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기행] 그곳에 가면 길을 잃어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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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 그곳에 가면 길을 잃어버리고 싶다

기사입력 2012.05.07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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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니문화연구원 210– 212회 문화탐방기 2012년 4월17일(화)~19일(목)
-자바의 스위스 Ciwidey-Garut 편-
글 : 이인상 (전 자동차학과교수 / 현 찌까랑 한인회교육위원장)

이 세상은 책이다. 여행을 하지 않은 사람은 한 페이지만을 계속 보는 사람과 같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29명의 회원들이 문화연구원에서 아침 6시에 버스를 타고 “자바의 스위스”라고 하는 찌위데이와 가룻(Ciwidey-Garut) 탐방여행길에 올랐다.

천사가 하강했다는 전설이 있는 옥빛 유황 호수의 분화구(Danau-Belerang)와 자연호수, 살아 숨 쉬고 있는 화산, 길을 잃어버리고 싶은 안개 속에 끝없이 펼쳐지는 차 밭, 산자락에 감도는 한가한 삶의 가락이 느껴지는 용의 마을. 또한 가룻 국립묘지에 묻힌 긍지의 한국인이자 인니의 영웅인 “양칠성 님”을 참배할 예정이며, 그리고 자연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토속 풍습과 문화를 같이 하며, 대나무공예품 및 가죽제품 생산 중심지를 둘러 볼 것이다.

첫째 날
자카르타 고속도로 135Km쯤 지나 꼬뽀(Kopo)시내로 접어들어 첫 번째 방문지인 찌위데위(Ciwidey)로 향하였다. 드디어 신이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옥빛의 신비를 보여 주는 분화구 까와뿌띠(Kawah-Putih)는 아무리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곳 이다.

해발 고도 2,500m 빠뚜하 산(Patuha)에 위치한 까와뿌띠는 해발고도 2,434m이다. 강처럼 파노라마로 보이는 호수로서, 호수 주변의 하얀 모래는 마치 옥구슬이 쌓여 있는 것으로 착각되며, 이 옥빛 분화구를 “흰 분화구”라고 부른다.

▲ 까와뿌띠


그러나 청정한 옥빛의 여유와 신비로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과 일제 강점기 때에는 이곳 유황으로 많은 약재를 만들었으며, 지금은 유황을 채취하던 동굴이 폐쇄된 채 아픈 과거 얘기를 뒤로 하고 다음 장소인 지독한 사랑 이야기가 있는 연인들의 장소인 “시뚜 빠땡안”(Situ Patengan: “그리움에 서로를 찾는 호수”라는 뜻)으로 향하였다.

이곳은 까와 뿌띠(하얀 분화구)에서 해발 1,200m 정도 내려와 1600m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는 길에 차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오늘 따라 대나무 광주리를 메고 찻잎을 따는 여인들의 순박한 미소를 볼 수 없는 서운함과 이곳 차 맛을 음복할 수 없음에 다수(茶壽)에 숨어 있는 숫자(108)가 더욱 아쉬움만을 더 하게 했다.

시뚜 빠땡안은 하트 모양으로 잔잔한 수면을 보면 지독한 사랑의 전설이 떠오른다. 릉가니스 여신과 인드라자야 왕자(Rengganis- Indrajaya)는 신들과 왕실의 반대로 떨어져 70여년을 그리워하며 지내다 운명적으로 이곳에서 만나 호수 가운데 있는 섬에서 70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섬 가까이 있는 물밑에 잠긴 바위 아래 부분은 두 개로 나뉘어져 있는 “사랑의 바위”로 못 다한 사랑을 영원으로 승화하여 지금도 많은 연인들이 찾고 있는 호수이자 데이트 장소이다.

오전에 한껏 채운 낭만적인 노래하는 시인 같은 순례자로 재충전한 우리들은 가룻의 명소 8세기에 세워진 “짱꾸앙 사원”(Candi Cangkuang)으로 가기 위하여, 동네 입구에서 4여명이 타는 마차인 안동(Andong)을 타고, 또 라낏(Rakit)이라 불리는 대나무 뗏목으로 갈아타야 했다.

