하여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새로 들어오는 손님은 의자만 하나 가져 와서 같은 식탁에서 식사한다. 쟈카르타 같은 대도시의 와르뜩은 도시 건설 노동자들이 고객인데, 식사 후에 한 귀퉁이에서 한 숨 잘 수도 있다. 여러 차례 우려낸 미지근한 값싼 차(茶)와 한두 개피씩 떼어 파는 독한 담배가 포식(飽食)한 이들의 후식으로 준비되어 있다.

미낭 음식점이나 와르뜩의 밥과 반찬은 어디를 가나 거의 같다. 그러므로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식사 시간대가 되면, 이들 두 음식점은 언제나 손님이 많다. 와르뜩이나 루마마깐 미낭은 그 자체로 상표(商標) 역할을 하는 셈이다. 
 
수마트라와 쟈바를 대표하는 미낭 음식점과 와르뜩은 나름대로의 특색 있는 반찬을 만든다. 뜨갈 사람들의 반찬은 주로 야채류인데, 채로 썰어 기름에 살짝 볶아내는 데, 이를 오셍오셍(oseng-oseng)이라고 한다. 야자의 하얀 속살(果肉)을 조미료 대용으로 쓰지 산딴(santan)을 많이 쓰지 않는다. 음식도 달달하기는 하지만, 죡쟈카르타 같은 쟈바 내륙 지방처럼 달지는 않다. 와르뜩에 있는 반찬은 어떤 것이든지 외양(外樣)과는 달라서 대개 맛이 있다.

이에 대해서 산탄을 많이 쓰는 미낭 음식은 시각적으로 카레를 많이 쓴 것 같아 보인다. 실제로 인도양에 접해 있는 서부 수마트라는 인도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음식문화도 예외가 아닐 것이 분명하다. 수많은 반찬이 모두 나름대로의 특색이 있고 맛깔스러우며, 다소 맵고 짜다는 것이 미낭 음식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육류나 어류가 많고 야채류가 적다.

미낭 음식점에 등장하는 야채류 반찬은 세 가지 정도이다. 싱꽁(singkong) 잎과 어린 낭까(nangka) 열매 속살과 가지(terong belanda) 나물이 그것인데, 모두 먹을 만하다. 싱꽁은 카사바(cassava)를 지칭하는 표준인도네시아어 단어로 감자와 고구마 중간쯤 되는 줄기뿌리를 말한다. 싱꽁 잎사귀도 아주까리 잎처럼 식용으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 삶아서 쌈으로 사용한다.

낭까는 열대지방에서 열리는 가장 큰 과일인데, 고무향이 있고 값이 싸서 비싼 두리안(durian) 대신 먹기도 하는데, 어린 낭까의 속살로 반찬을 만든다. 미낭 음식에 왜 채류(菜類)가 적으냐고 물었더니, 야채는 값이 너무 싸서 약삭빠른 장사꾼에게 이익을 많이 남겨주지 않는다는 대답이었다. 

어떤 음식이 와르뜩과 루마마깐 미낭을 대표하는지 다수의 현지인들에게 물어 봤다. 와르뜩은 이깐 반뎅(ikan bandeng)이, 루마마깐 미낭은 른당(rendang)과 덴뎅(dendeng)과 아얌 굴라이(ayam gulai)라는 답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이깐 반뎅은 가장 싸고 가장 흔한 바다 생선이다. 어른 한 뼘쯤 되는 생선인데, 모양이 전어와 송어 중간쯤 되는 것 같다. 이것을 숯불에 굽거나 산딴을 조금 넣고 양념을 많이 풀어서 졸인 것이다. 와르뜩에서 수북하게 쌓인 밥 위에 한두 가지 야채 반찬과 함께 이깐 반뎅을 한 마리 얹으면, 가난한 도시 노동자들의 최고 식사 메뉴가 되는 것이다.

미낭을 대표하는 른당은 영락없는 쇠고기 장조림이다. 산딴을 많이 넣고 양념을 한 후 오래도록 졸려서 액체가 거의 없거나 아주 없게 만든 것인데, 쇠고기 대신 닭고기를 쓰기도 한다. 덴뎅은 소고기를 얇게 베어서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한참 두들기고 양념한 후 야자기름에 튀기거나 구운 것이다.

수퍼마켓에는 덴뎅 만들기 좋게 손질한 쇠고기가 많이 나와 있다. 한국인들의 술안주에 등장하는 육포 형태인데, 좀 더 두툼하고 육질이 부드럽다. 아얌 굴라이는 영계를 산탄을 많이 넣고 졸인 것이데, 매운 고추 양념을 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닭고기가 쇠고기 보다 상대적으로 싸고 흔하기 때문에, 아얌 굴라이가 가장 많이 팔린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수많은 중국음식점이 있지만, 정작 화상(華商)들이 직접 운영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이와 마찬가지로, 와르뜩이나 루마마깐 미낭은 장사가 잘 되다 보니까, 뜨갈 사람이나 미낭 사람이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이 같은 옥호의 음식점을 내고 있다. 루마마깐 미낭(rumah makan Minang)은 미낭(까바우) 사람들이 직접 영업을 하지만, 루마마깐 빠당(rumah makan Padang)의 경우에는 미낭 사람인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때때로 미낭 사람들은 타 종족과의 차별성을 위해서 두타 미낭(Duta Minang)이라 하여 대사(大使)라는 직함을 높임말로 미낭 앞에 붙이기도 한다.

중국 음식점을 한국인이 운영하면서 화상(華商)이라는 명칭을 붙이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외지 사람들이 루마마깐 미낭을 옥호로 내걸지는 않는다. 많은 지역에서 같은 형태의 음식점을 내다보니까, 루마마깐 빠당이 더 많게 되었다. 빠당(Padang)은 서부 수마트라(Sumatra Barat)의 최대 도시이자 주도(州都)이며, 모든 미낭까바우 사람들의 정신적인 고향이다.

인도네시아 음식 맛에 대해서 ‘나 만큼 아는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가쟈마다대학의 목타르 교수(Prof. Dr. Mohtar Mas'oed)는 3대 미낭 음식으로 른당(rendang) 이외에 아삼 빠데(asam padeh)와 아얌 칼리오(ayam kalio)를 들었다. 아삼 빠데는 산딴을 적게 넣은 새콤한 맛의 생선요리이고, 아얌 칼리오는 산딴을 듬뿍 넣어 조리한 닭고기 요리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사회적 계층이 있게 마련이고, 이들 간의 화합과 갈등구조가 역사 발전의 중요한 변수의 하나로 등장한다. 뜨갈 사람들을 죡쟈카르타(Yogyakarta)나 수라카르타(Surakarta) 또는 말랑(Malang) 같은 중부 쟈바의 내륙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상스럽고 배우지 못한 장사꾼’으로 본다. 어부였거나 무역상인 출신인 이들이 격식 없이 누구하고나 잘 사귀고 친하게 지내는 것을 얕보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뜨갈 등 쟈바 북부 해안 도시의 사람들은 내륙 사람들을 ‘밑천도 없으면서 격식이나 차리는 속이 텅 빈 양반’ 정도로 평가하고 있다.

미낭까바우는 수마트라의 여러 종족 중에서 가장 전통을 중시하고 격식을 차리는 사람들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이들의 음식문화는 이러한 종족적 특색을 바탕으로 하여 전승(傳承)되었다.

글: 양승윤 한국외대 교수(동남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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