재미있는 것은 라낏을 타니 자카르타 버스 속에서 볼 수 있는 거리의 악사(Pengamen) 네 명이 허름하고 아주 오래된 기타와 PVC 파이프에다 고무로 씌워 만든 드럼(?)으로 뗏목 물결에 따라 구슬프게, 때에 따라 온 몸으로 부르는 가락 속에 배가 닿은 곳은 짱꾸앙 힌두사원이었다.

바로 옆에 자바지역 이슬람 첫 순교자 “아리프 무함뭇(Arif Muhammad)의 묘지”가 있는 곳 이었다. 두 종교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 모습에서 낯설지만, 항상 이방인에게 미소로서 대하는 포용성의 의미를 알게 하는 것 같다.

어느 듯 햇님은 작별인사를 재촉할 때, 연못가에 지은 방가루식 숙소인 호텔 깜뿡 산삐운(Kampung Sampieun)에서 늦은 저녁 식사를 하였다. 오늘 다녀 본 풍경을 무수히 별이 쏟아져 내리는 연못에 한 아름 풀어놓고, 잠의 여신과 함께 꿈속으로...

▲ 깜뿡 삼삐운 호텔



둘째 날
오늘은 산 등정을 위하여, 완전 무장을 하고, 서부자바 자연의 불가사의(不可思議)중 하나라고 하는 “빠빤다얀 화산(Gunung Papandaya)”으로 향하였다. 화산의 높이는 2,665m로 1722년부터 최근 2002년까지 수차례 폭발하여 많은 희생자를 내고 있는 증기 폭발 화산이다. 정상까지 왕복 등정시간을 3시간 정도로 잡고, 오르기 시작하여 분화구가 가까울수록 유황가스 냄새는 코를 가려야 할 정도였다. 분화구 1m 근처까지 접근할 수 있는 곳이며, 또한 여러 개의 작은 분화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위험하다는 생각보다는 신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이곳에 있는 우리들은 속물이 아닌 신선인(神仙人)이 된 것 같았다.

2002년 폭발해서 생긴 칼데라호수(15m X 25m)는 초록색이었다. 건기 때는 빨간색 때로는 흰색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화산 폭발로 인해 검게 탄 나무를 보며 흘러내리는 유황 온천수에다 손을 담그고, “자연과 신의 세계가 주는 위대함”을 맛볼 수 있었다. 살아 숨 쉬고 있는 지구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등정을 마치고, 점심은 현지 전통 음식점에서 어제 사 온 고랭지 양배추를 곁드려 맛있게 먹고, 가룻 시내에서는 특산물인 바틱 공장과 가죽가게, 한국의 양갱같은 도돌(Dodol)과자 가게를 쇼핑하였다

오후에는 땐졸라야 영웅묘지(Makam Pahlawan Tenjolaya)에서,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영웅 조선인 양칠성 님(1919~1948. 08.10.)이 잠들어 있는 곳을 참배하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교과서에도 수록된 님은 종전 후에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인도네시아에서 네덜란드의 재식민지화 정책에 맞서 조선인으로서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에 참가하여 반둥 남부 지역의 네덜란드 군에게 큰 타격을 주는 독립군 “빵에란 빠빡(Pangeran Papak) 부대의 대원으로 가장 용맹스럽고 용감한 투쟁 용사였단다.

▲ 양칠성 묘지


항상 선두에 서서 혁혁한 공로를 세웠으나, 양칠성 님을 짝사랑했던 여인의 밀고로 1948년 부대원들과 함께 가룻 갈룽궁(Galunggung) 산 속에서 네덜란드 군에 체포돼 이듬해 1949년 8월10일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총살되어 일반인 공동묘지인 ‘빠시르뽀고르’에 안장하게 된다. 수하르토 대통령 당시 외국인 독립영웅으로 추서되어 1975년 11월19일 비운의 전사(戰士) 님은 26년이 지난 후에 비로소 가룻 영웅 묘지에서 영원히 다시 살아 난 것이다. 특히 해외로 나와 사는 사람은 조국에 대해 애국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는 데, 한국인의 얼, 혼, 넋을 새긴 이 묘비의 글씨가 보이지 않아 안타까움을 더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시내 찌빠나스(Cipanas)에 있는 띠르따강가(Tirtagangga)호텔에서 야외온천욕을 만끽하고 숙소로 돌아와 호텔 종업원들이 뱃놀이하면서 들려주는 노래 가락 속에 밤 깊어 가는 줄 모르고, 방마다 웃음꽃을 피웠다.

셋째 날
벌써요~? 오늘 돌아가야 되냐“ 고 불평하며 서로에게 묻는다. 아침식사를 하고 호텔에 준비된 대나무 뗏목을 타고, 다시 올 것을 기약하며 고대인의 종이 파피루스 나무와 금붕어에게 인사하면서 사진기에 추억의 장을 담았다.

버스에 올라 ‘깜뿡 나가(Kampung Naga) 용의 마을’로 향하였다. 가룻 시내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따식말라야(Tasikmalaya) 시와 가룻을 잇는 국도변 에 위치하며, 옛 이름은 산 주위에 있는 마을’이란 뜻의 “깜뿡 나가 까위(Kampung Naga Kawi)로 향하였다. 원시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며 자신들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주민 312명이 문명적 전기까지도 거부하면서, 가옥은 109채, 모스크가 하나 있고, 공동 빨래터(화장실 겸용)와 젊은이가 이방인과 결혼을 하면 마을을 떠나야하는 이곳 사람들의 전통생활 양식 풍습이다.

▲ 깜뿡 나가



주민들은 대부분은 100년 전 마따람(Mataram)에서 온 이슬람교도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마을 방문을 마치고, 가파른 경사를 하고 있는 계단 100여 계단을 오르는 동안 이곳 주민들이 즐겨먹는 사탕수수에서 채취하는 기관지 질환에 좋다는 음료를 오름 중턱에서 사서 마실 수 있어 갈증이 해소되었다.
 
오후 탐방지인 “까와 까모장 발전소”는 지열(地熱)을 이용하는 발전소이다. 가룻 시내에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곳으로서 까와 까모장(Kawah Kamojang) 분지에 올라서면 굵은 증기 배관들로 된 것을 목격할 수 있으며, 여기저기에서 하얀 수증기 같은 연기를 볼 수 있었다. 1928년 네덜란드 식민지 때 만들었으며, 지금은 국영석유공사에서 운영하며, 인도네시아 전력회사(PT. Indonesia Power)에서 배전하며, 발전량은 약 140MW이다. 안내해 준 발전소 직원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연구원 회원이 직접 만든 “한글 바틱”과 인삼차를 선물로 드렸다.

이 주위에는 약 20개가 넘는 분화구가 있으며, 그 중 4개의 큰 분화구는 반둥의 “땅꾸반 쁘라후(Tangkuban Perahu) 화산과도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차게 분출하고 있다. 활화산의 진면목을 아주 가까이서 느끼고 볼 수 있으며, 특히 우리가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기차 분화구“(Kawah Kereta Api : 깊이 60미터, 폭 6인치, 온도 140도)에서 우리들에게 온 힘을 다하여 담뱃불의 위력으로 수증기를 뿜어내어 보여 주던 중년 노인네가 인상에 남는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팀원 모두는 여행 탐험지에서 받은 정기로 인함인지 피곤함 없이 한 마디 한마디 소감을 얘기하였다. 이곳 인도네시아 생활이 남편, 자식의 직장 따라 온지 몇 개월도 되지 않았다는 새댁 같은 젊은 어머니부터 몇 십 년을 살고 있는 왕 언니까지도 문학 소녀가 되어 젊은 시절 애송하던 시를 낭송하면서, 탐방지 곳곳을 다시 그려보면서 얘기꽃을 피웠다.
또한, 가는 곳 마다 볼 수 있던, 전통 음식부터 신비스러운 정경과 대나무로 지은 숙소 등등을 카메라에 담아 친구들 그리고 집에 있는 식구에게 전송하는 마음에서 가족 사랑의 극치를 보았다.

회원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시는 박선이 문화탐방팀장님, 항상 넘치는 열정으로 탐방지를 엄정 선정하시여 우리들을 감탄케 하시는 사공경 원장님께 감사드리면서...
같이 하였던 팀원 여러분!!! 친구들이여!!! “늘 푸르롭고 아름다우세요.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임을 알았기에
그래서 그 곳에서는 길을 잃고 싶다.
자바의 스위스 가룻에서.....

참고서적: 서부 자바의 오래된 정원 (사공경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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